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AI 슈퍼리치를 겨냥하는 명품 브랜드들

미국의 AI·기술 부호를 겨냥한 명품 브랜드들의 공세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 유럽 명품업체들은 미국에서 매장 개점과 패션쇼를 잇따라 늘리며, 인공지능(AI)과 기술업계 호황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고액 소비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소비심리가 약화된 흐름을 상쇄하려는 움직임이다.

2026년 6월 2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위축 국면을 겪었던 명품 산업은 2월 말 시작된 이란 전쟁으로 다시 충격을 받았다. 전쟁은 여행 흐름을 교란했고, 중동을 넘어 전 세계 명품 소비에도 타격을 줬다. 여기에 지난 20년간 명품 매출 성장의 가장 큰 원천이었던 중국은 여전히 디플레이션1과 부동산 위기의 여파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어, 명품 업계는 어느 때보다 미국의 부유층에 기대를 걸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뜻하며, 소비와 기업 실적에 부담을 줄 수 있다.

AllianceBernstein 런던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마커스 모리스-에이트턴은

“미국의 고급 소비자는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 보이는 소비자보다 훨씬 더 견조하다”

며, 지속적인 AI 랠리와 양호한 임금 증가가 이 소비층을 떠받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명품 소비의 무게중심이 미국으로 더 옮겨가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LVMH, 몽클레르(Moncler), 구찌(Gucci) 등 명품 브랜드들은 이러한 흐름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디올과 구찌가 미국에서 크루즈 컬렉션2을 선보였고, 이탈리아 브랜드 제냐(Zegna)는 오는 금요일 로스앤젤레스에서 2027년 여름 컬렉션을 발표할 예정이다. 크루즈 컬렉션은 전통적인 봄·여름, 가을·겨울 시즌 사이에 선보이는 중간 시즌용 컬렉션을 의미한다.

부동산업체 새빌스(Savills)의 글로벌 명품 리테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는 처음으로 신규 매장 개점 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 새빌스는 2016년부터 관련 데이터를 추적해 왔다. 보고서는 2025년 전 세계 명품 매장 개점의 약 27%가 북미에서 이뤄졌다고 분석했으며, 유럽은 26%, 중국은 19%를 차지했다. 전 세계 신규 명품 매장 개점 수는 202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은 명품 업계에 여전히 큰 성장 잠재력을 제공하는 시장이다. 새빌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초고액 자산가 수에 비해 명품 매장 수가 중국보다 적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새빌스 미국 리테일 부문 대표 토드 시겔은

“많은 브랜드가 미국을 보유한 부의 규모에 비해 아직 충분히 공략되지 않은 시장으로 보고 있다”

고 말했다.

브랜드들의 매장 투자도 미국의 주요 동부·서부 해안 도시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시겔은 세율이 캘리포니아나 뉴욕보다 낮아 고액 자산가들이 이동한 2차 주와 도시들까지 투자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소비력 분산과 인구 이동이 명품 유통망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명품 아우터웨어 그룹 몽클레르는 올해 새로 여는 매장 대부분을 미국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몽클레르는 1월 콜로라도주 고급 스키 리조트 아스펀에 매장을 열었고, 올해 하반기에는 뉴욕 5번가에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3를 개점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캘리포니아 밸리 페어와 텍사스주 댈러스 등에도 신규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명품 그룹 에르메스(Hermes)는 지난해 테네시주 내슈빌과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처음 매장을 열었다. 또 올여름에는 시카고 북부 윌멧의 플라자 델라고 쇼핑센터, 9월에는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새 매장을 열 계획이다. 이 같은 확장은 미국 내 부유층 거주지와 소비 거점을 세밀하게 겨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명품 업계는 미국과 아시아 일부 지역의 성장, 그리고 그 밖 지역의 부진이 공존하는 ‘두 속도의 세계’에 놓여 있다. 컨설팅업체 베인은 미국과 아시아 일부는 성장하는 반면, 유럽과 중동은 진행 중인 이란 전쟁 속에서 관광 지출 감소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는 미국 실적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지만, 1분기 실적을 보면 미주 지역의 성장률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강했다.

카르티에를 소유한 리치몬드(Richemont)의 미주 매출은 1월부터 3월까지 18% 증가했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9분기 연속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미국 명품 소비자의 강세는 랄프 로렌(Ralph Lauren)과 코치(Coach) 브랜드를 보유한 태피스트리(Tapestry) 같은 미국 기업에도 힘을 실어 주었으며, 이들 기업의 매출은 경쟁사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랄프 로렌의 최고제품·상품기획책임자 할리데 알라고즈는 로이터에

“핵심 고객들은 충성도가 높고 회복력도 강하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그들의 행동은 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런 불안정한 시기에는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으려 한다”

고 말했다. 이는 불확실성이 클수록 검증된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태피스트리 최고경영자 조앤 크레보이세라트 역시 북미에서 성장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북미와 그 밖의 지역에서 정서적 연결을 구축하고, 더 젊은 새로운 소비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고 밝혔다. 이는 명품 브랜드들이 단순히 기존 고객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젊은 세대와의 관계 형성을 통해 장기 성장 기반을 넓히고 있음을 의미한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 에두아르 아뱅은 향후 미국 기업공개(IPO)가 고급 시계와 보석 소비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미국 국적 소비자가 전 세계 명품 지출의 약 20%~22%를 차지한다고 지적하며,

“좋은 일이고 도움이 되지만, 업계가 진정으로 회복하려면 중국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

고 말했다. 이는 미국 수요만으로는 명품 시장의 완전한 반등이 어렵고, 중국의 경기 회복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향후 전망을 놓고 보면, 명품 업계는 미국의 AI·기술 부호 확대와 고용·임금 기반의 소비 회복을 발판으로 매장 확대와 브랜드 노출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국의 디플레이션과 부동산 부진, 중동발 여행 둔화가 이어질 경우 글로벌 명품 수요의 회복 속도는 제한될 수 있다. 결국 업계는 미국 중심의 성장과 중국 회복 여부 사이에서 전략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