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직후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달러 인덱스(DXY)는 전장 대비 -0.28% 떨어지며 105선 초반으로 밀려났다. 시장 참가자들은 인플레이션 지표가 예상 범위 안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96%까지 높게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2025년 8월 12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CPI 결과는 ‘악재 없는 무난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헤드라인 CPI는 전월 대비 0.2% 상승해 컨센서스와 일치했으며,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2.7%로 6월과 동일했다. 시장은 2.8%를 예상했으나 0.1%p 낮아진 수치가 나왔다. 반면 핵심(Core) CPI는 전월 대비 0.3% 올라 예상치와 부합했지만, 전년 동월 대비로는 3.1% 증가해 6월의 2.9%에서 소폭 가속됐다.
자료: Barchart
올해 초 팬데믹 이후 4.25년 만의 최저치(헤드라인 2.3%, 핵심 2.8%)를 기록했던 물가 흐름이 다시 완만한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신호이긴 하지만, ‘불안 요인’이 아니라 ‘안도 요인’으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연준의 조기 완화 기대가 확산됐다.
연준 금리 인하 베팅 확대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선물 시장은 9월 16~17일 FOMC에서 25bp(0.25%p) 인하될 확률을 96%, 10월 28~29일 회의에서 추가 인하가 이뤄질 확률을 58%로 반영하고 있다. 이는 전일 각각 88%, 49%였던 수치가 CPI 발표 직후 급등한 결과다.
하지만 국채금리는 되레 올라 눈길을 끈다. 미 10년물 국채(T-note) 금리는 2.5bp 상승해 연 4.310%를 기록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우려보다 정치적 리스크가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Truth Social에 “연준 청사 공사와 관련해 제롬 파월 의장을 상대로 한 소송을 허용할지 검토 중”이라고 게시했다.
시장에선 정권 교체 시 파월 의장 축출 가능성과 그에 따른 통화정책 불확실성을 경계하며 장기금리 매도세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트럼프발 관세 변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역정책에서도 연일 고강도 발언을 내놓고 있다. 그는 중국과의 ‘관세 휴전’을 90일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지만, 동시에 반도체 수입에는 100%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했다. 다만 미국 내 생산계획을 제출하면 면제를 허용할 방침이다.
이뿐 아니라 인도산 수입품 관세를 25%에서 50%로 두 배로 올리기로 했다.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구매한다는 이유에서다. 제약·의료 부문도 ‘차기 타깃’이다. 그는 “향후 1주일 내 제약 수입품 관세를 발표하겠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모든 정책이 실행될 경우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15.2%로 상승해, 2024년 2.3% 대비 6배 이상 높아질 것”이라고 추산했다.
외환·귀금속 시장 반응
자료: Barchart
달러 약세 속에서 유로/달러(EUR/USD) 환율은 +0.23% 상승했다. 다만, 미국발 관세가 유럽 경제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고려해 유로 강세 폭은 제한적이었다. ECB(유럽중앙은행) 통화스와프시장은 9월 11일 정책회의에서 25bp 인하 확률을 5%만 반영하고 있다.
반면 달러/엔(USD/JPY)은 달러 약세에도 +0.14% 올랐다. 일본 경제가 미국의 관세 압박에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엔화 매도를 부추겼다.
12월물 금 선물(GCZ2)은 온스당 -25.2달러(-0.75%) 내렸고, 9월물 은 선물(SIU2)은 -0.152달러(-0.39%) 하락했다. CPI가 예상 수준에 머물면서 인플레이션 헤지 수요가 약화된 탓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금 수입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도 낙폭을 키웠다.
다만 ETF 자금 유입은 지속되고 있다. 금 ETF의 보유량은 월요일 2년래 최고치를, 은 ETF는 지난주 금요일 3년래 최고치를 각각 경신했다. 이는 안전자산 선호가 여전히 견고함을 시사한다.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키워드
달러 인덱스(DXY)는 주요 6개 통화(유로, 엔,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대비 달러 가치를 가중평균한 지표다. 일반적으로 100을 중심으로 강·약세를 가늠한다.
헤드라인 CPI는 에너지·식품을 포함한 전체 물가, 코어(Core) CPI는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물가를 뜻한다. 연준은 코어 지표를 중시해 정책을 판단한다.
연방기금선물은 시장이 예상하는 향후 기준금리를 반영하는 파생상품으로, 금리 인하·인상 확률 측정에 활용된다.
bp(베이시스포인트)는 1bp=0.01%p로, 금리 변동폭을 세밀하게 표시할 때 사용된다.
전망과 시사점
이번 CPI는 ‘끓지 않는 미지근한 물가’라는 평가에 걸맞다. 인플레이션 가속 우려를 누그러뜨렸지만, 핵심 물가의 반등은 연준이 목표(2%) 달성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9월 인하 가능성이 96%까지 높아졌더라도, 파월 의장은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기존 원칙을 유지할 공산이 크다.
정치·무역 변수도 적지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준 압박이 현실화될 경우, 통화정책 독립성 훼손 논란이 재부상할 수 있다. 또한 관세 전면전은 글로벌 공급망과 물가에 ‘엇갈린 영향’을 줄 수 있어, 시장은 매 데이터 발표마다 고무줄처럼 기대를 조정할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달러 약세·신흥국 통화 강세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미국 국채금리 반등세가 지속된다면, 달러 반등 트리거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투자자들은 글로벌 매크로 이벤트와 정치 리스크를 동시에 주시하며 전략적 포트폴리오 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