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 메모리(High-Bandwidth Memory·HBM)가 2026년 ‘대중화의 원년’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최신 보고서에서 “인공지능(AI)의 연산 집약적 수요가 메모리 지형을 재편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HBM 시장이 2026년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2025년 7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UBS 애널리스트들은 “SK하이닉스가 2026년 글로벌 HBM 비트 기준 점유율 약 50%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는 경쟁 업체들의 공세와 주요 고객사의 가격 협상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가 차세대 메모리 주도권을 굳힌다는 의미다.
단기 변수는 존재한다. 최근 엔비디아(NVIDIA)가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등 HBM 공급사와 벌이고 있는 계약 협상, 그리고 삼성전자의 HBM3E 자격 획득 시점에 따른 가격 ‘강경 인하’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UBS는 “실제 시장을 움직일 ‘본 게임’은 고객사들의 차세대 제품 설계 파이프라인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UBS는 “엔비디아와의 끈끈한 협업 구조는 여전히 SK하이닉스에 유리하게 작동한다”며 “구글·AWS·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클라우드 업체들의 애플리케이션 특화반도체(ASIC) 부문에서도 하이닉스가 메인 혹은 단독 공급사 지위를 확보했다”고 적시했다. UBS는 “경쟁 구도가 본격화되더라도 2026년 후반까지 SK하이닉스의 실적에 본격적인 역풍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AI가 불붙인 메모리 갈증은 가히 ‘역대급’이다. UBS는 “클라우드 거대 기업과 엔비디아 고객층 전반, 여기에 중국 수출 재개가 예상되는 H20 GPU를 노리는 2·3차 티어 GPU 구매층까지 가세하면서 HBM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TSMC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AI 관련 수요가 기존 예측치를 크게 상회한다”고 언급했다.
수치로 보면 HBM 비트 출하량은 2025년 1,271억 기가비트에서 2026년 1,710억 기가비트로 35% 급증할 전망이다. 이는 기존 메모리 시장 성장률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가격 변수도 관전 포인트다. HBM3E 공급사가 늘어나면서 일부 가격 조정 여지가 존재하지만, 하이닉스는 “2025년 대비 2026년 가격 하락폭은 최소~중폭에 그칠 것”이라는 입장이다. 더 중요한 것은 HBM4에서의 ‘퍼스트무버 프리미엄’이다. UBS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HBM4 단가를 기존 세대 대비 약 40% 높게 책정할 계획이며, 이는 비트당 제조원가가 50% 상승하더라도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다.
UBS는 2026년 HBM 시장 매출을 327억 달러로 예상했다. 비트당 평균 판매가격(ASP)은 전년 대비 18.5%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HBM 부문이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계산도 첨부됐다.
리스크 요인도 존재한다. 삼성전자의 증설 지연이 해소되면 가격 경쟁이 심화될 수 있고, HBM4의 제조원가 급등이 향후 추가적인 가격 협상 압박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SK하이닉스가 추진 중인 대규모 투자(설비투자·해외공장 증설)는 엔비디아 차세대 ‘블랙웰 울트라’와 ‘루빈’ 제품 로드맵에 상당 부분 연동되어 있다.
그럼에도 UBS는 “SK하이닉스 주가는 12개월 선행 기준 PBR 1.79배에 불과하다”며 “장기 평균 ROE(2026~2030E) 23.4%를 감안하면 저평가 영역”이라고 진단했다. 자본비용(COE)은 10.1%로 추산된다.
HBM은 무엇인가? HBM은 여러 개의 DRAM 칩을 수직으로 적층하고 초고속 TSV(실리콘 관통 전극) 인터포저 기술로 연결한 메모리다. 기존 GDDR 그래픽 메모리 대비 대역폭은 최대 8배, 전력소모는 절반 수준이며 패키지 면적도 크게 줄어든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대규모 AI 모델 학습·추론, 고성능 컴퓨팅(HPC), 5G 네트워크 엣지 장비 등에서 사실상 ‘필수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 시각에서 볼 때, 2026년은 HBM 시장의 ‘쿼터 시프트(구조적 대전환)’가 진행되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메모리 업계는 전통적으로 ‘수요 변동성’과 ‘재고 사이클’이라는 숙명적 리스크를 안고 움직여 왔다. 그러나 AI 워크로드 확대로 형성된 신수요는 기존 PC·스마트폰 발 주기의 진폭을 상쇄할 만큼 구조적이다. 다만, 가격 협상에 있어 구매자 우위 구도가 다가오면 마진 파동이 재현될 가능성 역시 열려 있다.
결론적으로 UBS 보고서는 “소음(Noise)을 거르고 보면 2026년 HBM 시장 전망은 견조하며, SK하이닉스가 지배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요약한다. 본 매체도 AI 수요의 질적 변화가 HBM의 장기 성장성을 지지한다는 데 주목한다. 다만, 투자 관점에서는 공급 확충 속도, 원가 구조, 주요 고객의 제품 출시 일정 등 ‘변동 변수’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