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은행들이 글로벌 무역 갈등이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경기침체 시나리오에도 견딜 수 있는 충분한 자본력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유럽은행감독청(EBA)이 2025년 8월 1일 발표한 최신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2025년 8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EBA 스트레스 테스트는 총 64개 EU 소재 은행(이 가운데 51곳은 유로존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시험은 2025~2027년 3개년에 걸친 ‘기준’과 ‘역경(adverse) 시나리오’를 설정해 자산·부채 건전성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어떤 은행도 핵심 자기자본비율(Common Equity Tier1, CET1) 최소 요건을 밑돌지 않았고, 레버리지 비율 요건을 위반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스트레스 테스트는 ‘만약 ○○ 상황이 벌어진다면 은행이 버틸 수 있는가’를 가정해 자본 손실을 시뮬레이션하는 제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감독당국은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방지하고자 이러한 정교한 평가 방식을 도입했다. EU 감독당국은 테스트 결과를 Pillar 2라 불리는 개별 은행 자본 추가 적립 지표 산정에 활용한다.
“이번 결과는 최근 수년간 은행들이 구축해 온 복원력(resilience)을 보여준다.” — EBA 보고서 중
역경 시나리오의 핵심 가정
이번 시나리오는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보호무역주의 심화를 전제로 했다. EBA는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 ▲공급망 붕괴 ▲소비·투자 급감 등을 상정했고, 그 결과 EU 국내총생산(GDP)이 2025~2027년에 누적 6.3% 하락하는 상황을 모델링했다.
이 같은 환경에서 64개 은행이 입을 잠재적 손실액은 5,470억 유로로, 2023년 스트레스 테스트 당시 예상(4,960억 유로)보다 늘었다. 특히 미국 대형은행의 유럽 자회사들은 자본 감소 충격이 컸으나, CET1 비율 최저 한도를 넘긴 곳은 없었다.
구체적 수치와 은행별 영향
테스트 결과 샘플 전체 CET1 비율은 ‘전환기(transitional)’ 규정 적용 시 2024년 15.8%에서 2027년 12.1%로 3.7%p 하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이는 감독당국이 요구하는 최소 수준(현재 약 10% 안팎)을 충분히 상회한다.
주요 은행별로 보면, 도이체방크는 2027년 CET1 비율이 10.2%로 예상돼 평균보다는 낮으나 2023년 테스트 때 기록한 8.1%보다 개선됐다. 코메르츠방크는 10.5%, 인테사산파올로는 12%로 나타났다.
국가별로는 아일랜드·덴마크·프랑스·독일·벨기에 은행들이 가장 큰 자본 감소 영향을 받았다. 개별 기관 중에는 독일 주(州) 소속 란데스방크 바덴뷔르템베르크(LBBW)와 다른 두 곳의 지역 은행, 프랑스의 크레디아그리콜·라방크포스탈이 큰 폭의 자본 유출을 경험했다.
레버리지 비율과 보너스·배당 제한
레버리지 비율(총 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은행은 한 곳에 불과했으나, 17개 은행은 3개년 중 최소 1년 이상 임직원 보너스나 배당금 지급에 제약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로존 감독당국(European Central Bank)의 별도 평가
ECB도 EBA 평가 대상 51개 은행에 추가 45개 중소 은행을 더해 자체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했고, ‘전체적으로 양호하다’는 동일 결론을 내렸다.
“은행권은 과거보다 훨씬 두터운 손실흡수 능력을 확보했다. 다만, 지속적인 자본 관리와 보수적 배당 정책이 여전히 중요하다.” — ECB 관계자
전문가 시각과 시사점
기자의 시각에서 볼 때, 이번 결과는 ▲유럽 은행 규제가 글로벌 표준 대비 엄격해졌다는 점 ▲은행 내부의 위험관리 모델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재확인해 준다. 특히 2024~2025년 중동 분쟁 격화와 미·중 관세 분쟁 심화 등 지정학적 변수가 현실화되고 있음에도 은행 시스템이 ‘시스템 리스크’ 경계선 밖에 머물렀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거나 에너지 가격이 재차 급등할 경우 소비·투자 부진이 구조화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한계기업 부채 부실화가 은행 손실로 전가될 위험이 존재하므로, EBA와 ECB가 요구하는 자본 상향 조정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독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용어
- CET1 비율: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핵심 자기자본(보통주·이익잉여금 등) 대비 위험가중자산 비율.
- 레버리지 비율: 총 자산(위험가중치 적용 전) 대비 자기자본 비율. 복잡한 위험모형을 적용하지 않고 은행 총 자산 대비 자본의 ‘완충력’을 보여준다.
- Pillar 2: 감독당국이 스트레스 테스트 및 리스크 평가를 토대로 개별 은행에 추가로 부과하는 자본 요구·가이드라인.
결론적으로,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는 EU 은행권이 과거보다 훨씬 견고해졌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자마진 축소, 부동산 경기 둔화, 잠재적 신흥시장 손실 등에 대비해 여전히 신중한 자본·유동성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 향후 감독당국의 Bazel III 완전 도입(2033년) 및 글로벌 규제 환경에 따라 은행별 자본 정책이 재조정될 개연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