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이란 관련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 차질을 이유로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분쟁이 악화되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한 상태가 2027년까지 지속되면 전 세계 경제가 경기 침체 직전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6년 4월 14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IMF는 워싱턴에서 열린 봄철 IMF·세계은행 연차회의에 모인 재무 당국자들이 중동 분쟁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긴장한 가운데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WEO)에서 세 가지 성장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세 시나리오는 분쟁의 전개 방식에 따라 Reference(참조·낙관적), Adverse(부정적), Severe(심각·최악)로 구분된다.
참조 시나리오에서 IMF는 2026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1%로 전망해 1월 전망치보다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 시나리오는 이란 전쟁이 단기간에 끝난다는 가정에 기반하며, 2026년 전체 평균 브렌트유 가격을 배럴당 82달러로 가정했다. 이는 최근 선물 시세가 약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했던 수준에서 낮아진 값이다.
IMF는 만약 중동 분쟁이 없었다면 기술 투자 호조, 금리 인하의 지연 효과, 미국의 관세 완화 및 일부 국가의 재정 지원 등으로 성장률을 0.1%포인트 상향해 3.4%로 제시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걸프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잠재적으로 훨씬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Pierre-Olivier Gourinchas(피에르-올리비에 구린샤)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불리한(adverse) 시나리오에서는 분쟁이 장기화되어 2026년 동안 유가가 배럴당 약 10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2027년에는 75달러로 하락하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이 경우 IMF는 2026년 전 세계 성장률이 2.5%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참고로 IMF는 1월 전망에서 2026년 유가가 약 62달러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심각(severe) 시나리오는 분쟁이 장기화·심화되고 유가가 훨씬 더 높게 유지되며 주요 금융시장 교란과 금융여건의 급격한 긴축을 초래하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다. 이 경우 글로벌 성장률은 2.0%로 급락한다. IMF는 “이는 세계적 경기 침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의미한다”고 평하고, 1980년 이후 성장률이 이 수준 아래로 떨어진 사례는 네 번뿐이며 그중 최근 사례로는 2009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IMF는 심각 시나리오에서 2026년 유가 평균을 배럴당 110달러, 2027년은 배럴당 125달러로 가정했다. 이러한 수준의 장기적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강화해 추가적인 물가상승과 임금 인상 요구를 초래할 수 있다.
물가(인플레이션) 압력
구린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인플레이션 기대의 변화가 중앙은행들의 긴축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기대의 변화는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브레이크를 밟게 하고 물가를 다시 낮추려는 노력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며 이 과정이 2022년보다 더 큰 통증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IMF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단기간에 그친다면 중앙은행들이 물가 기대가 잘 고정되어 있는 한 금리를 동결하거나 사실상 완화적 통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나리오별로 2026년 전세계 인플레이션은 참조 시나리오에서 4.4%, 심각 시나리오에서 6% 이상으로 전망됐다.
주요국별 전망
IMF는 미국의 올해(2026년) 성장률 전망을 1월보다 0.1%포인트 낮춰 2.3%로 제시했다. 이는 세제 감면, 금리 인하의 지연 효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지속 등이 높은 에너지 비용을 일부 상쇄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2027년은 오히려 0.1%포인트 상향된 2.1%로 전망했다.
유로존은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고에너지 비용의 여파를 아직도 겪고 있어 중동 분쟁의 영향이 더 크게 반영됐다. 유로존의 성장률 전망은 2026년과 2027년 모두 0.2%포인트씩 낮아져 각각 1.1%와 1.2%로 제시됐다.
일본은 가장 온건한(낙관적) 시나리오에서 2026년 0.7%, 2027년 0.6%의 저성장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IMF는 일본은행(BOJ)이 6개월 전보다 다소 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은 1월 대비 0.1%포인트 하향 조정된 4.4%다. 이는 높은 에너지·원자재 비용의 부담이 미국 관세 완화와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의해 부분적으로 상쇄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IMF는 부진한 주택시장, 노동력 감소, 투자수익률 저하 및 생산성 둔화가 2027년 성장률을 4.0%로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고 이 전망치는 1월과 동일하다.
