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휴대폰에서 농기계까지…’소비자 소유권’ 회복하려는 수리권(Right-to-Repair) 법안 확산

소비자가 구입한 제품을 스스로 고치고 수정할 권리를 둘러싼 법적·정치적 논쟁이 미국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화면 수리부터 자동차 진단장비, 가정용 전자제품, 심지어 농기계의 진단·재프로그래밍 도구에 이르기까지 제조사가 독점적으로 통제해온 수리 생태계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빠르게 힘을 얻고 있다.

2026년 4월 25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른바 Right-to-Repair(수리권) 운동은 전통적인 당파 구분을 넘어서 공화당과 민주당을 모두 아우르는 드문 초당적 이슈로 부상했다. 이 운동은 최근 수년간 주(州) 차원의 법 제정 물결과 연방법 도입 시도라는 두 축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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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보면, 뉴욕 주는 2022년 전자기기 수리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킨 최초의 주이며, 이후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미네소타, 코네티컷, 오리건 등도 포괄적 수리권 규정을 도입했다. 워싱턴 주는 2025년 5월에 합류했다. 현 시점에서 옹호 단체들은 22개 주에서 57건의 수리권 법안을 추적하고 있다. 메인(Maine) 주 상원은 최근 전자기기 수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 단계로 진전시켰고, 텍사스의 새 수리권 법은 2026년 9월 1일 발효되며 휴대전화·노트북·태블릿을 포함하되 의료장비·농기계·게임기기는 제외한다.

오하이오 주의 사례도 주목된다. 공화당 경선의 야당 성향 후보 케이시 푸치(Casey Putsch)는 2026년 4월 9일(목) 오하이오 톨레도에서 유권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리권 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푸치는 여론조사상 유력 후보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에 비해 열세이지만, 경제적 불안과 삶의 비용 문제에 호소하는 포퓰리즘적 메시지의 일부로 수리권을 내세우고 있다. 한편, 같은 보도는 최근 CNBC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지지도와 전반적 지지도가 두 임기 중 최저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법률의 범위와 쟁점

오리건 주의 2024년 법은 특히 “부품 페어링(parts pairing)”을 제한한 최초의 주로 주목된다. 부품 페어링은 특정 교체 부품을 제조사 고유의 소프트웨어로 기기에 ‘짝짓기’해야만 작동하도록 하는 관행을 말한다. 뉴욕의 2022년 법은 전국 최초였고, 당시 법안을 주도한 뉴욕주 상원의원 패트리샤 페이(Patricia Fahy)는 이 법이 광범위한 초당적 지지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잊혀진 미국의 꿈의 표지 중 하나는 자신의 물건을 만들고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자동차 애호가이자 제작자인 케이시 푸치는 말했다.

페이는 뉴욕 법의 목표를 실용적으로 접근했다며, 주로 스마트폰 수리에 초점을 둔 결과 독립 수리점의 증가로 소비자 비용이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보험이 없을 때 화면 수리는 250달러였으며, 해당 법으로 가구당 연평균 400달러의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한 초기 추산으로 독립 수리업소의 고용이 15% 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 법안은 원안보다 후퇴하기도 했다. 페이는 원래 법안이 더 포괄적이었으나 존디어(John Deere)와 캐터필러(Caterpillar)의 강력한 반발로 대형 장비와 의료기기, 가전제품을 법안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다만 휠체어 관련 수리권을 확대하는 법안은 별도로 제출했다고 전했다.


