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6월 2일(로이터) – 중동 분쟁의 영향을 받는 신흥국 정부의 지원은 임시적이고 표적화된 방식이어야 한다고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수장인 오딜 르노-바소 총재가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그는 재정 여력이 좁아지고 차입 비용이 높아진 상황에서 광범위하고 일률적인 지원은 부담만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EBRD는 유럽,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민간 부문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국제금융기구다. 2026년 6월 2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르노-바소 총재의 발언은 오는 금요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시작되는 EBRD 연례회의를 앞두고 나왔다. 이번 회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작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이어진 6년간의 위기가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열린다.
르노-바소 총재는 이 같은 충격으로 인해 EBRD가 투자하는 지역들, 즉 신흥 유럽,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가 더 높은 부채 부담을 떠안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란 전쟁이 계속되면서 에너지 가격 급등과 잠재적 비료 부족 가능성이 제기돼 식료품 가격과 인플레이션을 다시 끌어올릴 위험이 커지고 있다.
“여러 나라에는 재정 여력이 더 적다. 매우 영향받은 사람들에게 아주 선별적이고, 매우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하며, 매우 비싼 광범위한 일괄 조치는 피해야 한다.”
그는 정부가 지원책을 설계할 때 특정 계층과 취약 부문을 정밀하게 겨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재정 여력(fiscal space)은 정부가 세입과 차입을 바탕으로 추가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여지를 뜻하며, 차입 비용이 높아질수록 같은 규모의 지원도 재정 부담이 훨씬 커진다. 따라서 이번 경고는 단순한 정책 주문이 아니라, 물가 안정과 국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르노-바소 총재는 EBRD가 오는 수요일 발표할 경제 전망 업데이트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인플레이션 전망은 상향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EBRD는 지난 2월 전망에서 대상 41개국의 올해 성장률을 3.6%, 2027년 성장률을 3.7%로 예상한 바 있다.
EBRD는 지난 4월 이란 전쟁의 파급 영향을 받은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50억 유로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공급망 충격, 에너지 가격 변동성, 식품 가격 압력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 대한 대응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각국 정부는 단기적 재정 대응과 중장기 물가 안정 사이에서 더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르노-바소 총재는 또 각국 정부가 민간 투자를 유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네덜란드와 북유럽의 연금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인프라, 에너지 안보, 녹색 전환, 연결성 투자를 추진하려면 다수 국가는 민간 부문 자금에 의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여러 나라의 경우 인프라에 투자하고, 에너지 안보에 투자하고, 녹색 전환을 금융으로 뒷받침하고, 연결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 재정만으로는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에너지 안보는 전력망, 저장시설, 송배전 인프라 등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한 분야여서, 민간 자본의 참여 여부가 프로젝트 속도와 범위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문제도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EBRD는 체르노빌 원전 관련 기부자 회의를 주최할 예정이다. 체르노빌은 세계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한 장소로, 지난해 러시아 드론 공격으로 보호용 차폐 구조물이 손상된 바 있다. EBRD가 이 회의를 주관하는 것은 원전 안전과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자금 조달이 여전히 국제사회의 중요한 현안임을 보여준다.
터키의 최근 혼란에 대한 질문에 르노-바소 총재는 핵심 시장 중 하나인 터키의 상황이 안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약 2주 전에는 제1야당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리라화와 기타 자산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 중앙은행은 언제나 경계심을 유지해야 하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아마도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터키에서는 물가와 환율, 자본 유출입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어 통화정책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분석적으로 보면, 이번 발언은 중동 전쟁의 충격이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신흥국의 재정·물가·금융시장 전반에 압박을 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국 정부가 광범위한 보조금이나 일괄 지원에 나설 경우 단기적으로는 민심을 달랠 수 있지만, 중기적으로는 재정 악화와 금리 부담을 키워 오히려 경기 회복을 늦출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취약 계층과 핵심 산업에 한정한 맞춤형 지원은 물가 충격을 완화하면서도 국가 신용도 훼손을 줄이는 절충안이 될 수 있다. EBRD의 성장률 하향과 물가 전망 상향 조정은 향후 신흥국 자산시장에서도 금리 인하 기대 약화, 통화 약세, 식료품·에너지 가격 변동성 확대라는 경로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