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대치가 에너지 안보 논쟁을 뒤집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란의 영향력이 에너지 안보 논쟁의 판을 뒤집고 있다. 그동안에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날씨와 간헐성에 좌우된다는 이유로 약점으로 지적받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화석연료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더 큰 취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2026년 6월 5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전력산업연합(Eurelectric) 파워 서밋 현장에서는 중동 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적 봉쇄가 이 같은 인식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액화천연가스(LNG)는 천연가스를 초저온으로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연료로, 운송 효율이 높아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핵심적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통로가 막히면 유조선과 가스 운반선의 이동이 곧바로 차질을 빚고, 국제 유가와 가스 가격은 급등 압력을 받게 된다.

영국 기반 싱크탱크 엠버(Ember)의 에너지 전략가 킹스밀 본드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큰 구호들, 그리고 아직 사람들이 이 점을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제 화석연료가 간헐적이고 불확실한 존재가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배터리 덕분에 재생에너지는 사실상 꽤 일정해졌다. 해는 매일 아침 뜬다”며 “우리는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했고, 여전히 구 체제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 특히 유럽은 매우 빠르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헐성은 전력 생산이 일정하지 않은 특성을 뜻하며, 전력 시스템에서는 저장장치와 유연한 발전원이 이를 보완하는지가 핵심이다.

본드는 이번 에너지 충격이 정책 당국이 안보 측면에서 더 우수한 대안 기술을 실제로 갖게 된 역사상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1973년과 1979년의 오일 쇼크를 언급하며 “1970년대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원전을 지었지만 10년이 걸렸고 비용도 비쌌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양광과 풍력, 배터리, 전기화, 그리고 수많은 유연한 기술이 있다. 이들은 크고 저렴하며 확장도 가능하다.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에너지 논쟁의 배경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한 대이란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충격을 준 현실이 있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 우려가 광범위하게 확산됐고, 특히 아시아는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화석연료 위기의 최전선에 놓였다. 유럽과 아프리카도 연료 비용 상승과 식량 안보 위협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전력 생산비뿐 아니라 운송비, 비료 가격, 농업 생산비로 이어져 물가 전반을 자극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은 세계가 화석연료 운송 경로에 얼마나 깊이 의존해 왔는지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포텀(Fortum) 최고경영자 마르쿠스 라우라모는 화석연료 수입 의존에 따른 간헐성 우려에 대해 “다른 종류의 간헐성이지만 분명히 그렇다”며 “정확히 이것이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다. 수입된 이산화탄소 함유 연료에 의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자국에서 생산한 청정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지만, 우리는 매우 현실적이다. 간헐성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고, 사업이나 가정이 가스에 의존한다면 이는 큰 전환”이라고 덧붙였다.

에너지 안보 논쟁이 이처럼 변화한 것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화석연료 업계가 ‘에너지 추가(energy addition)’라는 새로운 개념을 환영했던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말 아랍에미리트(UAE) 연례 석유 회의에서 CNBC와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병행해 새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을 지지했다. 에너지 추가는 기존 화석연료 체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더해 공급을 늘리는 접근이며, 전환(energy transition)이 한 에너지원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옮겨가는 개념이라면, 에너지 추가는 병행 확대를 뜻한다.

배터리와 수력발전도 이번 논쟁에서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다. 유럽 최대 재생에너지 생산업체인 스태트크라프트(Statkraft)의 최고경영자 비르기테 링스타드 바르탈은 우크라이나와 이란 분쟁이 청정기술의 에너지 안보 서사를 바꿔 놓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배터리가 “훨씬 저렴해졌고 저장 지속 시간도 더 길어졌다”고 말했다. 배터리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많을 때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생산이 줄어들 때 방전해 간헐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바르탈은 “일부 국가에서는 과거 오전과 저녁의 어깨 시간대가 배터리로 훨씬 더 많이 대체될 수 있다. 배터리와 태양광, 혹은 배터리와 태양광·풍력 조합은 더 많은 총발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깨 시간대는 전력 수요가 피크와 비수요 시간 사이에 위치한 구간을 뜻한다.

다만 노르웨이처럼 수력발전 비중이 높은 국가도 완전히 예외는 아니라고 그는 지적했다. 바르탈은 “안보 논쟁에서 핵심은 변동성”이라며 “결국 장기간 생산이 낮아지는 구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시스템에 어느 정도의 가스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곧바로 모든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과 백업 발전의 조합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유럽의 미국산 LNG 쏠림 역시 또 다른 취약성을 낳고 있다. 2022년 초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유럽이 미국산 LNG로 급히 방향을 틀면서 비용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함께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번 호르무즈 해협 사태 이후에도 유럽에서 LNG 비중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으며, 그 상당 부분은 미국에서 들여오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옥스퍼드대 에너지·기후정책 교수 얀 로제노우는 “앞으로 유럽에는 훨씬 더 많은 LNG가 들어올 것이고, 현재 호르무즈 해협 상황을 감안하면 그중 상당 부분은 미국산이 될 것”이라고 CNBC에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국제관계에서 상당히 불안정하다고 여겨지는 한 나라에 다시 노출되는 셈이어서 매우 문제적”이라며 “반면 국내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은 그런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리하면, 호르무즈 해협 대치는 세계 에너지 안보 논쟁의 중심축을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에서 화석연료의 공급 리스크로 이동시키고 있다. 이는 향후 국제 유가와 LNG 가격, 유럽의 전력비, 아시아의 수입 에너지 비용에 추가 상승 압력을 줄 수 있다. 동시에 배터리, 태양광, 풍력, 전기화와 같은 기술이 안보 논리와 결합하면서 각국의 에너지 정책은 더 빠른 다변화와 자립성 강화 압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가스와 LNG에 대한 의존이 즉시 사라지지 않아, 가격 변동성과 공급 불안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