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대표 파운드리 업체인 SMIC가 전 세계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외국 공장들의 생산능력 압박 속에서 해외 고객들의 주문이 중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밝혔다.
2026년 5월 15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최대 계약 반도체 제조업체인 중신궈지( 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 SMIC)는 금요일 실적 설명회에서 해외 고객 주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 최고경영자(CEO) 자오하이쥔은 “중국에는 여전히 상당수의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 프로젝트와 기업들이 있다”며 “이곳들은 가용 생산능력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어서 많은 해외 고객들이 중국에서 제조할 수 있도록 주문을 옮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오 CEO는 또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SMIC가 아마도 가장 큰 몫을 보고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현상은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파운드리는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공장을 뜻한다. 업계에서는 AI 반도체와 메모리, 기타 고대역폭 응용 제품에 생산능력이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구형 반도체 공정에 배정될 수 있는 여력이 줄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해외 파운드리에서 만들던 일부 제품이 더 이상 현지에서 생산되지 않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SMIC는 중국 내 칩 설계사들의 강한 수요를 기대하며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다만 첨단 7나노미터(nm) 제조 공정 확대에는 미국의 수출 통제라는 제약이 따른다. 나노미터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나타내는 단위로, 숫자가 작을수록 더 미세하고 고성능인 공정을 의미한다. 회사는 1분기 말 기준으로 9,000장의 12인치 웨이퍼 환산 생산능력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웨이퍼는 반도체 칩을 찍어내는 원판이며, 12인치 웨이퍼는 대량 생산의 핵심 기준으로 쓰인다.
자오 CEO는 감가상각비가 지난해보다 약 3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감가상각은 공장 설비와 장비의 가치가 시간에 따라 줄어드는 회계상 비용이다. 회사의 1분기 감가상각비와 상각비는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 이는 대규모 설비 투자와 생산능력 확대가 본격적으로 비용에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SMIC의 1분기 가동률은 93%로, 전 분기보다 소폭 낮아졌다. 자오는 “지난해 4분기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보조 메모리칩 부족을 우려해 주문을 줄였고, 그 영향이 1분기 일부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1분기에는 새로운 팹(fab·반도체 제조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면서 전체 생산능력이 늘어났고, 그 결과 가동률이 낮아 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매출 기준으로 중국은 SMIC의 최대 시장으로 남았으며 1분기 매출의 89%를 차지했다. 미국은 9%를 기여했다. 회사는 같은 기간 8인치 웨이퍼 환산 250만 장을 출하했으며, 이는 직전 3개월과 같은 수준이다. 8인치 웨이퍼는 성숙 공정 칩 생산에 널리 쓰이며, 자동차·산업용·가전용 반도체 등 구형 제품군의 생산과 관련이 깊다.
글로벌 레거시 반도체 생산능력 재편도 SMIC의 발언 배경으로 주목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전시회인 세미콘 차이나(Semicon China)의 자료에 따르면, 22나노미터(nm)에서 40나노미터(nm) 구간의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이 보유한 글로벌 레거시 노드 생산능력 비중은 올해 37%에 이를 전망이며, 2027년에는 41%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5년의 32%에서 높아지는 수치다.
자오 CEO는 “내년에도 AI 관련 칩과 엣지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 비AI 제품의 생산능력이 더 압박받을 수 있다”며 “우리는 이것이 장기적인 추세라고 본다”고 말했다. 엣지 애플리케이션은 데이터가 중앙 서버가 아니라 기기 자체나 가까운 네트워크 단에서 처리되는 기술을 뜻한다. 이번 발언은 AI 붐이 단순히 첨단 칩 시장뿐 아니라 전통적인 반도체 공급망까지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 관점에서 보면 해외 고객 주문의 중국 유입은 SMIC와 같은 대형 파운드리에 단기적인 가동률 개선과 주문 확보라는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의 수출 통제와 첨단 공정 제약은 고부가가치 제품 확대를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향후 반도체 업계에서는 AI 중심의 생산능력 쏠림, 레거시 노드의 공급난, 중국 내 제조 비중 확대가 함께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중국 반도체 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으나, 글로벌 공급망에는 비용 상승과 제품 배분 변화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