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이 중동발 에너지 충격의 여파로 올해와 내년 경제 성장세가 크게 둔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에너지 비용 상승이 성장, 물가, 투자에 동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6년 6월 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도이체방크 리서치(Deutsche Bank Research)는 최근 메모에서 유로존이 중동발 에너지 충격으로 올해 급격한 경기 둔화를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도이체방크는 2026년 유로존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1%에서 0.5%로 낮췄다. 이는 11월 세계전망(World Outlook)에서 제시했던 수치보다 크게 낮아진 것으로, 에너지 비용 상승, 글로벌 수요 둔화, 더 긴축적인 금융 여건을 이유로 들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정책과 연결되는 금융 여건은 기업과 가계의 차입 비용, 즉 돈을 빌릴 때 부담해야 하는 이자 수준을 뜻한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기업의 설비투자와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어, 이번 전망은 유로존 실물경제 전반에 압박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도이체방크는 유로존 경제가 2026년 2분기 전분기 대비 0.1%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는 현재의 경기활동 추적지표와도 대체로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3분기에는 정체 국면에 머물고, 연말인 4분기에는 완만한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성장률은 2027년 들어 1.1%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 충격이 발생하기 전 유럽의 거시경제 전망은 ‘두 개의 경제 문제(two-economy problem)’였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2025년의 내수 경기 회복력이 독일의 재정지출 확대와 맞물리며 유지됐지만, 중기적으로는 낮은 경쟁력과 전략적 자율성 부족이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충격은 크게 네 가지 경로를 통해 경제에 전달될 것으로 분석됐다. 첫째, 물가 상승으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약화된다. 둘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의 투자 심리가 위축된다. 셋째, 중앙은행이 긴축을 유지할 경우 금융 여건이 더 팽팽해진다. 넷째, 세계 수요 둔화로 수출이 약해진다. 도이체방크는 유로존의 에너지 수입액이 2026년 GDP의 약 1%에 해당하는 규모만큼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소비자물가지수 가운데 식품·에너지 등 변동성이 큰 항목을 포함한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은 조화소비자물가지수(HICP) 기준으로 2026년 평균 3.1%, 2027년 2.5%로 예상됐다. 이는 분쟁 이전 예상치였던 2026년 1.7%, 2027년 1.9%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반면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해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 인플레이션은 두 해 모두 2.4%로 전망됐다. HICP는 유럽연합이 물가를 비교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 지표로, 각국의 소비자물가를 동일 기준으로 맞춘 수치다.
도이체방크는 이러한 물가 압력에 대응해 ECB가 예금금리를 6월과 9월 각각 0.25%포인트씩 올려, 9월까지 총 50bp 인상한 2.50%로 높일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서 bp는 basis point의 약자로, 1bp는 0.01%포인트를 의미한다. 도이체방크는 이를 “절제된 긴축(measured tightening)”이라고 표현했다.
독일은 유로존 최대 경제국으로, 2026년 성장률이 0.5%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도이체방크는 독일 경제가 2분기에는 소폭 감소하고 3분기에는 정체한 뒤 이후 회복할 것으로 봤다. 다만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축은 확장적 재정정책이 될 전망이며, 정부 재정적자는 GDP의 4.1%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고용은 0.3%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2026년 각각 0.5%, 0.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탈리아의 전망치는 위기 이전 0.8%에서 하향 조정된 것으로, 유로존 4대 경제국 가운데 가장 부진한 성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2026년 GDP의 5.2%, 2027년 5.4%로 전망됐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유럽연합(EU) 차세대EU(NextGenerationEU) 경기회복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2025년 말 기준으로 약 720억 유로(약 820억 달러)가 남아 있으며, 이는 GDP의 3.5%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차세대EU는 팬데믹 이후 유럽 경제 회복을 위해 조성된 대규모 재정지원 프로그램이다.
유로존 밖에서는 영국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0%로, 1분기 전분기 대비 0.6%의 견조한 성장세가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2%로 예상됐으며, 영란은행(BoE)은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3.75%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도이체방크는 전반적인 위험이 여전히 하방에 치우쳐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이 여름 내내 봉쇄되는 시나리오에서는 유로존 성장률이 2026년 0%까지 떨어질 수 있고, 물가상승률은 3.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경로로, 해당 해협의 차질은 국제 유가와 유럽 에너지 비용에 즉각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시장 영향을 보면, 이번 전망은 유로존 내 성장 둔화와 물가 재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성 압력을 시사한다. 성장률 하향과 인플레이션 상향이 겹치면 ECB의 정책 판단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으며, 채권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기대가, 주식시장에서는 내수·투자 관련 업종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로존에서는 유가와 가스 가격 변화가 기업 이익과 가계 소비 모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향후 경기 흐름은 에너지 시장의 안정 여부에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