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리튬 배터리가 탑승객 객실에 가져올 수 있는 화재 위험을 경고하며 항공사들에 즉각적인 안전 경보(Safety Alert)를 발령했다. 기관은 최근 보고된 다수의 심각한 사고를 근거로, 승객과 승무원이 소지한 전자기기·보조배터리 등에 포함된 리튬이온 배터리가 불러올 수 있는 화재·연기·고열 위험에 대한 대응책을 재점검하라고 주문했다.
2025년 9월 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FAA는 항공사들에게 위험 완화 전략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여기에는 ① 승객에게 명확한 안내 메시지 제공, ② 객실 내 화재 진압 절차 개선, ③ 승무원 교육 강화가 포함된다. FAA는 “승객이 기내에 반입하는 배터리는 매우 작은 결함만으로도 빠르게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을 일으켜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50건에 달하는 올해 사고 집계
FAA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50건의 리튬이온 배터리 연기·화재·극심한 열 발생 사례가 보고됐다. 일부 사고는 항공기 회항(diversion)이나 부상으로 이어졌다. FAA는 “사례가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지만 신고되지 않은 사건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8월 5일, 댈러스발 마드리드행 아메리칸항공(American Airlines) 여객기에서는 승객 스마트폰이 과열돼 연기를 내뿜었다. FAA는 ‘승객이 화상을 입었으며, 항공기 바닥 일부가 손상돼 추가 지연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례로는 7월 12일, 시카고 오헤어공항을 출발해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향하던 여객기에서 승객 노트북이 과열돼 연기가 발생한 사건이 있다. 승무원은 노트북을 화재 억제 가방에 넣어 화장실에 보관했으나, 결국 항공기는 와이오밍주 캐스퍼에 비상 착륙해야 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란 무엇인가?
리튬이온(Lithium-ion)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와 재충전 성능으로 스마트폰·노트북·전동 공구·전기차에 널리 쓰인다. 그러나 내부 단락, 외부 충격, 과충전 등의 이유로 내부 화학 반응이 폭주할 경우 섭씨 수백 도까지 온도가 치솟고, 불꽃·유독가스가 방출될 수 있다. 항공기 객실이나 수하물칸 같은 밀폐 공간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초기 진화가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FAA는 만약 화재가 발생하면 리튬 배터리 전용 소화포 또는 물로 즉각 냉각해야 하며, 절대로 산소 공급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산소가 차단되면 배터리 내부에서 자체 산소가 발생하며 더 큰 폭발을 유발할 수 있다.
화물 운송에서의 추가 위험
여객기뿐 아니라 화물기에서도 리튬 배터리 관련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FAA는 지난주 LG에너지솔루션(LG Energy Solution)에 6만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해당 업체가 위험물 규정을 위반해 노트북용 배터리를 부실 포장·신고 누락 상태로 수하물에 실었다는 이유다.
FAA 조사 결과, 2024년 1월 서울⇔로스앤젤레스 구간에서 포장이 부실한 리튬이온 배터리 5개가 항공 화물로 운송됐다. 해당 화물은 비행기에서는 큰 사고 없이 옮겨졌지만, FedEx 어바인(Irvine) 물류센터에서 불꽃을 일으키며 발화해 직원이 곧바로 발견해 진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FAA는 이러한 사례를 토대로 “항공사와 화물 운송업 체는 신고·포장·라벨링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위험물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항공사에 대한 구체적 권고 사항
- 승객 및 승무원에게 ‘리튬 배터리 화재 시 즉시 알릴 것’이라는 안내 브리핑을 의무화
- 기내 소화 장비(소화포·소화기·화재 억제 가방)의 수량 및 위치 재점검
- 배터리 관련 비상 매뉴얼을 분기별로 업데이트하고, 승무원 시뮬레이션 교육 실시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전자기기 휴대가 증가하면서 ‘배터리 폭주’ 사고 확률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지침보다 더 엄격한 자체 기준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FAA는 마지막으로 “승객이 열이 발생하거나 변형된 전자기기를 발견하면 즉시 승무원에게 알리고 전원을 차단하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항공사는 사전 탑승 안내, 좌석 앞 안전 카드, 객실 모니터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위험성을 재차 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