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Yoruk Bahceli, Sara Rossi, Alun John] 유럽 채권·외환 시장 참가자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이 현 통화완화 사이클에서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쪽으로 베팅을 크게 좁혔다. ECB가 유로존 경제 전망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평가하면서, 향후 단 한 차례의 인하 여부조차 ‘동전 던지기’(50 대 50) 수준으로 후퇴했기 때문이다.
2025년 9월 1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ECB 통화정책위원들은 두 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2%에 동결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지금 ‘좋은 위치(good place)’에 있으며, 경제 위험 요인이 이전보다 더 균형을 이룬 상태”라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이 발언은 곧장 시장 참여자들의 투자 전략을 뒤흔들었다. 덴마크 최대 은행 Danske Bank의 수석 애널리스트 옌스 페테르 쇠렌센은 “이는 사실상 ‘당분간 동결 유지’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시장조사기관 ICAP의 파생상품 거래 데이터를 보면, 트레이더들은 2026년 6월 이전 ECB가 한 차례 더 금리를 인하할 확률을 55~60% 수준에서 불과 50% 미만으로 낮췄다. 지난 7월 중순까지만 해도 같은 기간 안에 ‘사실상 확정(fully priced)’ 수준으로 인하를 기대했던 것과는 극명히 대비된다.
여름 내내 줄어든 완화 기대…무슨 일이 있었나
이번 통화정책회의는 ‘여름 내내 축소된 완화 기대’의 정점에 해당한다. 7월 중순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은 12월 금리 인하를 거의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EU·미국 간 무역 협상 타결, ECB 내부의 잇따른 매파적(hawkish) 발언, 그리고 예상보다 강한 성장·물가 지표가 잇달아 나오면서 기대치는 빠르게 후퇴했다.
쇠렌센 애널리스트는 특히 라가르드 총재가 위험을 “균형적(balanced)”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시장 심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총재는 필요하다면 ※‘언어를 조정해(in the future twist the language)’ 인하 가능성을 남겨둘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용어 설명
통화정책에서 ‘매파(hawk)’는 물가 안정에 방점을 찍어 긴축에 우호적인 입장을, ‘비둘기파(dove)’는 성장·고용을 중시해 완화적 기조에 우호적인 입장을 의미한다.
인하 기대 약화는 즉각 외환·채권 시장 가격에 반영됐다. 유로화는 달러당 1.173달러 선으로 0.3% 상승했고, 독일 2년물 국채 금리는 4bp 상승한 1.99%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시점 미국 시장 흐름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에서는 최신 소비자물가(CPI) 지표 둔화로 미 국채 수익률이 하락했으며, 다음 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전망이 강화됐다.
ECB가 제시한 새 물가 전망…매파도 비둘기도 만족?
라가르드 총재는 단기·중기 전망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ECB 이사회가 2025년과 2026년 물가 전망을 각각 0.1%포인트 상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2027년 전망은 같은 폭으로 하향해 1.9%를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2026·2027년 모두 목표치(2%)를 밑돈다.
영국 LSEG IFR의 전략가 디뱡 샤는 “매파와 비둘기파 모두 만족할 만한 내용이 포함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2025년 인플레이션이 높아진다는 점은 인하 종료를 지지하지만, 2027년 목표치 하회 전망은 추가 인하의 문을 열어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은 ECB가 사실상 ‘인하 문턱’을 더 높여버렸다고 지적한다. 스위스 Pictet Wealth Management의 거시경제 리서치 책임자 프레데릭 뒤크로제는 “중기 전망상 물가가 목표를 하회한다면 통화정책은 완화적이어야 한다“며 “‘해야 한다(should)’와 ‘할 것이다(will)’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레데릭 뒤크로제 발언
“나는 그들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그것이 현 ECB의 의도다.”
기자 해설: 왜 ‘동전 던지기’가 됐나
ECB가 공개한 경제 전망표(Eurosystem staff projections)는 ‘높아진 인플레이션 경계심’과 ‘침체 우려 완화’라는 두 메시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이는 곧 ECB가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과 성장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 중, 전자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로존 내 서비스 가격 강세와 임금 인상 압력은 여전히 잠재적 위험이다. 여기에 미국 연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달러 약세·유로 강세로 유입되는 수입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ECB로서는 ‘뒤늦은 인하’로 발생할 수 있는 정책 공백을 매우 경계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유럽 제조업 경기는 이미 PMI 50선 이하를 기록하며 수개월째 위축 중이다. 고금리에 따른 수요 둔화가 장기화되면 실물경기 충격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상반된 변수들이 뒤엉키면서, 트레이더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은 ‘코인 토스’라는 표현으로 압축됐다.
요약하면 ECB는 당분간 ‘인내 전략’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은 이를 빠르게 학습하며 포지션을 조정했고, 유로화 강세·독일 국채 금리 상승이라는 즉각적 반응으로 이어졌다. 하반기 남은 변수는 실제 물가 경로, 미 연준의 행보, 그리고 지정학 리스크가 될 전망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기 박스권’을 가정한 헤지 전략과 크로스 마켓 스프레드를 활용한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요해 보인다. 특히 금리연계 파생상품(IRS·OIS) 등 복합 상품을 통한 위험 분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 본 기사는 로이터 통신 원문을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모든 수치·인용문은 원문 내용을 그대로 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