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 글로벌 레이팅스가 14일(현지시간) 인도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상향했다. 이는 2007년 이후 18년 만의 첫 상향 조정으로, 견조한 경제 성장, 통화정책의 신뢰도 제고, 지속적인 재정 건전화가 주된 배경으로 꼽혔다.
2025년 8월 14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상향 조정은 2024년 5월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수정한 지 1년 남짓 만에 실제 등급으로 반영된 결과다. 당시 S&P는 ‘강한 성장’과 ‘정부 지출의 질적 개선’을 근거로 들었는데, 이번 결정은 그 평가가 구체적 수치로 입증됐음을 의미한다.
Fitch는 2006년 이후 줄곧 인도를 ‘BBB-’로 평가하고 있으며, 무디스는 2020년 6월부터 ‘Baa3’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조정으로 S&P는 세 기관 가운데 가장 먼저 인도를 ‘투자적격 최하단’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 셈이다.
무역 의존도와 관세 리스크1에 대한 평가도 포함됐다. S&P는 미국이 인도산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인도 경제가 내수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충격이 관리 가능(manageable)하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이유로 관세를 두 배로 올린 결정과 관련해, 인도 경제의 구조적 회복력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상향은 견조한 성장세와 물가 기대를 앵커링한 통화정책 환경을 반영한다.” — S&P 글로벌 레이팅스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22~2024 회계연도 평균 8.8%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치를 기록했다. S&P는 3개년 전망치로 연평균 6.8% 성장을 제시했으며, 이는 광범위한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국가부채 비율을 완만하게 낮추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인도 재무부는 즉각 성명을 내고 “2030년대 중반까지 고성장을 지속해 2047년 선진국 진입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부는 구조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S&P는 송금·전환(Transfer & Convertibility) 평가도 ‘BBB+’에서 ‘A-’로 한 단계 상향했다. 이는 대외 유동성과 외화 결제 능력이 향상됐다는 뜻이다.
국가부채 비율은 2025 회계연도 83%에서 2029년 78%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인도의 회계연도는 매년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다.
발표 직후 외환·채권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루피화는 달러당 87.66루피에서 87.58루피로 강세를 보였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6.45%에서 6.38%로 7bp 하락했다.
피덴트 애셋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아이쉬바르야 다디히치는 “최근 미국 대통령이 인도 경제를 ‘죽었다’고 표현한 직후라 시장에선 ‘희소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장기물 위주 채권 랠리의 수급 우려가 완화돼 외국인 채권 투자 유입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S&P는 재정적자 축소 의지가 약화되거나 구조적 성장세가 둔화될 경우 등급이 다시 하향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대로 일반정부 부채 순증가율이 GDP 대비 6% 이하로 장기간 유지될 경우 추가 상향 가능성도 열어뒀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이 축소돼 추가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더라도, 현재 국제유가와 러시아산 원유 간 가격 차가 좁아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modest)’할 것이라는 진단도 덧붙였다.
아누라다 타쿠르 인도 경제사무 차관은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동일한 요소를 확인하고 조만간 등급을 조정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용어 풀이
국가신용등급(Sovereign Rating)은 한 나라가 외채를 상환할 능력과 의사를 정량·정성으로 평가한 지표다. 투자 등급 가운데 ‘BBB’는 글로벌 기관투자가가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간주된다. ‘BBB-’는 같은 투자등급 범주의 최하단으로, 한 단계만 내려가면 투기등급으로 분류된다.
송금·전환 등급은 외국인이 자국 통화 자금을 해외로 송금하거나 외화로 전환할 수 있는지 평가한다. 통상 국가신용등급보다 한 단계 이상 높게 책정되는 경우 해당국의 외환 규제 리스크가 낮다고 볼 수 있다.
❚ 기자 해설
이번 결정은 인도가 지난 10여 년간 추진해 온 재정 건전화—특히 보조금 축소, 재정 분권화, GST(부가가치세) 전면 도입—의 성과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또한 2016년 설립된 통화정책위원회(MPC)의 독립성 강화가 물가 기대를 안정시켰다는 점도 확인됐다. 인도 중앙은행(RBI)은 물가상승률 목표 4%(±2%p)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어,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시장 관점에서 등급 상향은 글로벌 인덱스 편입 가중치 증가와 자본조달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채권·주식 인덱스 운용자들은 투자적격 등급 변화를 면밀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실제 2023년 JP모간이 인도 국채를 신흥국 채권지수에 편입했을 때도 유사한 자금 유입 효과가 관측됐다.
다만 재정적자 축소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2025 회계연도 중앙정부 재정적자 목표는 GDP 대비 5.1%이며, 주(州) 정부를 합산한 일반정부 적자는 8%대에 육박한다. S&P가 ‘균형발전형 성장’이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유지하려면 투자 확대와 지출 효율화, 두 축의 균형이 절실하다.
결국 등급 상향은 ‘선(先)평가·후(後)검증’ 구조다. 향후 3년간 6%대 중후반 성장률을 실현하고, 인플레이션을 4% 근처로 제어하며, 부채비율을 70%대 후반으로 낮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2047년 ‘선진국 비전’ 달성 여부와 직결된다.
이번 발표를 계기로 다른 평가사들의 후속 조정이 이뤄지면, 인도는 투자적격 등급 중위권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는 차입 비용 감소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루피화 국제화에도 긍정적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의 고율 관세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외 변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내수 중심의 거대 시장 규모와 빠른 디지털 전환 속도는 인도가 외풍을 상쇄할 핵심 버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등급이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향후 재정·통화·구조개혁 삼박자가 얼마나 조화롭게 구현되느냐가 중요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