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인구 1,000만명 상한 국민투표 앞두고 경제 충격 우려 확산

스위스가 오는 6월 14일 인구를 1,000만명으로 제한할지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에 나선다. 이번 안건은 일부에서 “스위스판 브렉시트”에 비유되고 있으며, 경제계는 제안이 통과될 경우 스위스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2026년 6월 8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인구 상한을 주장하는 측은 우파 성향의 스위스국민당(SVP)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인구 증가가 지역 인프라, 도로, 대중교통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으며, 임대료 상승과 범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업과 고용주들은 찬성표가 나오면 스위스가 숙련 노동자 접근성을 잃고, 최대 수출 시장인 유럽연합(EU)과의 관계도 악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취리히 인근 루스틸콘의 고급 호텔 벨부아와 탈빌의 세다르티스를 운영하는 마틴 폰 모스 최고경영자(CEO)는 “스위스 시민으로서 우리나라의 미래와 번영이 매우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직원 전원을 잃는다면 호텔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며 전체 직원 115명 가운데 약 절반이 스위스 외 국적이라고 설명했다. 스위스 호텔업계에서 외국인 인력 의존도가 적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사안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찬성 47%, 반대 52%로 팽팽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스위스의 인구는 2025년 말 기준 91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이는 스위스와 EU 사이에 자유로운 인적 이동이 도입된 2002년 당시 730만명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외국인은 현재 전체 인구의 거의 28%를 차지한다.

SVP 소속 의원 이반 파위드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스위스는 국토가 제한된 작은 나라이고, 최근 몇 년간 가장 높은 인구 증가를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 상한이 스위스의 물리적·사회적 수용 능력을 고려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다만 이번 투표는 이민, 주택, 공공서비스 문제를 둘러싼 유럽 각국의 정치적 긴장과도 맞물려 있다. 영국의 2016년 EU 탈퇴 국민투표,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독일의 대안독일당(AfD) 부상도 같은 흐름의 사례로 거론된다.


■ 기업계 “경제 성장에 치명타”

기업 비판론자들은 인구 상한이 유럽에서 가장 견조한 경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스위스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취리히에 본사를 둔 바이오테크 기업 몰레큘러 파트너스(Molecular Partners)는 전체 약 120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이 스위스인이 아니며, 필요한 인력을 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렵다고 밝혔다. 다니엘 슈타이너 해당 회사 타깃 라디오 치료 부문 수석부사장은 “스위스 인재 풀에서만 채용할 수 있다거나 스위스 기업과만 협업할 수 있다면 사실상 게임이 끝난 것”이라며 “스위스 밖으로 일부를 옮겨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 단체 economiesuisse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루돌프 민쉬는 이 안을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인위적 상한으로 해결하려는 포퓰리즘적 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짜 점심이 있다는 환상을 팔 뿐이며, 주택난이나 교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공짜 점심’은 별다른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해법이라는 뜻의 경제·정치적 표현으로, 실제 비용과 부작용을 숨긴 정책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스위스도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고령화 압박에 직면해 있다. 스위스 통계청에 따르면 2055년까지 20세에서 64세 사이 인구 비중은 현재 60%에서 56%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65세 이상 비중은 현재 21%에서 27%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노동력 부족과 사회보장 부담 확대 가능성을 동시에 시사한다.

인구 상한 반대 측은 많은 신규 유입 인구가 스위스 경제를 발전시킨 기업가였다고 반박한다. 이들은 네슬레, 스와치, ABB 등 세계적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인이 전부 혹은 일부를 세운 사례라는 점을 든다. 2023년 아베누이 스위스(Avenir Suisse) 연구에 따르면 스위스의 모든 기업 창업자 가운데 39%가 외국인으로 나타났다.


■ 9.5백만명 넘으면 정부가 억제 조치 의무화

스위스는 국민투표가 정치의 핵심 축을 이루는 나라로, 유권자들은 매년 4차례 전국 및 지역 현안에 대해 투표한다. 이번 제안에 따르면 스위스 인구가 950만명을 넘으면 정부는 이를 1,000만명까지 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950만명은 2031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1,000만명은 2042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가 1,000만명에 도달하면 베른 정부는 인구 증가를 촉진하는 국제협정을 종료해야 한다. 여기에는 EU와의 자유로운 인적 이동 협정도 포함된다. 이 협정은 브뤼셀과 체결한 복잡한 양자협정 체계의 핵심이며, 스위스가 유럽 단일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다.

연구기관 BAK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클로드 모레는 베른이 양자협정을 포기할 경우 2028년부터 2045년까지 스위스 경제성장이 7.1% 낮아질 것이라며, 이는 6,850억 스위스프랑의 손실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달러 기준으로는 8,670억달러 수준이다. 그는 성장 둔화와 함께 임금 상승에 따른 물가 압력이 커지면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SVP 소속 의원이자 은행가인 토마스 마터는 이런 우려를 과장된 경고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민자의 10명 중 1명만이 수요가 높은 숙련 인력이라며, 1인당 GDP 성장률도 이민 확대 이후 둔화됐다고 주장했다. 마터는 “우리는 이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 수준에서 통제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질적인 이민이었지만 지금은 양적인 이민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스위스의 국토 면적은 1848년과 같지만,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위스의 대형 기업인 로슈, 네슬레, ABB, UBS, 노바티스도 모두 인구 상한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로슈는 “우리는 이 제안을 거부한다”고 밝히며, 찬성표가 나올 경우 EU와의 협정이 위협받고 숙련 노동자 부족이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은 특히 EU 출신을 포함한 숙련 인력에 대한 접근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텔업계에서도 우려가 크다. 호텔경영자이자 스위스호텔협회 회장인 폰 모스는 일부 호텔이 영업 지속이 어려워질 수 있고,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며, 유럽 외 지역 방문객이 스위스를 찾기도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제안을 “양의 탈을 쓴 늑대”에 비유하며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결과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국민투표는 스위스의 이민정책, 노동시장, 주거비, 대외무역, EU 관계가 한데 얽힌 사안으로, 결과에 따라 장기적인 성장 경로와 기업 투자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숙련 인력 유입이 제한될 경우 바이오테크, 금융, 관광, 제조업 등 외국인 인재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서 인력 공백이 커질 수 있으며, 이는 임금과 비용 구조를 바꿔 인플레이션 압력까지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업은 특히 EU 출신을 포함한 숙련 인력에 대한 접근에 의존하고 있다.”

($1 = 0.7902 스위스프랑)

스위스 국민투표 관련 이미지취리히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