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 인근 금융지구에서 2025년 11월 18일 촬영된 월스트리트 황소 조형물. 스펜서 플랫 | 게티이미지
인공지능(AI) 붐이 전 세계 주식시장의 서열을 다시 쓰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에 자리한 경제가 시장 영향력을 키우면서 대만과 한국이 오랜 기간 상위권을 지켜온 서구 증시를 잇따라 추월하고 있다.
2026년 5월 20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HSBC가 추적한 글로벌 주식시장 시가총액 순위에서 대만은 캐나다를 제치고 세계 6위 증시로 올라섰고, 한국은 영국을 앞지르며 8위에 자리했다. 이는 AI 확산이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에 있는 경제에 자본을 더욱 집중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최신 사례다.
대만 증시의 시가총액은 2004년만 해도 세계 12위에 불과했고 규모는 약 5,000억 달러였다. 당시 한국은 13위로 약 4,000억 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 두 시장의 가치는 각각 4조7,000억 달러, 4조4,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현재 세계 상위 5대 시장은 미국, 중국, 일본, 홍콩, 인도다.
이 같은 순위 재편이 완전히 전례 없는 일은 아니다. 중국은 2000년대 후반 세계 주요 시장 반열에 올랐고, 인도는 2023년 말 홍콩을 넘어섰다가 이후 다시 홍콩 아래로 내려갔다. 다만 한국과 대만의 상승 속도와 동력의 집중도는 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X ETF의 빌리 르웅 글로벌 투자전략가는 “이처럼 상위 10대 시장의 순위가 바뀌는 일은 대체로 경기 사이클마다 한 번씩 일어나지만, 보통은 국내 경기 호황, 대형 기업공개(IPO), 혹은 오랜 기간의 초과수익을 바탕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특이한 점은 속도와 동력의 폭이 매우 좁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랠리는 소수의 AI 연관 기업으로 자금이 극도로 쏠린 데서 비롯됐다. 대만의 경우 TSMC 한 곳이 시가총액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코스피 지수의 역대 최고 수준인 42.2%를 차지하고 있다. 코스피는 한국 대표 주가지수로, 대형 상장사의 흐름을 반영하는 기준 지표다.
“상위 10대 시장의 순위는 대체로 경기 사이클마다 바뀌지만, 보통은 국내 경기 호황이나 대형 IPO, 혹은 수년간의 강세가 배경이 된다.”
빌리 르웅, 글로벌 X ETF 글로벌 투자전략가
메트라이프 투자운용의 아시아 주식 담당 책임자인 준 추아는 “양국 지수는 사실상 AI와 반도체의 대리 지수(proxy)가 됐다”고 말했다. proxy는 특정 산업이나 테마를 대표해 움직이는 지수를 뜻한다.
골드만삭스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주식전략가 팀 모 역시 같은 견해를 내놨다. 그는 “지금 시장을 끌어올리는 것은 분명히 AI 하드웨어 테마”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에이전틱 AI로의 전환이 이른바 토큰 수요의 폭발을 촉발했고, 이로 인해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반도체 업체들의 가격 결정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큰은 AI 모델이 문장을 생성하거나 작업을 처리할 때 사용하는 단위로, 수요가 늘수록 컴퓨팅 자원과 칩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같은 급등은 되돌림 위험도 안고 있다. 한국 증시는 지난주 말 외국인 투자자들이 약 130억 달러어치의 국내 주식을 매도한 뒤 하락했고, 기준 지수는 큰 변동성을 보였다. 이는 코스피 내 대형주 비중이 큰 상황에서 외국인 수급 변화가 지수 전체를 크게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코스피의 대형주인 삼성전자를 둘러싼 노동협상과 파업 가능성까지 투자심리를 흔들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관련 우려가 부각되며 급등락을 반복했다. 한국 증시가 AI 수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만큼, 개별 대형주의 실적·노사 이슈가 곧바로 지수 방향성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HSBC 아시아태평양 주식전략 책임자 헤럴드 반 데르 린데는 “이제 많은 아시아 포트폴리오가 집중 리스크에 직면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며 “지역 내 소수 종목에 대한 노출이 지나치게 커지면 추가 상승 여력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집중 리스크는 포트폴리오가 몇 개 종목에 과도하게 쏠려 있을 때 특정 종목의 조정이 전체 수익률에 큰 충격을 주는 위험을 뜻한다.
이 같은 현상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덴마크 시장과도 비교되고 있다. 사우디 증시는 대형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덴마크 증시는 비만 치료제 기업 노보 노디스크가 각각 지수 흐름을 좌우하는 구조다. 덴마크 증시는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수요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압박을 받았고, 사우디 증시는 유가 하락과 함께 약세를 보였다. 이후 국제유가가 반등하면서 사우디 증시는 일부 손실을 회복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순위 재편이 단순한 단기 랠리가 아니라, 반도체와 AI 하드웨어 중심으로 글로벌 자본이 재배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본다. 다만 현재의 상승이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극소수 종목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향후 실적 둔화나 외국인 자금 이탈, 반도체 업황 변화가 나타날 경우 상승 탄력이 빠르게 꺾일 가능성도 있다. 결국 대만과 한국 증시의 강세는 AI 시대의 대표 수혜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지만, 동시에 지수 집중도와 변동성 확대라는 구조적 부담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구글에서 CNBC를 선호 소스로 설정하면 비즈니스 뉴스를 더욱 자주 확인할 수 있다는 안내 문구도 기사 말미에 포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