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5월 20일(로이터) – 미국 기업들이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시장을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의 자금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6년 5월 20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내 전환사채 발행 규모는 올해 첫 4개월 동안 약 340억 달러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 리서치와 바클레이스 리서치에 따르면,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5년 전체 기록인 1,200억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전환사채는 채권의 이자 수익과 주식 전환 가능성을 동시에 갖춘 상품으로, 시장이 강세일 때 투자자에게 추가 수익 기회를 제공하는 특징이 있다.
AI가 자금 조달의 중심축으로 부상
올해 발행 물량의 약 절반은 어떤 형태로든 AI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클라우드 확장 등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위해 전환사채를 활용하고 있으며, 팬데믹 기간에 조달한 부채를 차환하는 용도로도 사용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의 글로벌 전환사채 책임자인 마이클 영워스는 “대부분이 자본지출, 특히 AI를 위한 설비 확충에 쓰이고 있으며, 이는 과거 사이클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말했다.
대형 거래로는 오라클의 50억 달러 조달,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의 40억 달러 발행, 호주 데이터센터 기업 IREN Limited의 26억 달러 조달이 있다. 전력 기업과 반도체 업체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넥스트에라 에너지는 23억 달러를 조달했고, 온세미컨덕터는 13억 달러를 확보했다.
분석가들은 또 다른 수요 요인으로 차환(refinancing)을 지목했다. 이는 과거에 발행한 전환사채가 만기에 가까워지면서 새 채권으로 갈아타는 과정이다. 특히 2020~2021년 팬데믹 시기 발행된 전환사채가 일반적인 5~6년 만기를 맞아 속속 재조달되고 있다. 최근 사례로는 듀크 에너지의 15억 달러 발행과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의 9억 달러 발행이 있다.
고금리·주식 희석 우려 속 전환사채의 매력
일반적인 회사채는 금리가 높아 조달 비용이 크고, 주식 발행은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을 초래한다. 이런 환경에서 전환사채는 특히 AI 중심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들에 매력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전환사채는 통상 고정 쿠폰을 지급하는 채권이지만, 발행 기업의 주가가 미리 정해진 가격을 넘어서면 주식으로 바뀔 수 있다. 이 전환 기능은 사실상 발행사 주식에 대한 콜옵션 성격을 내포하며, 주가 변동성이 커질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콜옵션은 특정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로, 전환사채의 투자 매력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다.
이 같은 잠재적 수익 가능성 덕분에 전환사채는 일반 채권보다 낮은 금리로 팔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 AI 기업 템퍼스 AI는 임상 및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AI를 활용하며, 6년 만기 전환사채를 통해 4억 달러를 조달했다. 이 채권은 만기 시 원금이 늘어나지 않고 쿠폰도 0%인 구조다. 주가가 69.26달러를 넘으면 주식으로 전환되며, 이는 발행 당시 주가보다 약 40% 높은 수준이다.
전환사채의 이런 이중적 매력은 변동성이 큰 고금리 환경에서도 수요를 지탱해 왔다. 기준이 되는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16개월 만의 최고 수준에 올라 있어, 고정금리 시장에서의 차입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더 유연하고 비용 효율적인 조달 수단을 찾고 있으며, 전환사채가 그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향후 금리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AI와 데이터센터 관련 기업들의 전환사채 발행은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 수요와 위험 요인
바클레이스의 미국 주식 전략 책임자인 베누 크리슈나는 전환사채 투자자층이 주로 헤지펀드와 대형 자산운용사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헤지펀드들은 전환사채에 내재된 내재 변동성에서 상대가치 기회를 노리고 있다. 내재 변동성은 채권 가격에 포함된 주가 변동성 기대치로, 시장이 흔들릴수록 거래 기회가 커질 수 있다.
장기 보유 성향의 투자자들 역시 AI 관련 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크리슈나는 “장기 보유 투자자들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영역인 반도체에 노출되기 위해 매수하고 있다. 이는 AI 자본지출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수요는 신용도는 다소 약하지만 성장 기대가 높은 기업들까지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올해 1월에는 화이트파이버가 데이터센터 확장을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5년 만기 전환사채 2억3,000만 달러를 발행했다. 이 회사는 2025년 8월 상장했으며, 선행 주가수익비율(P/E)이 약 마이너스 36배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LSEG에 따르면 주가가 반영하는 기업가치는 선행 EBITDA의 약 19배 수준으로, 경쟁사보다 높은 편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향후 강한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화이트파이버의 주가는 2026년 들어 현재까지 약 60% 상승했다. 영워스는 “시장 성과가 매우 좋았고 수요도 개선됐다”며 “이 모든 것이 기업들이 매우 매력적인 조건으로 전환사채 시장에 나올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반드시 특정한 조달 필요성 때문에 시장에 오는 것은 아니라며, “단지 자금이 싸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리하면, 미국 전환사채 시장은 AI 투자 확대, 데이터센터·전력망 구축, 팬데믹 시기 차환 수요가 맞물리며 급팽창하고 있다. 특히 고금리 국면에서 전환사채는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면서도 주가 상승 시 주식 전환 가능성을 제공해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매력적인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