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 독일의 세제 전문가 위원회가 향후 5년간의 세수 전망을 낮추면서, 이미 큰 폭의 재정 적자와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충격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정부에 추가 부담이 가해졌다.
2026년 5월 7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패널은 목요일 발표한 전망에서 2026년부터 2030년까지의 총 세수를 직전 전망보다 875억 유로(약 1,030억 달러) 낮춰 잡았다. 이는 독일 정부의 중기 재정 운용에 상당한 제약을 더하는 수치다.
올해의 경우 패널은 연방정부 세수가 3,820억 유로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는 10월 전망보다 99억 유로 적은 수준이다. 2027년 연방 세수는 약 3,950억 유로로 예상됐고, 이는 기존 추정치보다 101억 유로 낮다.
독일 재무장관 라르스 클링바일은 세수 부족의 주된 원인을 이란 전쟁으로 돌리며,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완만한 경기 회복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조 바이든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책임한 전쟁과 그로 인한 전 세계 에너지 가격 충격이 일시적으로 긍정적인 경제 모멘텀을 둔화시키고 있다”
고 말했다. 이어
“전쟁은 우리에게 돈이 든다”
며, 위기가 더 악화될 경우 정부는 언제든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 압박 심화
이번 하향 조정은 이미 역대급 지출 약속으로 팽팽해진 재정 상황에 추가 부담을 더한다. 지난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정부는 2027년 예산안 초안을 승인했으며, 여기에는 총 1,965억 유로의 차입이 반영됐다. 방위비는 국내총생산(GDP)의 3.1%까지 확대되도록 설정됐는데,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방위비 기준과 맞닿아 있다. 방위비 지출 확대는 안보 환경 악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재정 여력을 더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클링바일 장관은 새로운 세수 전망이 이미 정부의 2027년 예산 초안에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추가로 약 10억 유로 규모의 순절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세출 절감은 정부가 향후 지출을 줄여 부족분을 메우는 방식을 뜻하며, 경기 둔화기에는 정치적으로도 쉽지 않은 선택지다.
올해의 경우 장관은 약 50억 유로의 순세수 부족이 예상되지만, 이는 최근의 관행처럼 예산 집행 과정에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즉, 연말까지의 실제 집행 속도와 지출 조정을 통해 당장의 충격을 흡수하겠다는 의미다.
독일 경제연구소 DIW는 이번 전망을 경고 신호로 규정하며, 세금 감면에 대한 요구가 점점 좁아지는 재정 공간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상공회의소협회도 성장 없이 정부가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는 계속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는 세수 확대의 핵심이 결국 경기 성장에 달려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독일 정부는 이미 2026년 성장률 전망을 0.5%로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그 배경으로는 이란 위기의 충격이 지목됐다. 성장률이 낮아질수록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의 세수 기반은 약해지며, 국가 재정에는 연쇄적인 부담이 뒤따른다.
물가와 고용 지표도 재정 여건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독일의 EU 조화 소비자물가는 4월 2.9%로 상승했으며, 이는 전년 동월 대비 10.1% 급등한 에너지 가격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같은 달 독일의 실업자 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300만 명 선을 넘어섰다. 물가 상승과 고용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은 소비 여력을 약화시키고, 경기 회복 속도도 늦출 수 있다.
연정 갈등 격화 가능성
세수 부족은 메르츠 총리의 보수 성향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CDU/CSU)과 클링바일 장관이 이끄는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 사이의 갈등을 더 격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양측은 지출 우선순위, 세제 개편, 복지 정책을 놓고 이미 이견을 보여 왔으며, 재정 압박이 커질수록 협상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CDU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독일인의 73%는 메르츠 총리의 경제 운영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경제 불안이 단순한 수치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신뢰도와 연정의 안정성까지 흔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클링바일 장관은 메르츠 총리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며 공동 세제 개편의 조건도 제시했다. 그는 고소득층이 더 큰 부담을 져야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실질적인 세금 경감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세제 개편 논의가 향후 독일 정치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이번 세수 전망 하향은 단기적으로는 2026년·2027년 예산 편성에 부담을 주고, 중기적으로는 독일의 성장률, 국채 발행 규모, 복지·국방 지출의 배분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너지 가격 충격과 경기 둔화가 이어질 경우 세입 기반은 더 약해질 수 있으며, 그럴수록 정부는 증세, 지출 삭감, 차입 확대 중 더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독일 재정 정책이 향후 몇 달 동안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느냐가 유로존 전체의 경제 심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하향 조정은 단순한 회계 수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