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항공유 공급 불안에 대응해 중동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등 다른 지역으로의 수입 다각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EU는 지속가능항공연료(SAF) 및 합성연료 등으로 자급력과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더 큰 비중을 두는 내용의 권고안을 마련 중이다.
2026년 4월 20일, 로이터(Reuters)의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신지침은 내주 공개될 예정이며, 현재 최종 조율 단계에 있다. 보도에는 초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회의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 발언들이 포함됐다. 해당 관계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며,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대변인은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응안을 내주 발표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배경과 현황
유럽 항공사들은 이란 전쟁으로 인해 몇 주 내 항공유 부족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은 항공유의 약 30%~4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중 적어도 절반은 중동(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유입되는 물량)에서 들어온다. 이에 따라 여름 성수기 항공 운항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 대변인은 “가용 공급은 여전히 주요 우려사항(Availability of supply ‘remains the primary concern’)”이라고 말했고, 만약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공급이 계속 교란된다면 항공유 비축물의 공동 방출 등 조치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책 권고안의 주요 내용
보도에 따르면 EU의 비구속성 권고안은 다음과 같은 핵심 사항을 담을 예정이다. 우선 항공사와 회원국에 항공유 부족 상황에서의 대응 지침을 제시하고, 공항 슬롯 손실, 예약 취소로 인한 보상 문제 등 운영상의 쟁점을 정리한다. 또한 항공사가 저렴한 지역에서 추가 연료를 적재하는 관행을 규제하는 반 탱커링(anti-tankering) 규칙의 적용과 예외 여부를 명확히 할 방침이다.
권고안은 특히 결항이 ‘예외적 사유’로 보상면제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할 예정이다. 다만 EU는 항공사들이 주장한 배출권거래제(ETS)와 SAF 의무할당의 변경 또는 유예 요청은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정제 능력과 물류망 점검
집행위는 회원국 차원의 정제능력(Refining capacity) 전수조사를 EU 전체 차원에서 실시하고, 기존 정제설비의 완전 가동과 유지보수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도입할 계획이다. 초안에 따르면 “기존 정제능력이 완전히 활용되고 유지되도록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포함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한 미국에서 유입되는 Jet A 유형의 항공유를 늘리기 위한 유통·물류 측면의 검토도 포함된다. 전통적으로 유럽은 동결점(freezing point)이 더 낮아 장거리·고고도·저온 운항에 유리한 Jet A-1을 표준으로 사용해 왔다. 최근 4월 들어 미국과 나이지리아로부터의 항공유 수입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운영상 핵심 거점과 파이프라인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의 일부 주요 허브 공항들은 NATO가 운영하는 CEPS(공급 파이프라인)를 통해 유럽 규격의 항공유를 공급받고 있다. NATO 대변인은 파이프라인의 물류 관련 질문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
운항 차질 우려와 국제기구 경고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사무총장 윌리 월시(Willie Walsh)는 4월 17일(현지시간) 유럽 내 항공편이 5월 말부터 항공유 부족으로 취소되기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항공사는 이미 항공편을 감축하고 기종을 지상에 세우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동에서 통상 받던 공급 물량의 절반만 대체될 경우 6월까지 항공유 부족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공항은 호르무즈 해협이 연료 수송에 계속 봉쇄될 경우 3주 내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최근 상황
이란은 레바논에서의 휴전 합의 후 금요일에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했다. 그러나 보도에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테헤란과 합의가 완료될 때까지 해상 봉쇄는 계속된다고 발언한 내용도 담겨 있다. EU 대변인은 통항 재개가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불확실성을 반영해 “Let’s see”라고 덧붙였다.
용어 설명
항공유 종류 — Jet A는 주로 북미에서 사용하는 항공유로 동결점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Jet A-1는 유럽과 국제 항공에서 표준으로 사용되는 유형으로, 동결점이 더 낮아 고고도·저온 환경에서 안정적이다. 이로 인해 유럽 군용기와 장거리 국제선에서는 Jet A-1이 선호된다.
지속가능항공연료(SAF) — SAF는 바이오매스, 폐기물, 합성공정 등을 통해 생산되는 저탄소 항공유를 의미한다. SAF와 합성연료는 장기적으로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춰 항공업계의 탄소 배출 저감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
반 탱커링(anti-tankering) — 항공사가 연료가 싼 공항에서 항공기에 추가 연료를 싣고 이동하는 관행을 막기 위한 규칙이다. 추가 연료를 싣고 운항하면 항공기 중량 증가에 따른 연료 소비가 늘어나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 환경적·안전적 이유로 규제되는 경우가 있다.
배출권거래제(ETS) — EU의 탄소배출 규제 체계로, 항공부문도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다. 항공사들은 배출권 구매·할당을 통해 배출을 관리해야 하며, 일시적 유예 여부는 정책적 논쟁 사안이다.
가격 및 경제적 영향 분석
단기적으로 항공유 공급 불안은 다음과 같은 경제적 파급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첫째, 항공유 가격 상승은 항공사의 운영비를 즉각적으로 끌어올려 항공편 감축, 운임 인상 또는 화물 운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성수기(유럽의 여름 휴가철)를 앞둔 시점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항공사들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셋째, 항공 운송 차질은 관광·숙박·연계 서비스 산업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지역 경제 회복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구조 변화가 예상된다. EU의 권고안과 병행해 SAF와 합성연료에 대한 투자가 촉진되면, 화석 연료 의존도는 점진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이는 연료 공급의 지역 다변화뿐 아니라 정제·유통 인프라의 재조정(예: Jet A 물량 처리 능력 확보, 저장 탱크·수송망 개선)으로 이어진다. 다만 SAF의 상업적 확대에는 생산 규모, 원료 확보, 가격 경쟁력 등의 제약이 있어 단기간에 공급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에너지·정유 업계 관점에서는 정제마진(refining margins)과 원유 스프레드가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중동 공급 차질 우려가 높아지면 원유 가격은 상방 압력을 받게 되고, 정제시설 가동률이 높아지면 제품 가격(특히 항공유 가격)의 지역별 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 또한 유럽이 미국·나이지리아산 항공유를 더 많이 수입하려면 항로·기수송능력과 저장시설에 대한 추가적 투자도 수반돼야 한다.
실무적 권고 및 대비 방안
EU와 회원국, 항공사는 다음과 같은 실무적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 첫째, 항공유 재고의 투명한 공동 모니터링과 필요시 공동 방출 메커니즘 마련. 둘째, 공항별·허브별 우선순위에 따른 연료 배분과 대체 연료 혼입 계획 수립. 셋째, 항공사-공항-정유사 간 긴밀한 정보공유로 취소·지연이 발생할 경우 승객 보상 및 슬롯 관리의 명확한 기준을 확립하는 것 등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안은 단기적 충격 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에너지 안보와 항공 연료 구조 재편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유럽의 정책 대응과 산업계의 구조적 적응이 향후 항공운송의 안정성과 가격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자료: 로이터(기자 Julia Payne) 보도 및 유럽집행위원회·IATA·IEA 발표 내용 종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