미국 반도체 설계업체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의 주가가 나스닥 상장 첫날 공모가를 크게 웃돌며 치솟았다. 인공지능(AI) 열풍이 시장 전반을 강하게 자극하는 가운데, AI 붐의 최대 수혜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6년 5월 14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세레브라스 주식은 나스닥 데뷔일인 목요일 시초가 기준 주당 350달러에 거래를 시작했다. 이는 공모가 185달러를 89% 웃도는 수준이다. 이번 기업공개(IPO)로 세레브라스는 55억5,000만 달러를 조달했으며, 완전 희석 기준 기업가치는 1,067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캘리포니아주 새니베일에 본사를 둔 이 회사의 IPO는 올해 들어 가장 큰 규모다.
세레브라스의 급등은 중동 분쟁이 세계 성장에 부담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AI 관련 종목이 뉴욕증시 전반을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있는 흐름을 보여준다. AI 관련 산업은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망, 클라우드 인프라, 소프트웨어 전반을 아우르는 거대한 생태계로 평가된다. 특히 시장에서는 GPU그래픽처리장치 기반 기존 구조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차세대 AI 연산 기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세레브라스는 2015년 설립된 이후 전통적인 AI 컴퓨팅 방식에 도전해 왔다. 이 회사는 웨이퍼 스케일 엔진이라 불리는 기술을 앞세워, 식탁접시 크기 정도의 큰 칩을 설계해 처리 속도를 높이는 방식을 추구해 왔다. 일반적인 GPU 기반 시스템이 여러 개의 칩을 연결한 클러스터 구조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세레브라스는 단일 프로세서에 수십만 개의 컴퓨트 코어를 집적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설계를 통해 AI 모델 학습과 추론의 병목을 줄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앤드루 펠드먼 세레브라스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실리콘밸리에서는 AI가 얼마나 거대해질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며 “우리는 AI를 학습용으로 만들고, 추론용으로도 사용한다. 이 모델들이 더 똑똑해질수록 우리가 사용하는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날의 화려한 상장은 장기적으로 세레브라스가 현재의 높은 기업가치를 계속 정당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남겼다. 라나상 캐피털(Renaissance Capital)의 선임 리서치 애널리스트 니컬러스 스미스는 공모가 기준으로는 2028년 예상 매출 대비 기업가치 매출배수EV/sales와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에서 비교적 합리적으로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공모가 185달러를 기준으로 2028년 수치를 보면 EV/sales는 5.8배, EBITDA는 12.8배 수준이었다”며 “하지만 현재 가격에서는 2028년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AI 투자 열기, 반도체 업종 강세로 확산
빠르고 똑똑한 AI 모델 개발 경쟁이 가열되면서 대형 기술기업들은 생태계 전반에 수천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혁신 기술이 기존 업무 흐름을 뒤흔들 것이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AI 관련 종목에 공격적으로 자금을 넣고 있다. 이른바 AI 광풍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시장은 성장성이 입증된 기업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업종의 강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다우존스 미국 반도체지수는 지난 1년간 107% 이상 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S&P 500 지수는 약 26% 올랐다. 이 지수에는 엔비디아, 퀄컴, 인텔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이 포함돼 있다. 세레브라스의 상장 강세는 이러한 업종 전반의 랠리와 맞물려 있으며, AI 인프라 관련 종목에 대한 시장의 선호를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세레브라스는 이번 IPO의 수요를 반영해 이번 주 들어 공모 규모와 희망 가격 범위를 상향 조정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공모에는 배정 물량의 20배 이상에 달하는 주문이 몰렸다. 이는 투자자들이 AI 관련 신규 상장주에 얼마나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상적으로 이 같은 초과 청약은 상장 초반 주가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이번 상장은 세레브라스의 두 번째 상장 시도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회사는 지난해 상장 신청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세레브라스는 아랍에미리트(UAE) 기반 AI 기업 G42와의 협력 관계로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국가안보 검토를 받았다. 해당 위원회는 결국 거래를 승인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G42는 2024년 세레브라스 매출의 85% 이상을 제공한 고객이었다.
이후 세레브라스는 세계 최대 AI 인프라 구축업체 중 두 곳으로 꼽히는 아마존과 오픈AI를 고객으로 확보했다. 이는 회사가 상장 시장에서 내세울 수 있는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니컬러스 스미스는 “투자자들이 오픈AI 계약과 AWS 파트너십을 통해 상당한 성장이 임박했다고 믿는다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세레브라스의 급등이 단순한 신규 상장주 흥행을 넘어, AI 인프라와 차세대 반도체 기업 전반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높은 밸류에이션이 유지되려면 향후 고객 확보, 실제 매출 성장, 대형 AI 프로젝트의 수주 확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AI 관련 기업의 실적 가시성이 높아질수록 투자심리는 더 강화될 수 있지만, 기대가 선반영된 종목은 변동성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