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이 광범위한 글로벌 관세를 무효로 판단한 뒤 관세 환급을 잇따라 신청하고 있다. 월마트와 애플을 비롯한 대형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에 이를 수 있는 환급금을 되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2026년 5월 22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CNBC 프로그램
“환급 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들을 기억하겠다”
고 말하며, 기업들이 관세 환급 절차에 나서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당시에는 아마존 등 일부 대형 기업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우려로 환급 신청을 미루는 듯 보였으나, 현재는 월마트, 애플 등 미국의 대표적인 대기업들이 자신들이 받을 권리가 있는 돈을 돌려받겠다고 공식 확인한 상태다.
이 같은 흐름은 홈디포, 제너럴모터스(GM), 존디어, 페덱스, 코스트코 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관세 환급을 신청했거나 신청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다루는 기업들의 태도에 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부 핵심 기업들이 대통령의 공개 경고 이후에도 공개적으로 다른 선택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과 정부 간 관계에서 “환급을 신청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정치적 계산과 재무적 이해가 충돌하는 대표 사례로 떠오른 셈이다.
이번 환급 신청에는 강한 사업적 동기와 함께, 많은 기업의 경우 수탁책임(fiduciary responsibility)도 작용하고 있다. 수탁책임이란 기업 경영진이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정당하게 돌려받을 수 있는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경영진의 책무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대형 기업들은 이미 지급한 관세 가운데 일부를 환급받아 주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은 이달 초 법원 제출 서류에서 350억 달러 이상의 환급금이 이미 처리됐으며 기업 계좌로 지급되는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부가 전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환급 규모는 약 1,66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미국 수입업체와 유통업계 전반에 실질적인 재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다.
트럼프의 “기억하겠다” 발언 이후 확산된 환급 신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스쿼크 박스(Squawk Box)”에 출연했을 때, CNBC의 앤드루 로스 소킨은 당시 애플을 포함한 일부 기업들이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로 환급 신청을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일이다”
라며
“사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를 아주 잘 아는 것”
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내가 매우 기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 덧붙였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 기억할 것”
이라고 말해 사실상 압박성 메시지를 보냈다.
이 발언은 워싱턴 정가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로비스트와 업계 단체들은 처음에 일부 수입업체들이 자신들이 받아야 할 돈을 신청할지 여부를 주저했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대통령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또 행정부가 환급 절차에 나선 기업들에 어떤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는지를 해석하느라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형 기업들은 실제로는 이미 낸 관세를 되찾기 위해 움직이는 쪽을 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월마트다. 월마트는 지난해 관세 부담 때문에 가격을 올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반발을 샀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월마트에
“관세를 감수하라(eat the tariffs)”
며 가격 인상을 경고하기도 했다. 월마트 최고재무책임자(CFO) 존 데이비드 레이니는 22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회사가 IEEPA 관세로 낸 돈을 환급받기 위해 신청했다고 확인했다. IEEPA 관세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된 관세를 뜻한다. 이는 미국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경제 제재나 무역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법적 장치다.
레이니 CFO는 환급금이 들어오더라도 월마트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적 발표에서
“우리는 환급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선택지를 활용했다. 우리에게는 전체 사업의 비교적 작은 부분이다”
라고 말했다. 이어
“환급 자격을 얻으려면 수입신고자(importer of record)여야 하는데, 우리가 수입신고자인 경우는 미국 매출의 약 0.5% 수준”
이라고 덧붙였다. 수입신고자는 세관에 물품을 들여올 때 법적 책임을 지는 주체를 뜻하며, 실제 환급 대상 여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다.
월마트의 가장 최근 완전한 회계연도인 2026년 기준 미국 사업부 순매출은 4,830억 달러였다. 이에 따라 매출의 0.5%는 약 24억 2,000만 달러에 해당한다. 이는 일부 기업의 연간 매출을 웃도는 규모지만, 레이니 CFO는 지난해 월마트 전체 매출이 7,130억 달러를 넘었다는 점을 들어 회사 전체로 보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그는
“작은 것 하나도 중요하다”
며 환급금의 의미를 완전히 낮게 보지는 않았다.
월마트는 환급금을 받게 되면 이를 고객 가격에 재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레이니 CFO는
“환급을 받게 되면 우선순위는 고객을 위한 가격 투자에 둘 것”
이라며
“현재 소비자에게 스트레스가 존재하고 우리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자본의 가장 좋은 수익률(ROI)은 고객 가격에 투자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처럼 관세 환급을 가격 인상 완화에 활용하겠다는 메시지가 하나의 공통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상공회의소의 닐 브래들리 정책책임자는 기업들이 환급금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가장 많이 들은 답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되게 해줄 것”
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그렇다”
고 말했다. 이는 관세 환급이 단순한 회계상 이익이 아니라, 실제 소비자 가격과 인플레이션 압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임을 보여준다.
월마트가 환급 신청을 공식 확인한 것은 타깃의 최고재무책임자 짐 리가 21일 회사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고 밝힌 데 이어 나온 것이다. 홈디포의 재무책임자 리처드 맥필도 20일 소매업체가 환급을 신청했고, 지금까지
“중요하지 않은 수준의 금액을 받았다”
고 말했다. 그는 또
“그것이 해당 비용에 상당한 상쇄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고 설명했다.
일부 기업은 환급금을 백악관과 고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쓰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영향력 있는 업계 단체 관계자는 기업들이 환급 자금을 미국 내 투자와 소비자 혜택 사이에서 균형 있게 활용하려 한다고 전했다. 애플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도 관세 환급을 신청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애널리스트와의 통화에서 환급금이 들어오면 이를
“미국의 혁신과 첨단 제조업”
에 재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시하는 핵심 정책 분야와도 맞닿아 있다.
반면 아마존은 환급 신청 여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주 환급을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결정과 관련해 집단소송에 휘말렸지만,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로우스의 최고경영자 마빈 엘리슨 역시 22일 회사가 환급을 신청하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그는
“우리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며
“신청했는지 여부를 공개적으로 말한 적은 없다. 다만 관세 환급이 이뤄질 경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지급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언제 그 환급이 발생할지 판단하고 있다”
고 말했다.
관세 환급이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 미칠 영향
이번 사안은 단순한 기업별 환급 신청을 넘어, 향후 미국의 가격 정책과 소비자 부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으로 평가된다. 대형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관세 환급을 통해 비용 부담을 일부 상쇄할 경우, 가격 인상 압력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환급을 받지 못하거나 신청을 미루는 기업은 비용 전가 가능성이 커져 소비자 가격에 더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관세 환급은 대형 유통업체, 제조업체, 물류기업, 전자상거래 기업 모두에게 수익성 관리와 가격 전략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형 소매업체들은 현재 소비자 수요 둔화와 비용 상승 압력 사이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관세 환급금이 실제로 도착할 경우, 일부 기업은 이를 재고 투자나 공급망 안정화에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환급 절차는 트럼프 행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가 여전히 정치적 변수와 경제적 실익 사이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대기업들이 공개적으로 환급 신청을 밝히는 것은 대통령의 압박보다 주주 가치와 재무적 현실을 우선시한 결정으로 읽힌다.
[사진: 2026년 5월 13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월마트 매장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