기업과 규제 당국의 반응

기업 입장은 분열되어 있다. 애플은 초기 반대에서 점차 입장을 누그러뜨렸으나 삼성은 여전히 수리 난이도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다. 농기계 제조사 존디어는 자신들이 수리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존디어의 애프터마켓·고객지원 부문 부사장 덴버 콜드웰(Denver Caldwell)은 “우리는 농부들이 장비를 고칠 수 있기를 원한다. 사실 우리 산업은 그것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콜드웰은 이미 전국 단위의 합의(미국농업연맹(American Farm Bureau Federation)과의 협약 등)를 통해 농부들이 진단도구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주별로 다른 규제가 생길 경우 ‘파편화된 규제(patchwork of state-by-state mandates)’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반면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25년 존디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FTC는 고객들이 진단 소프트웨어에 대한 접근이 회사 계열 딜러로 제한되어 왔으며, 이는 불공정·불법적 관행으로 농기계 및 부품에서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창출했다고 주장했다. 존디어는 관련 집단소송을 최근 합의로 마무리했는데, 2026년 4월 7일 합의 내용에는 농부들에게 9,9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최대 10년간 진단·수리 도구 접근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됐다. 회사는 이번 합의로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연방 입법 움직임과 대치

연방의회에서도 초당적 법안이 등장했다. 뉴멕시코의 벤 레이 루한(Ben Ray Luján) 상원의원(민주·D)과 미주리의 조시 호울리(Josh Hawley) 상원의원(공화·R)은 이견이 큰 조합이지만 함께 REPAIR Act를 공동 발의했다. 페이의 뉴욕 법이 주로 전자기기에 초점을 맞춘 반면, REPAIR Act는 자동차 중심의 규정을 제안한다. 루한은 또 전자·가전·기타 장비까지 포괄하는 Fair Repair Act도 제안하고 있다.

REPAIR Act는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 소유자, 독립정비업소, 애프터마켓 제조사에게 차량 수리 및 유지보수 데이터에 대한 안전한 접근을 제공하도록 요구해 제조사가 소비자를 자사 딜러 네트워크로 유도하는 관행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 루한은 CNBC에 “소비자는 수리에 관해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 나의 REPAIR Act와 Fair Repair Act는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그런 선택권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미자동차딜러협회(NADA)는 하원 소위원회가 REPAIR Act를 본위원회로 넘겼을 때 반대 목소리를 냈다. NADA는 독립 정비업소가 이미 차량 진단·수리 데이터에 접근하고 있으며, 2014년 합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NADA는 호울리-루한 법안을 ‘트로이 목마’라고 규정하며 운전자 데이터 수집·판매 등 다른 활동으로 확장될 위험을 경계했다. 이에 대해 법안 지지자들은 오히려 법안이 거래비밀 유출 우려를 차단한다고 반박하며, 루한은 법안이 제조사에게 영업비밀을 공개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호울리는 대기업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대기업들은 차량 소유주의 기본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해 왔고, 소비자를 고정 가격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REPAIR Act는 진단·서비스 정보에 대한 기업의 통제를 끝내고 소비자가 자신의 장비를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수리할 권리를 주는 법”이라고 말했다.


지지 기반과 사회적 맥락

미국 최대의 소상공인 로비단체인 전미독립비즈니스연맹(NFIB)은 회원의 89%가 수리권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혀 2026년 주요 입법 우선순위로 꼽았다. 법·경제학자들은 이번 운동을 ‘소유권 경제학(economics of ownership)’의 문제로 보고 있다. 윌라메트대 로스쿨의 법학 교수 데이비드 프리드먼(David Friedman)은 기계식 제품에서 소프트웨어 정의 제품으로의 전환이 소유 비용의 구조를 바꿔 제조사가 초기 판매와 함께 수리 서비스를 묶음으로 제공하며 폐쇄 생태계를 만들어왔고, 이는 소비자가 고마진의 제조사 서비스에 의존하거나 제품을 조기에 사용 불능 상태로 방치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로스앤젤레스 기반 손해·책임 전문 로펌 J&Y Law의 공동창업자이자 대표변호사 요시 야후다이(Yosi Yahoudai)는 개인상해 변호사 관점에서 제품 책임 소송 증가를 우려했다. 압력솥 폭발 사례, 전기차 및 전동스쿠터 배터리 문제 등 현대 기술에서 잘못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사용자가 직접 수리나 개조를 할 경우 위험이 커질 수 있으며, 중고시장에서 다수의 수리 이력을 가진 제품이 안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반대로 보안 및 IT 분야의 수리권 지지자들은 소비자의 소유권 인식이 변화했다고 본다. 보안·IT 수리 네트워크 SecuRepairs의 설립자 폴 로버츠(Paul Roberts)는 “구입한 제품을 사용·수정·수리할 권리는 기본적인 소유권의 일부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자물쇠, 소프트웨어 제한, 구독 모델 등이 수리를 제한하고 제품을 사실상 ‘조건부 소유’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기업 가운데서는 IBM이 콜로라도의 포괄적 수리권 법안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내는 쪽에 서기도 했다. IBM 대변인은 콜로라도 상원 법안 26-090에 대해 사이버보안, 지적재산, 핵심 인프라 보호를 이유로 특정 사업용 IT 장비를 예외로 하는 조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반대자들은 이러한 예외 규정이 모호해 수리권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용어 설명

