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북동부의 화학 산업 쇠퇴로 한동안 놀고 있던 유휴 부지가 새로운 가치를 얻고 있다. 발전 설비과 수자원, 그리고 고압 전력망 연결을 갖춘 이 부지는 최신형 AI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수용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
2026년 4월 24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틴사이드(Teesside)에 있는 윌턴 인터내셔널(Wilton International) 부지의 소유주들은 이곳을 AI 데이터센터 유치 장소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시도는 윌턴만의 사례가 아니다.
영국 전역에서 산업부지 소유주, 투기적 투자자, 부동산 개발업자, 심지어 농민들까지도 자신들의 토지가 AI 데이터센터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음을 내세워 자산의 가치를 높이려 하고 있다. 건설 분석업체 Barbour ABI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119개의 데이터센터 계획이 제출되었으며, 그 대상지는 사용 중지된 자동차 공장, 옛 페인트 공장, 이전의 Travelodge 호텔, 히드로(Heathrow) 인근의 소매센터 등 매우 다양하다.
‘전력 보유지( powered land)’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이 용어는 자체 발전 설비를 갖추었거나 이미 고압 전력망 연결을 확보한 부지를 의미한다. 싱가포르 계열의 유틸리티 기업 Sembcorp UK가 다수 지분을 보유한 윌턴 부지는 수십 년간 석유화학 업계에 전력을 공급해 왔고, 현재 남는 토지와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Sembcorp UK의 CEO 마이크 패트릭(Mike Patrick)은 “빠르게 개발을 진행해 일자리와 산업, 투자를 되돌려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개발업체 Digital Reef와 함께 윌턴은 대형 기술기업, 특히 클라우드 연산 용량을 대량 제공하는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를 유치해 사이트를 확장하려 한다. 하이퍼스케일러는 Amazon, Apple, Google, Meta, Microsoft 등으로 대표되며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Sembcorp UK 사업개발 책임자 피터 아이러턴(Peter Ireton)은 “윌턴은 이미 대규모 전력 연결과 현장 내 발전 자산을 갖추고 있어 대형 오프테이커(off-taker)를 유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많은 부지가 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영국 전역에서 전력망 연결 신청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력망 전송 회로 업그레이드 필요성과 맞물리며 연결 대기 시간은 12년에서 15년까지 늘어났다.
영국 에너지부는 2025년 상반기에 연결 수요가 460% 급증했다고 보고했다. 고압망에 합류하려는 신청 용량은 96GW에 달했고, 지역망 합류 요구는 추가로 29GW에 달했다. 참고로 영국의 총 발전 용량은 대략 72GW로 추정되며, 지난해 최대 수요는 약 46GW에 달했다.
국가전력시스템운영자(NESO)는 3월 발표에서 메인 대기열(main queue)에 140개의 데이터센터가 확인되며 이들 사업이 약 50GW의 용량을 대표한다고 밝혔다. NESO는 투기적 활동이 네트워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는 수요를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실질적인 프로젝트를 지연시키고 에너지 전환을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NESO는 3월에 신청 절차를 변경해 투기적 신청을 걸러내고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전략적 분야를 우선순위로 두는 계획을 내놓았다.
‘좀비 프로젝트(zombie projects)’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이는 전력도, 인허가도, 확정된 최종 사용처도 없는 상태에서 단지 전력 연결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제출된 신청을 뜻한다. 미국 부동산회사 JLL의 EMEA 데이터센터 책임자 톰 글로버(Tom Glover)는 “많은 이들이 투기적으로 전력 확보에 시간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 확보 경쟁은 이미 토지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업체 Savills에 따르면 런던의 산업용 토지는 에이커(acre)당 약 450만~600만 파운드에 거래되지만 데이터센터 적합 토지는 800만~1,500만 파운드로 상승한다. 미시장에서의 유사 보고서인 Colliers는 전력 보유 토지가 일반 산업 토지보다 최대 2.5배 비싸게 팔리며, 북버지니아와 북캘리포니아에서는 그 배수가 3배 이상으로 확대된다고 밝혔다.
