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SEC, ‘위법 부인 금지’ 합의 정책 폐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위법 혐의와 관련해 합의하는 개인과 기업이 공개적으로 혐의를 부인하지 못하도록 해온 오랜 정책을 폐지했다. 이 정책은 일부 보수 성향 비판자들로부터 피고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체제 아래 SEC의 집행 기조가 한층 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6년 5월 18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SEC는 월요일 발표를 통해 과거의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neither-admit-nor-deny) 합의 관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합의 당사자가 사건에 대한 공개 부인을 하지 않도록 요구해온 장기 정책을 끝냈다고 밝혔다. SEC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이 정책의 폐지를 검토하지 않았지만, 이번 변화는 규제기관의 집행 태도가 더욱 유연해졌음을 의미한다.

SEC 의장 폴 앳킨스(Paul Atkins)는 성명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은 미국 전통의 중요한 부분이다”

라며, 이번 조치가 “합의한 피고인들의 그러한 비판을 금지하던 정책을 끝낸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SEC는 주식, 채권, 펀드 등 증권시장 전반을 감독하는 핵심 감독기관으로, 집행(enforcement)은 법 위반 의혹에 대해 조사·제재를 부과하는 절차를 뜻한다.

SEC 규정에 따르면 1972년부터 합의로 집행 사건을 마무리할 때, 기관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피고인은 이를 공개적으로 부인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인하도록 지시해서도 안 됐다. SEC는 당시 이러한 장치를 둔 이유로, 제기된 혐의가 거짓일 수 있다는 인상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른바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합의는 SEC 집행 사건에서 표준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 관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유지됐다. 당시 SEC 위원장 메리 조 화이트(Mary Jo White)2013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 규제 강화 요구 속에서, 기관이 이런 합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나 관행 자체는 계속 이어졌다. 한편, 더 강한 월가 감시를 요구하던 일부 활동가들은 오히려 혐의자에게 책임을 인정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공화당 소속 헤스터 피어스(Hester Peirce) SEC 위원은 2024년 과거 폐지 요청 검토를 거부한 뒤, 책임 부인이 SEC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증거는 거의 없으며 다른 규제당국도 유사한 정책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SEC의 기존 규정이 예외적으로 강한 통제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SEC는 월요일 발표에서, 합의 당사자들이 이미 동의한 ‘부인 금지(no-deny)’ 조항을 위반한 과거 집행 사건을 다시 열지는 않겠다고도 밝혔다. 즉, 이번 정책 변경은 향후 사건에 적용될 가능성이 크며, 이미 종결된 사건들에 대한 대대적 재검토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미국증권협회(ASA) 회장 크리스 아이아코벨라(Chris Iacovella)는 이번 소식을 환영하며, 이전 정책 아래에서는 SEC가 ‘싸우기보다 합의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권을 “소멸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금융 규제 강화 단체 베터 마켓(Better Markets)벤 쉬프린(Ben Schiffrin)은 SEC가 이번 변경을 사전에 일반 의견 수렴 없이 단행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명에서

“SEC는 제재가 증권법 위반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대중이 의심의 여지를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시장 및 규제 측면의 의미를 보면, 이번 SEC 조치는 단순한 절차 변경을 넘어 향후 증권 집행 사건에서 협상 구조와 협상력의 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업과 개인 피고인 입장에서는 혐의 인정 없이 합의하는 기존 관행이 유지되는 가운데, 공개적 부인까지 금지되던 부담이 줄어드는 셈이다. 반면 규제당국은 시장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제재의 근거와 절차적 정당성을 더욱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월가 규제와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사안에서 이번 변화는 향후 SEC의 집행 유연성을 키우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다만 과거 사건을 재개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만큼, 단기간 내 증권시장 전반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기보다는 규제 실무와 합의 관행에 점진적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