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발(Reuters) —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 피에로 치폴로네는 최근 인터뷰에서 “유로존 인플레이션 경로에 대한 위험(risk outlook)이 전반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6월 이후 여러 변수가 상쇄되면서 물가 전망의 상‧하방 요인이 엇비슷해졌다는 의미다.
2025년 7월 26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ECB는 7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으며, 향후 인플레이션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평소보다 크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경기 회복력(resilience)이 예상 외로 견조한 흐름을 보인다는 점을 병기해 시장에 미묘한 신호를 던졌다.
일부 정책위원들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2%)를 하회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하락 리스크’가 우세해졌다고 주장했으나, 치폴로네 이사는 거버닝 카운슬(정책 결정기구)의 다수 견해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그는 슬로베니아 일간지 Delo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들어 유로화 강세가 추가로 진행됐고, 에너지 가격도 소폭 상승했지만 종합적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치폴로네는 “무역 긴장(trade tensions)이 확대됐으나, 세계 경제는 지금까지 상당히 견조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부연했다. 이어 “전체적으로 6월의 평가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 기대 역시 균형적”이라고 말했다.
ECB는 2024년 6월 이후 핵심 디포지트 금리(시중은행이 ECB에 초과 유동성을 예치할 때 적용되는 금리)를 2%로 절반 인하하며 첫 번째 완화 사이클을 시작한 바 있다※유럽의 디포지트 금리는 미국 연준의 연방기금금리와 유사한 정책금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추가 인하를 서두르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시장은 올해 추가 인하 가능성을 50% 수준으로 가격에 반영했다.
“전반적 물가 압력은 완화되고 있지만, 서비스 부문 임금·가격의 점착성(stickiness)과 지정학 변수, 환율 변동성 등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할 이유가 없다.”― 피에로 치폴로네, ECB 집행이사
치폴로네의 발언은 물가 둔화가 에너지 기저 효과와 공급망 정상화에 힘입어 빠르게 나타나다가 최근에는 속도가 다소 완만해지는 국면이라는 자신의 평가를 재확인한 것이다. 그는 또한 “유로화가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면 수입물가가 안정돼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지만, 동시에 유럽 수출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미묘한 균형 구도를 강조했다.
시장 반응‧전문가 해석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ECB가 ‘데이터에 기반한 접근(data-dependent approach)’을 재차 언급함으로써, 9월 이후 물가·임금 지표가 뚜렷이 둔화하지 않는 한 추가 완화가 지연될 수 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는 “근원 인플레이션이 2%대 중반에서 더디게 내려올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이번 사이클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편 국제유가 반등과 공급망 재차 차질 가능성은 유럽 물가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치폴로네는 “현재까지는 상방·하방 요인이 균형적”이라면서도, “필요시 모든 수단을 활용해 물가를 목표로 되돌리겠다”고 전통적 중앙은행 수사(修辭)를 덧붙였다.
용어 해설
거버닝 카운슬(Governing Council)은 ECB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집행이사 6명과 20개국 중앙은행 총재가 참여한다. 디포지트 금리는 유로존 은행들이 ECB에 초과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되는 금리로, 실질적인 기준금리 역할을 담당한다.
기자 전문 통찰
ECB가 스탠스를 명확히 ‘중립’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비교할 때 유럽 경제가 상대적으로 취약해 섣부른 긴축 재개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반면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될 환경적 요인도 상존한다. 결과적으로 ECB는 ‘균형 잡힌 위험’을 강조하며, 데이터가 확실한 방향을 제시할 때까지는 관망적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9월 및 12월에 발표될 임금협상 결과, 에너지 가격 추이, 유로화 흐름이 다음 정책회의의 주요 변수로 부각될 전망이다.
향후 시장은 물가 둔화 속도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며, 예상과 달리 물가가 다시 상승한다면 ECB는 ‘추가 동결→점진적 긴축’ 시나리오로 급히 회귀할 수도 있다. 반대로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해지고 물가가 2%에 근접한다면 연내 추가 인하 가능성이 50%를 넘어설 수 있다. 투자자라면 국채금리, 유로화 환율, 에너지 가격의 상호작용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