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첫 순수 전기차 ‘루체’ 공개…불확실한 전기차 시대에 과감한 도전

로마, 5월 25일(로이터) – 스포츠카 경쟁사들이 전기차(EV) 전환에 속도를 늦추는 가운데, 페라리첫 완전 전기차를 공개하며 불확실한 시대에 과감한 도약에 나선다. 페라리는 월요일 로마에서 첫 순수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며, 엔진의 굵직한 배기음이 없는 상황에서도 운전자와 감성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26년 5월 25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되는 모델은 페라리 ‘루체(Luce)’로, 이탈리아어로 ‘빛’을 뜻한다. 루체는 4도어 모델이며, 최고 속도는 시속 310킬로미터(193마일)에 달한다. 가격은 50만 유로(약 58만6,000달러) 이상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여기서 EV는 전기차를 뜻하며,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차량을 의미한다. 페라리의 이 모델은 일반적인 전기 세단과 달리 초고가의 럭셔리 슈퍼카 시장을 겨냥한 것이어서, 단순한 친환경차가 아니라 브랜드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전략적 제품으로 해석된다.

루체의 개발에는 전 애플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가 이끄는 스튜디오 러브프롬(LoveFrom)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차량은 기존 페라리 모델과 뚜렷이 구별되는 큰 차체를 갖췄다. 자동차 업계에서 디자인은 단순한 외형을 넘어 브랜드 정체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 특히 페라리처럼 전통적으로 엔진음, 주행 감각, 매끈한 차체 비율로 강한 상징성을 구축해온 브랜드에 전기차는 기술 전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건 위험이자 일종의 베팅이다. 그러나 선도한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컨설팅업체 그랜트 손턴 스탁스(Grant Thornton Stax)의 필 드런 관리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전기차 전환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의 미래 기준을 누가 먼저 정의하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페라리는 이번 전기차 공개를 통해 ‘럭셔리 전동화’의 방향성을 먼저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로마에서 열리는 이번 공개행사는 수년간의 준비 끝에 이뤄진 결과다. 페라리는 10년 넘게 초기 하이브리드 포뮬러원 시스템을 개발해 왔고, 도로용 모델도 2019년부터 전동화에 나섰다. 지난해 회사는 고객 인도가 10월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페라리는 CEO 베네데토 비냐 체제 아래 전동화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왔으며, 이탈리아 마라넬로 본사에는 새로운 ‘e-빌딩’도 건설했다. 이 시설은 전기차와 관련 부품의 생산·개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로 풀이된다.


전기차 U턴 – 루체의 공개는 고성능 전기차를 둘러싼 회의론이 커지는 시점에 이뤄졌다. 로이터는 앞서 페라리가 수요 부진을 이유로 두 번째 전기차 모델 출시 계획을 2028년 이후로 미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탈리아의 경쟁사 람보르기니 역시 고객 관심 부족을 이유로 2030년 전기차 출시 계획을 철회했다. 이는 전기차 수요가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는 유지되고 있지만, 초고성능 스포츠카 부문에서는 아직 소비자 선호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카 인더스트리 애널리시스펠리페 무노스는 페라리가 루체를 대량 판매 모델로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대신 이 차량은 중국 업체들이 화려한 신형 전기차 개발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페라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선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의 BYD는 뛰고 춤추는 기능까지 갖춘 전기 슈퍼카 양왕 U9(Yangwang U9)를 개발했다. 고성능 전기차 경쟁은 이제 단순한 마력 경쟁을 넘어, 소프트웨어, 감성, 브랜드 경험을 포함한 종합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무노스는 “지금 당장 전기 슈퍼카가 꼭 필요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전동화는 장기적으로 계속될 것이고, 페라리는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며 “럭셔리 전동화가 어떤 모습인지, 다른 누군가가 정의하기 전에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향후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선도적 이미지를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낸다.

기술적 과제도 만만치 않다. 전통적인 고성능 브랜드들은 무거운 배터리와 내연기관의 지속적인 출력, 그리고 감각적인 주행 매력의 한계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배터리는 차량 중량을 높이고, 장시간 고속 주행에서 출력 유지에 제약을 줄 수 있다. 반면 휘발유 엔진은 오래도록 강한 사운드와 즉각적인 반응으로 슈퍼카의 핵심 매력을 구성해왔다. 페라리가 이 상징을 어떻게 전기차로 옮겨올지가 이번 루체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로 보인다.

페라리는 지난 10월 루체 기술의 일부를 공개했을 당시, 가짜 엔진음을 재현하는 대신 구동계 진동을 증폭하는 특수 음향 시스템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기차 특유의 정숙성을 유지하면서도, 페라리만의 독특한 주행 감성을 전달하려는 시도다.

“모두가 페라리에서 항상 떠올리는 세 가지는 외관, 소리, 주행 감각이다. 전기차로 가면 이 세 가지를 다른 방식으로 제대로 구현해야 한다”

드런은 말했다.

페라리는 전동화 목표도 일부 조정했다. 회사는 2030년까지 완전 전기차가 전체 라인업의 2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이전 목표인 40%보다 낮아진 수치다. 동시에 하이브리드와 전통적인 내연기관 모델도 계속 생산할 계획이다. 이는 단번의 전면 전환보다는 수요와 브랜드 정체성을 함께 고려한 점진적 전환 전략으로 읽힌다.


고객층 확대와 시장 전망 – 루체는 페라리가 다음 세대의 부유층 고객층에 다가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이란 전쟁으로 고유가가 이어지며 휘발유 가격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는 전기차의 매력도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고가 차량 구매자들 가운데서도 친환경성과 기술 이미지를 중시하는 소비층이 늘고 있다는 점은 페라리 전기차의 잠재 수요를 뒷받침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비냐 CEO는 2월, 초기 고객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었다며 3월에 루체 사전 주문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페라리 팬이 이 전기차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회사는 젊은 세대가 루체를 소유하길 원하고, 기존의 초고액 자산가들 역시 차고나 자택 진입로에 페라리 전기차 한 대를 두고 싶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루체가 대량 판매 모델이 되기보다는, 향후 럭셔리 전기차 시장의 가격 기준과 디자인 기준, 브랜드 기준을 함께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드런은 “페라리 고객층 모두를 사로잡지는 못하겠지만, 일부에게는 분명히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페라리의 전기차 전략이 전면적 대중화가 아니라, 소수의 고부가가치 고객을 겨냥한 선택적 확장에 가깝다는 점을 시사한다. 향후 고성능 전기차 시장에서는 배터리 성능뿐 아니라 브랜드의 감성 자산과 희소성, 그리고 가격 프리미엄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1 = 0.8540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