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미국 조선소 인수 협상 중…“美 군함 시장 공략 가속”

울산/로이터HD현대중공업미국 조선소 인수를 위해 여러 기업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회사 고위 임원이 밝혔다. 글로벌 최대 수주 잔량을 보유한 한국 조선사가 도널드 트럼프 전(前) 대통령의 ‘미국 조선산업 부흥’ 정책 기조에 발맞춰 북미 생산 거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2025년 9월 1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해양방산·특수선본부 기획‧경영담당 정우만 본부장은 울산 본사 인터뷰에서 “미래 어느 시점에는 미국 내 제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 명확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협상 대상 기업명과 투자 규모는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정 본부장은 HD현대가 2035년까지 연 3조 원(약 22억 달러) 규모의 미 해군 군함 건조 매출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중 해군 전력 격차가 확대되고 미국의 자국 내 군함 건조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은 동맹국이 이미 구축한 인프라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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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조선업 현주소와 한국·중국의 우위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최대 생산능력을 자랑했던 미국 조선업은 UN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 기준 2024년 세계 시장 점유율 0.04%로 추락했다. 반면 중국과 한국세계 상선 건조량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운영 중인 주요 조선소로는 필리십야드(Philly Shipyard)—2024년 한국 한화오션이 인수—가 있으며, 서부 해안에서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전천후 조선소를, 버지니아주에서는 헌팅턴 잉걸스가 미 해군 핵심 공급사로서 군함을 건조 중이다.


한국의 대미 투자 확대와 HD현대의 합병 전략

대한민국 정부는 2024년 7월, 미국 조선업에 1,500억 달러를 포함한 총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HD현대 역시 8월 말, 계열사 HD현대미포조선과 합병을 선언하면서 “미포의 중형선·특수선 역량을 활용해 미·한 공동 군함 프로젝트를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정우만 본부장 인용 – “미국 조선소 인수 이후 숙련 노동력 부족이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현지 근로자의 상당수가 1년 내 퇴사하는 것도 문제”

HD현대는 페루 조선소 설립 경험을 감안할 때, 미국 현지 작업자의 생산성 향상에는 3~5년이 필요하다고 전망한다. 정 본부장은 또 “최근 조지아주 현대차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 근로자 수백 명이 비자 문제로 체포된 사례처럼, 이민 정책 개선과 한국인 트레이너 비자 완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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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장벽: 존스법버네스-톨레프슨 수정조항이란?

존스법(Jones Act)은 1920년 제정된 미국 해상운송보호법으로, 미국 국내 구간 화물미국 건조·미국 선적·미국 선원이 운영하는 선박만 운송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또 버네스-톨레프슨 수정조항(Byrnes-Tollefson Amendment)은 외국 조선소가 미 해군함을 건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정 본부장은 “미 의회가 관련 법을 전면 폐지하기는 어려우나, 제3국 조선사에 한정적 예외를 허용하는 개정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HD현대가 울산에서 18개월 만에 진수한 8,200톤급 이지스 구축함을 예로 들며 “동급 함정을 미국 조선소보다 1/3 이상 빠르게 건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전망과 전략적 의의

정 본부장은 “군함 시장만 놓고 보면 미국만큼 매력적인 시장은 없다”면서도 “미국과 사업하려면 결국 미국 현지화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피력했다. 즉, 인수 대상 조선소를 기반으로 미국 법규를 준수하면서도 한국식 공정·생산성을 이식해 원가와 기간을 동시에 절감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HD현대가 필리십야드를 인수한 한화오션, 그리고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한 한화그룹과 같은 선행 사례를 참고해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방산 전문가는 “한국 조선 업계의 강점인 모듈화 공정·스마트야드 시스템이 미국 조선업 부활의 핵심 촉매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용어 설명Glossary

이지스 시스템(Aegis) – 미국 록히드마틴이 개발한 함정 전투체계로, 방공·대잠·탄도미사일 방어를 통합 수행한다.

모듈화 공정 – 선체·엔진 룸·상부 구조 등을 대형 블록 단위로 선행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조 기간을 대폭 단축한다.

스마트야드 –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해 설계·생산·공급망 데이터를 실시간 통합 관리하는 조선소.


이번 협상이 성사될 경우, HD현대는 한국 조선 기술을 미국 현지에 직접 이전함으로써 미 해군 전력 공백을 단기간에 보완하고, 자사 방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