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한마디에 미크론, AI 붐 타고 시가총액 1조달러 돌파

미국 반도체업체 미크론 테크놀로지시가총액 1조달러를 향한 행보는 그 자체로 극적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1,000억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런 급등은 미크론이 오랫동안 지켜온 검소한 경영 방식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엔비디아의 사실상 마지막 순간에 가까운 견인이 미국 메모리칩 제조업체를 인공지능 붐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026년 6월 2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미크론은 한때 비용 절감과 보수적 투자로 버텨온 대표적인 기업이었으나, AI 시대에는 그 전략이 새로 다시 쓰이고 있다.

미국 아이다호주를 기반으로 한 미크론은 수십 년 동안 공장을 최소 비용으로 지었고, 중고 장비를 들여오며, 최첨단 기술에 대한 대규모 베팅을 피하는 방식으로 생존해 왔다. 이런 절제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의 극심한 호황과 불황을 견디게 했고, 결국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함께 전 세계 3대 메모리 공급업체 중 하나로 남게 했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를 범용 상품처럼 취급하던 이 접근법은 AI를 바라보는 엔비디아의 구상과 충돌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3년 전 샌자이 메흐로트라 미크론 최고경영자와 만나 메모리 시장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설명했다고 지난달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황 CEO는 메모리, 그리고 프로세서만이 아니라 메모리 역시 AI의 핵심 병목이 될 것이라고 일찍부터 판단했고, 이에 따라 공급업체들이 기술과 지출을 모두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봤다.

“미크론과 엔비디아가 우리의 로드맵을 정말 잘 맞췄다는 점에 매우 감사했다.”

황 CEO의 이 발언은 AI 인프라가 단순한 칩 수요가 아니라, 설계와 공급망 전체를 바꾸는 구조적 변화임을 보여준다. 데이터센터가 엔비디아와 다른 AI 선도 기업들의 요구에 맞춰 다시 짜이면서, 메모리는 더 이상 하나의 표준 부품이 아니라 특정 프로세서에 맞춰 설계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이동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여러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적층해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인 제품으로, 대규모 연산이 필요한 AI 가속기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고객 맞춤형 공동 설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크론이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제품은 AMD 등 다른 고객에 제공하는 제품과도 구분된다.

현재 미크론의 칩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베라 루빈(Vera Rubin) 플랫폼을 포함한 AI 시스템에 깊숙이 결합돼 있다. 이런 정렬은 미크론의 성장 경로를 바꿔 놓았고, 회사를 장기 계약과 더 높은 마진의 거래로 이끌었으며, 투자자들에게도 실적의 가시성을 높여 주었다. 그 결과 미크론 주가는 지난 1년간 약 10배 급등했다.

미크론은 화요일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하며, 삼성전자를 포함한 소수의 초대형 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하루 뒤에는 SK하이닉스가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AI 성장, 미크론의 궤도를 바꾸다

미크론은 자신이 공급하는 HBM 시장이 2028년까지 약 1,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분기에는 140억달러의 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2023년 메모리 사이클이 꺾이고 수요가 급감했을 때 기록한 58억달러 손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 반등은 오랜 기간 누적된 한계와 그에 대한 수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오랫동안 상품성 비즈니스로 취급돼, 애플과 델 같은 고객이 공급업체를 쉽게 바꾸며 가격을 끌어내릴 수 있었다. 이런 변동성 때문에 미크론은 고대역폭 메모리에 일찍 베팅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한국 경쟁사들은 그 사이 공격적으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AI 인프라 확대는 이런 계산을 바꿔 놓았다. 미크론은 지난 3월 업계에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단기 가격 중심 구조와 달리, 최초의 5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메모리 업계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업계 분석가들은 엔비디아가 이런 거래의 핵심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양사는 이를 공식 확인하지는 않았다. 크리에이티브 스트래터지스의 벤 바자리안은 “기업들이 실제로 장기 고객 수요와 진정한 약속을 보고 있다”며 “그것이 돈을 써서 생산능력을 확대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라고 말했다.


순환적인 메모리 시장에서의 민첩성

미크론의 옛 습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는 오히려 강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회사는 이제 그 절제와 효율을 AI 시대의 속도에 맞게 다시 조정해야 한다.

핵심 과제는 속도다. 메흐로트라 CEO 체제에서 미크론은 개발 주기를 줄이고 생산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데 집중해 왔다. AI 시장에서는 기술 사양을 충족하지 못하면 유리한 공급 계약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역량은 결정적이다.

미크론이 미국 내에 본사를 둔 유일한 주요 메모리 공급업체라는 점도 경쟁 우위로 작용한다. 고객들이 한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도 국내 공급망 강화를 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진정한 시험대는 다음 번 업황 하강기가 찾아왔을 때다.

애널리스트들은 AI가 메모리 시장을 구조적으로 더 크게 만들겠지만, 그렇다고 경기 하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미크론의 오랜 규율, 즉 한때는 성장에 걸림돌이었던 검소함이 다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텍인사이츠의 기술 컨설팅 부문 부회장 댄 허츨슨은 “초기에는 아무도 미크론에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그들은 늘 등 뒤에 벽이 있는 듯한 태도를 지녀 왔다. 인텔이 그 태도를 잃었듯, 미크론도 그것을 잃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