개발업자들은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창의적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 런던 북부의 한 부지(미국 데이터센터 운영사 Equinix가 매입한 곳)는 배터리 저장 프로젝트에 할당된 연결권한을 가진 그룹과 연합한 뒤 이를 데이터센터에 적합한 수요 연결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성사시켰다. Equinix 영국 지사장 제임스 타일러(James Tyler)는 “개요(planning) 승인과 확정된 전력 연결권을 갖춘 개발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위험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Equinix는 이 개발에 39억 파운드(약 53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이는 미국 외 최대 투자다. 착공 시점은 2027년 초, 운영 시작은 2031년을 목표로 한다.
다만 확정된 연결일이 반드시 환호할 일은 아니다. 데이터센터 개발·운영사 Pure DC의 대표 돈 칠즈(Dawn Childs)는 런던 프로젝트의 연결일 제안이 약 2년 전에 지연되었고, 공급되는 전력의 약 3분의 1이 10년 이상 미뤄진 사례를 들며 대안 마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데이터 컴파일 업체 DC Byte의 집계에 따르면 영국은 경쟁국보다 사업 진척 속도가 느리다. 2022년 말 이후 영국에서 추적한 61개 프로젝트 중 7%만이 건설 중이거나 완료된 반면, 독일은 46%, 프랑스는 40%, 미국은 24%가 건설 중이거나 완료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은 정부와 기업, 대형 기술기업 모두에게 문제다. 이들은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경제 현대화와 영국의 AI 슈퍼파워 전환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전력 연결 대기열의 폭증과 더불어 영국의 산업용 전력 요금이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라는 현실은 투자 결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예컨대 AI 개발사 OpenAI는 이번 달 초 윌턴 부지에서 약 50마일(약 80km) 떨어진 노스이스트 잉글랜드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을 중단했다고 밝혔는데, 그 이유로 높은 에너지 비용과 규제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대체적 컨센서스는 AI 수요가 실제로 존재하며, 전력·계획·토지을 함께 제공하는 부지의 잠재력은 막대하다는 것이다. 윌턴은 기존 240MW 전력 연결을 보유하고 있고, 가스·바이오매스·폐기물에너지 등 현장 내 발전 자산을 갖추고 있다. Sembcorp는 인근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을 통합해 궁극적으로 1GW까지 전력 믹스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Digital Reef의 설립자 피어스 슬레이터(Piers Slater)는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약 150억 파운드가 필요할 것이며 그 기간은 8~1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 파트너들은 잠재적 데이터센터 운영사와의 논의가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슬레이터는 “AI의 채택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용어 해설
전력 보유지(p owered land): 자체 발전 설비나 이미 고압 전력망 연결을 확보한 토지.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 수요가 필수이므로 이런 토지는 높은 가치가 난다.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 대규모 클라우드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기업군(Amazon, Google, Microsoft 등). 이들은 막대한 전력과 대규모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좀비 프로젝트(zombie projects): 실제 운영 계획이나 수요가 불분명한 채 전력망 연결만을 확보하려는 투기적 신청을 일컫는 말이다.
정책·시장 영향 및 전망 분석
전문가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현상은 다음과 같은 체계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전력 보유지의 프리미엄화로 산업용 토지 가치 재편이 가속화될 것이다. Savills와 Colliers의 수치를 고려하면 데이터센터 적합 토지의 가격은 일반 산업 토지 대비 2배 이상으로 오르며, 이는 지역별 자산가격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전력망 병목은 프로젝트 지연을 낳아 실제 운영에 들어가야 할 설비들이 지연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AI 인프라 확충 속도를 둔화시키고, 중장기적으로는 전력망 투자(송전선로·변전소·배터리 등) 확대를 압박할 것이다.
셋째, 높은 산업용 전기요금은 데이터센터의 입지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어, 전력비 우대책(요금제 개선) 또는 재생에너지와 결합한 전력구매계약(PPA)의 확대가 사실상 필수적이다. 넷째, 정책적 측면에서는 NESO의 신청 절차 정비처럼 투기적 신청을 걸러내고 전략적 사업을 우선순위로 두는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송전망 확충과 지역 분산형 전원(태양광·풍력·배터리 포함)에 대한 장기 투자 계획이 병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경제 관점에서 보면, 윌턴처럼 전력과 토지를 보유한 산업유휴지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 재생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는 전력 확보와 요금 문제, 그리고 환경·규제 이슈가 동시에 관리될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력 연결의 확정성, 예상 전력 요금, 지역 규제 리스크, 그리고 하이퍼스케일러 등 잠재적 임차인의 실현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토지 매입 및 개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환율 표기: 1달러 = 0.7412 파운드(기사 원문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