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위원인 마르틴스 카작스 라트비아 중앙은행 총재가 오는 12월 18일 개최될 통화정책 회의를 “정보가 풍부한( rich ) 시점”으로 규정하며, 2% 물가 목표에서의 이탈 가능성을 판단할 중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5년 9월 12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ECB는 11일(현지시간) 정례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성장·인플레이션 전망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평가를 유지했다. 이에 따라 시장 일각에서 기대해 왔던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은 한층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카작스 총재는 인터뷰에서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된 상황에서 구체적 전방지침(forward guidance)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12월 회의는 신(新) 경기·물가 전망치가 공개되어 2% 목표에서의 편차 규모와 지속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
12월은 정보를 가장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회의다. 새로운 전망치를 보면 물가가 2%를 벗어나는지, 벗어난다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또한 로이터통신에, 10월 29일 차기 회의까지는 미국발 관세(타리프) 등의 영향이 충분히 파악되지 않을 것이라며, 12월 회의가 사실상 핵심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CB가 11일 발표한 최신 전망치는 현 물가 상승률이 약 2% 수준에서 내년 1.7%, 2027년 1.9%로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카작스 총재는 2027년 전망에 반영된 EU의 신(新) 배출권거래제(ETS2) 시행이 정치적 이유로 지연될 경우, 물가에 “상당한 하방 압력”이 가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ETS2는 우리 2027년 전망치에 0.3%포인트가량 영향이 반영돼 있다”며 “만약 제도가 예정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인플레이션이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TS2는 자동차·건물용 연료 공급자에게 CO2 가격을 부과하는 새로운 탄소시장으로, 연료가격 인상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유도한다. 그러나 독일·체코 등 16개 회원국은 소비자 부담을 우려하며 가격 상한제(Price Cap) 등 추가 안전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카작스 총재는 유로화 환율 변동과 중국발 ‘디플레이션 수출’도 핵심 리스크로 꼽았다. 유로화가 강세면 수입물가가 내려가지만, 약세면 반대 상황이 나타난다. 또한 중국 기업들이 낮은 가격의 제품을 유럽에 공급하면 유로존 내 물가를 끌어내리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불확실성이 높고 리스크 시나리오가 다양하다”며 “따라서 회의별·데이터 기반으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 용어 풀이 및 배경
ETS2(Emissions Trading System 2)는 기존 산업부문 중심의 EU 배출권거래제(EU ETS)를 교통·건물 부문까지 확대해, 해당 연료 공급업체에 이산화탄소 가격을 부과하는 제도다. 2027년 전면 시행이 목표이며, 시행 시 연료비 상승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EU ‘탄소중립 2050’ 달성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소비 전력·연료 가격 인상 우려가 커지면서 독일·체코 등은 가격 급등 시 자동으로 개입해 상한을 설정하는 장치를 요구하고 있어, 제도 시행 시기와 세부 설계가 불투명해졌다. 이러한 지연 가능성은 ECB의 중장기 물가 전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 기자 해설: 왜 12월 회의가 중요한가
12월 18일 회의는 2027년까지 확장된 거시경제 전망이 함께 발표된다는 점에서 투자자·정책 입안자 모두에게 결정적이다. 특히 실질임금 회복 여부, 재정정책 기조, 지정학적 변수(우크라이나·중동) 등을 포함한 복합 시나리오가 반영되기 때문에, ECB가 ‘금리 피크’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긴축 사이클이 종료됐다”는 관측과, “필요시 한 차례 추가 인상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카작스 총재의 ‘신중론’은 후자에 무게를 두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의 언급처럼, 만약 유로화 강세와 중국발 수입물가 하락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ECB는 오히려 조기 완화에 나설 여지가 커진다.
반대로, 미국의 관세 인상·중동 리스크 장기화로 에너지 가격이 재차 급등하면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ECB는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긴축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투자자 체크리스트
① 10월 29일 회의에서 제시될 거시 환경 평가
② 12월 18일 발표되는 신규 경제전망치 및 라가르드 총재 기자회견 발언
③ ETS2 제도 입법 일정 및 가격 상한제 도입 여부
④ 유로화 환율·중국 수출물가 지표를 통한 대외물가 압력 평가
⑤ 미·중·EU 간 무역관세 변수를 통한 산업별 영향 분석
이를 종합해 보면, ECB의 향후 금리 경로는 ‘탄소 가격·교역 환경·환율’이라는 세 갈래 축의 향배에 달렸다는 점에서, 관련 데이터가 공개되는 시기마다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소지가 있다.
카작스 총재가 강조한 것처럼, 데이터에 기반해 회의별로 결정을 내리는 접근법은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거시 환경에서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 전략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