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워싱턴] 유럽연합(EU)과 미국 간 새 무역협정의 윤곽이 드러났으나, 와인·증류주(wine & spirits) 부문은 당초 기대와 달리 최종 문서에서 빠졌다. EU의 마로시 셰프초비치(Maros Sefcovic)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21일 기자회견에서 “해당 품목은 이번 프레임워크 협정framework agreement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도 “향후 협상 테이블에 다시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2025년 8월 2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EU 집행위원회가 와인·증류주 분야 관세 인하 문제를 공식 의제로 삼을 명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미국 측과의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솔직히 인정한다”는 말로 협상의 난항을 예고했다.
협정의 핵심 및 공백
이번 EU-미국 무역 프레임워크는 디지털 상품, 청정에너지 기술, 일부 농·축산물 등에 대한 관세(tariff) 완화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알코올 음료, 특히 와인·위스키·보드카·코냑 등 고부가가치 증류주가 제외되면서 양 업계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관련 업계는 “양측에 서로 막대한 시장이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관세 장벽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성장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전문용어 해설
프레임워크 협정은 본격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전에 양측이 큰 틀에서 합의한 사전 이해각서 형태로, 세부 품목별 관세율이나 비관세 장벽 해결 방식을 추후 협의하도록 설계돼 있다. ‘관세(tariff)’는 해당 품목이 수입될 때 부과되는 세금으로, 통상 시장 보호·재정 확보 목적이 크다.
“이번 협정에서 와인·증류주를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EU 집행위원회는 해당 의제를 곧장 다시 제기할 것이다.” —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시장·산업 영향 및 전망
EU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EU산 와인·증류주 대미 수출액은 약 46억 유로(한화 약 6조6천억 원)에 달한다. 관세율은 품목별로 5%에서 최대 25%까지 다양해, 인하·철폐 시 양측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다. 프랑스 보르도 생산자 협회는 “합의가 이뤄질 경우 미국 내 소매가격이 병당 평균 3~4달러 낮아질 것”이라고 추산했다.
반면 미국 캘리포니아·워싱턴주 와이너리는 EU 시장에서 자국 제품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며 면밀한 균형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셰프초비치 위원도 “상호호혜(mutual benefit)가 확인돼야만 정치적 합의가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기자의 관전 포인트
첫째, 대선·의회 선거 일정이 실질 협상 속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탄소국경조정제(CBAM) 같은 환경 규제가 술 제품에도 확대될지 주목된다. 셋째, 각국의 보건·세수 목적의 주세(酒稅) 정책이 교차 관세와 별도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단순 관세 철폐만으로는 ‘완전한 시장 개방’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전문가 의견
브뤼셀 소재 싱크탱크 유로페언폴리시센터(EPC)의 엘로디 모랑 선임연구원은 “EU와 미국 모두 자국 농민·주류업계의 압박을 받고 있다”며 “결국 소비자 후생과 산업 보호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일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일정
셰프초비치 위원은 “실무단(TWG·Technical Working Group)을 가을 안에 구성해 와인·증류주 관세 문제를 별도 다룰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U 측 통계 자료 검증 및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의 사전협의가 10월 초로 잡혀 있어, 양측이 연내에 최소한의 ‘원칙 합의’를 도출할지 주목된다.
결론 및 전망
요약하면 EU·미국 간 와인·증류주 시장은 여전히 관세 장벽에 묶여 있으나, 양측 모두 전면적 협상 재개 의지를 공공연히 밝혔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퍼지고 있다. 다만 이해관계자가 많고 정치적 변수도 산재해 있어, 2026년 이후가 돼서야 실질적 관세 인하 효과를 체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수입·유통업계 역시 “가격 결정·물류 전략을 유연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