신흥국과 중동·중앙아시아의 타격
IMF는 신흥시장·개도국의 성장률이 석유 의존도가 높아 중동 분쟁의 타격을 더 크게 받는다며 2026년 전체 성장률을 0.3%포인트 낮춘 3.9%로 전망했다.
특히 분쟁의 진원지인 중동·중앙아시아 지역은 인프라 손상과 에너지·상품 수출의 급감으로 2026년 GDP 성장률이 무려 2.0%포인트 하락해 1.9%로 전망됐다. IMF는 2026년 국가별로는 이란이 -6.1%, 카타르가 -8.6%, 이라크가 -6.8%, 쿠웨이트가 -0.6%, 바레인이 -0.5%로 GDP 감소를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IMF는 분쟁이 단기간에 종료된다는 가정 하에서는 지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해 2027년 성장률이 4.6%로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수치는 1월 전망치보다 0.6%포인트 높은 값이다.
신흥국 중에서는 인도가 상대적 호조를 보이며 2026년·2027년 모두 6.5%로 소폭 상향됐다. IMF는 연말 강한 성장 모멘텀과 미국의 대(對)인도 수입 관세율 인하 합의가 성장 전망을 뒷받침했다고 평가했다.
연료비 부담 경감 위한 재정정책 유인과 IMF의 경고
IMF는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각국 정부가 가격 상한제, 연료 보조금, 세금 인하 등 재정 조치로 국민 부담을 완화하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라고 진단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재정적자와 증가하는 공공부채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조치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린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정당하다”
고 전제하면서도, 보조금이 한 나라에만 주어질 경우 재정 여력이 없는 다른 국가에서 연료 부족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은 매우 표적화되고 임시적이어야 하며 재정 구조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용어 해설 및 배경
IMF(국제통화기금)는 회원국의 거시경제·금융 안정을 도모하는 국제기구이며, WEO(세계경제전망)는 IMF가 분기 또는 연례로 발간하는 주요 경제 전망 보고서다. ‘실질 GDP’는 물가 변동을 제거한 경제 규모 지표로, 경제 성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브렌트유(Brent)’는 국제 유가의 대표 벤치마크 중 하나로 주로 북해산 원유를 기준으로 한 선물가격을 의미한다. 또한 ‘인플레이션 기대’란 향후 물가상승에 대한 가계와 기업의 예상을 뜻하며, 이 기대가 상승하면 실제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기자분석)
IMF의 이번 업데이트는 단기적 지정학적 리스크가 전 세계 성장·물가·금융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상당함을 재확인시켰다. 우선 유가가 장기간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할 경우,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실질 구매력 저하, 재정적자 확대, 통화 약세 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외 부채가 높은 신흥국의 금융불안으로 전이될 위험을 높이며, 궁극적으로 금융시장 변동성과 신용경색을 초래해 글로벌 성장을 추가로 둔화시킬 수 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단기간의 에너지 가격 충격을 ‘통과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경우 금리 동결로 약한 경기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여지가 있지만, 기대가 고착화하는 신호가 나타나면 더 강한 긴축을 통해 물가를 억제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2022년과 같은 광범위한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재정정책 측면에서는 IMF가 제시한 것처럼 표적화된 일시적 지원이 중요하다. 보편적 보조금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물가·수급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으므로, 취약계층 중심의 한시적 현금 이전이나 맞춤형 연료 보조가 바람직하다. 동시에 국제 공조를 통해 에너지 공급망 안정화 노력과 전략비축유(SPR) 활용, 대체 에너지·에너지 효율 투자 확대 등 중장기 대응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끝으로, 금융시장 참여자와 정책당국은 시나리오별 충격파를 염두에 둔 스트레스 테스트와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신흥국은 외환보유액과 재정완충장치 확보, 대외부채의 통화구조 개선 등으로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로이터 통신의 데이비드 로더(David Lawder) 보도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