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에 설치한 ‘Make America Healthy Again(MAHA) 위원회’가 아동을 겨냥한 고지방·고당분·고염분 식품 광고를 제한하도록 연방 기관에 권고할 예정인 가운데, 식품업계의 로비 공세가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25년 8월 3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MAHA 위원회 2차 보고서(미발간) 초안은 아동 대상 식품 광고를 제한하기 위한 업계 가이드라인 수립
을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관계 기관에 검토하라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식품회사가 매년 ‘수십억 달러’를 들여 TV·소셜미디어에서 불건강 식품을 아동에게 직접 마케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MAHA 위원회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이끌고 있으며, 위원회 관계자들은 5월 발표한 1차 보고서에서 초가공 식품(ultra-processed food) 위기
를 미국 아동 건강의 핵심 문제로 지목했다. 초가공 식품은 원재료를 화학적·물리적으로 다량 가공해 맛과 보존성을 극대화한 식품군으로, 비만·당뇨·심혈관 질환과의 연관성이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식품업계의 방어전도 본격화됐다. 코카콜라, 펩시코, 콘아그라 브랜드, 몬델레즈 글로벌(오레오) 등은 7월 로비 공시에서 MAHA 보고서를 논의 주제로 명시했으며, 맥도날드 역시 1월 이후 167만 달러 이상을 로비에 지출했다. 업계는 어린이 영양 프로그램·표시제도·MAHA 권고안 등 다방면에서 로비를 펼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은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공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아동 마케팅 자율규제 프로그램 참여 기업들의 로비 지출은 1,250만 달러로 전년 동기(1,130만 달러) 대비 증가했다. 아직 대규모 입법안이 추진되지 않는 단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지출이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식품 마케팅은 특히 아동의 식습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며 “미국은 EU·라틴아메리카 일부 국가가 채택한 아동 보호 규제가 부족하다” — 닉 프로이덴버그, 뉴욕시립대 보건대학원 교수
프로이덴버그 교수는 지난 25년간 청소년 대상 불건강 식품 마케팅 연구를 종합한 논문을 공동 집필했으며, 이번 MAHA 권고안이 실질적 규제 도입으로 이어질지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CFBAI란 무엇인가?
‘Children’s Food and Beverage Advertising Initiative(CFBAI)’는 미국 주요 식품·외식 기업이 가입한 자율규제 프로그램이다. 참가사는 만 6세 미만 아동에게 직접 광고하지 않고, 만 13세 미만에게는 ‘충분히 영양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만 홍보한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제너퍼 해리스 코네티컷대 연구원은 “허점이 너무 많아 사실상 유명무실
”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CFBAI 책임자 대니얼 레인지(Daniel Range)는 “체감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고 반박했다.
실제론 CFBAI의 ‘광고’ 정의 범위가 좁아, 학교 행사·스폰서십·인플루언서 협찬 등은 규제 사각지대다. 또한 ‘영양 기준’ 평가 방식이 기업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정책 추진 전망과 시장 파급효과
전문가들은 MAHA 권고안이 2011년 FTC의 실패한 가이드라인과 유사성을 지적한다. 당시 FTC는 ‘전면 자율 규제’를 목표로 했으나 업계 로비로 좌초됐다. 이번에도 법제화가 아닌 ‘가이드라인’에 그친다면, 실효성 확보가 최대 난관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공중보건 위기 인식이 확대되면서, 투자자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기관투자가도 식품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추세다. 규제 리스크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와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는 단순 로비를 넘어 제품 포트폴리오 개편·저당·저염 신제품 개발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화이트하우스 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정책 결정의 골드 스탠더드 과학
만을 고려하겠다고 밝혔으며, 보건복지부(HHS)는 논평을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이 발언이 과학적 근거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업계의 ‘과학 연구 후원’을 통해 논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해석한다.
기자 해설: MAHA 위원회는 ‘예방 의료·생활 습관 개선’을 내세우며 초가공 식품과 백신 회의론을 동시에 언급해 진보·보수 양측 모두와 갈등을 빚어 왔다. 현재 보고서 초안은 이념을 떠나 ‘아동 건강’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움으로써 정치적 저항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시장 자율을 중시해 온 만큼, 실제 입법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로비 공시 증가세는 업계가 이미 정책 대응 모드에 돌입했음을 방증한다.
결국 관건은 (1) FTC·HHS 등 규제 기관이 어느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느냐, (2) 의회가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느냐, (3) 소비자·투자자 압력이 기업의 실질적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추가 용어 설명: ‘초가공 식품(ultra-processed food)’은 정제 설탕·정제 전분·가공유지와 인공첨가물을 다량 포함하며, 공정 과정에서 본래 식품의 형태와 영양소가 크게 변형된 제품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패스트푸드, 달콤한 시리얼, 일부 스낵류가 해당된다.
향후 몇 주 내로 2차 보고서가 공식 발표되면, 업계와 공중보건 단체 간 ‘표준 설정’ 주도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광고비·로비비 규모와 소비자 여론, 국제 규제 동향이 맞물려 미국 식품 광고 정책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