수리권(Right-to-Repair)은 소비자가 구매한 제품의 수리·정비·재프로그래밍에 필요한 부품, 매뉴얼, 소프트웨어 진단도구 등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자는 개념이다. 부품 페어링(parts pairing)은 특정 교체 부품을 제조사 고유의 소프트웨어와 연동시켜 타사 부품이나 자체 수리로는 작동하지 않게 만드는 관행을 말한다. REPAIR ActFair Repair Act는 연방법 수준에서 각각 자동차 중심 혹은 전자·가전·기기 전반에 대해 소유자·독립업체가 진단정보와 수리 도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법안명이다. 또한 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DMCA)는 저작권 보호를 이유로 디지털 잠금·접근 제한을 정당화하는 규정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수리권 논쟁에서 중요한 법적 배경이 되고 있다.


경제적·정책적 영향 분석(전문가 전망)

정책적 확산이 지속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부담 완화와 독립 수리업체의 고용 증가가 기대된다. 앞서 제시된 수치처럼 가구당 연평균 약 400달러 절감이 현실화되면 가계 소비에 실질적 여유가 생기며, 휴대폰·전자기기 교체 주기가 늘어날 수 있다. 이는 제조사의 서비스·부품 관련 고마진 수익구조에 하향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는 제조사들이 수리·업데이트를 위한 투자 방향을 재조정할 전망이다. 실시간 진단과 업데이트를 포함한 고급 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계속될 수 있으나, 주별로 상이한 규제가 컴플라이언스 비용을 상승시켜 제품 설계·서플라이체인의 복잡도를 높일 우려가 있다. 특히 농기계·의료기기·산업용 장비 등 고도의 안전·보안 요구가 있는 분야에서는 예외 규정보안·지적 재산 보호 규범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정책적 핵심이 될 것이다.

또한 법적 불확실성이 투자자·제조사 행동에 영향을 주며, 일부 기업의 주가는 단기적으로 수리권 관련 소송·규제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반대로 부품·애프터마켓 기업, 독립 정비업체, 중고시장 플랫폼 등에는 새로운 성장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안전·제품 책임 이슈와 관련해 규제기관의 감독 강화와 보험·책임 규범의 재정비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수리권 운동은 소유권의 재정립, 소비자 비용 절감, 중소업체 성장 기회 제공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게 하는 동시에 제조사의 수익구조 변화, 규제·컴플라이언스 비용 증가, 제품 안전·책임 문제라는 도전을 함께 제기한다. 향후 연방 차원의 통일된 법안 성패가 산업 전반의 구조와 시장 동학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참고 인물 및 기관: 케이시 푸치(Casey Putsch),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 패트리샤 페이(Patricia Fahy), 벤 레이 루한(Ben Ray Luján), 조시 호울리(Josh Hawley), 덴버 콜드웰(Denver Caldwell), 요시 야후다이(Yosi Yahoudai), 폴 로버츠(Paul Roberts); 기관: 존디어(John Deere), 캐터필러(Caterpillar), FTC(연방거래위원회), NADA(전미자동차딜러협회), NFIB(전미독립비즈니스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