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 전략 재편 속 새 의장에 앨버트 매니폴드 선임

영국 에너지 대기업 BP건축 자재 업체 CRH의 전 최고경영자(CEO) 앨버트 매니폴드(Albert Manifold)를 오는 10월 새 이사회 의장(chairman)으로 임명한다고 2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BP가 최근 몇 년간 지지부진했던 주가와 불분명한 성장 전략에 대한 투자자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대대적 체질 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2025년 7월 21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매니폴드는 에너지 업계에서 고위직을 맡은 경력이 없으나, 11년간 CRH를 이끌며 기업 가치를 약 5배 성장시킨 실적을 인정받아 ‘주주가치 극대화’의 적임자로 평가됐다. BP 이사회 선임 과정(서치 프로세스)을 주도한 Amanda Blanc 수석 사외이사는 “CRH에서 보여준 주주가치 창출 경험이 BP의 다음 장을 이끌 최적의 리더임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매니폴드의) 인상적인 트랙레코드는 BP의 전략적 전환기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 ― 아만다 블랑, BP 수석 사외이사

매니폴드는 CRH 재직 기간 공격적인 M&A(인수·합병)와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사업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꿨다. 특히 2023년에는 CRH의 1차 상장지(Primary Listing)를 런던에서 뉴욕 증권거래소로 옮기며 해외 투자자 기반을 넓힌 바 있다.

BP의 현 의장 헬게 룬드(Helge Lund)(62)는 2019년부터 직을 맡아왔으나, 전 CEO 버나드 루니(Bernard Looney)의 ‘재생에너지 대규모 투자’ 전략을 강력히 지지했다가 수익성 저하와 주가 부진으로 비판받아 왔다. 2024년 4월 주주총회에서 룬드는 재선임되긴 했지만 찬성률이 대폭 하락했으며, 행동주의 펀드 Elliott Management와 기후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

BP는 4월 공시에서 “룬드 의장이 2026년께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으나, 이번 발표로 이사회 리더십 교체 일정이 2025년 10월로 1년가량 앞당겨지게 됐다.


주가 반응도 즉각 나타났다. 이날 런던증권거래소(LSE)에서 BP 주가는 402.05펜스0.5%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매니폴드 부임 이후 탄소중립(넷제로) 목표와 전통적 석유·가스 수익성을 균형 있게 조정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백그라운드: CRH와 매니폴드
CRH는 시멘트·콘크리트·아스팔트 등을 제조·판매하는 아일랜드계 글로벌 기업으로, 도로·주택·상업용 건축 시장에서 세계 최대 수준의 공급망을 보유한다. 국내 투자자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시가총액 기준 FTSE100 상위권에 속한다. 매니폴드는 2014년 CEO 취임 후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북미·유럽 인프라 투자에 집중해 영업이익률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렸다.

에너지 업계에선 왜 비(非)전통 에너지 인사를 영입했나
BP는 2020년 ‘탄소 배출 제로(넷제로) 2050’ 선언 이후 재생에너지·전기차 충전·수소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왔지만, 고유가 국면에서 석유·가스 부문 수익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 ROE(자기자본이익률)가 경쟁사 대비 뒤처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재무 전문가들은 매니폴드가 CRH에서 보여준 자산 교체 전략과 주주환원 정책을 BP에 이식할 경우, 복합 에너지 기업 구조가 보다 효율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또 다른 의장 후보군으로는 과거 센트리카(Centrica)를 이끌었던 샘 레이드로(Sam Laidlaw), 광산업체 BHP 전 의장 켄 매켄지(Ken MacKenzie)가 물망에 올랐지만 BP는 최종적으로 매니폴드를 낙점했다.


전문가 시각
시장 분석가들은 매니폴드가 단기간에 대규모 변화를 추진하기보다는, 원가경쟁력이 높은 석유·가스 자산을 현금창출원으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수익·저탄소’ 기술에 집중 투자하는 투트랙 전략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액티비스트 펀드가 요구해 온 ‘전통 사업부 분사 혹은 매각’ 시나리오와 달리, 통합 모델을 유지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접근으로 해석된다.

또한,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경험을 가진 매니폴드가 BP의 이중 상장 구조(런던·뉴욕 ADR)를 재검토해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거나, 주주 친화적 배당·자사주 매입 확대를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란 기업 지분을 취득한 뒤 배당 확대, 자산 매각, 구조 개편 등을 요구해 주가 상승을 노리는 투자자를 말한다. 대표 사례로는 엘리엇 매니지먼트, 사드 펀드(Third Point) 등이 있다. BP처럼 전통 에너지 기업이 재생에너지 투자와 주주환원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할 때, 이들 펀드는 경영진 교체나 구조조정을 압박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향후 관전 포인트
첫째, 매니폴드 취임 후 12개월 내 공개될 ‘자산 포트폴리오 재검토 결과’가 BP의 장기 밸류에이션을 가늠할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둘째, 2027년까지 예정된 550억 달러 규모의 자본지출(capex) 배분이 기존 계획과 달라질지 여부다. 셋째, 유럽 메이저(쉘·토탈에너지스 등)와 비교해 배당성향을 얼마나 높일지가 투자자 관심사다.

BP 주주총회는 매년 5월 열리며, 2026년까지 임기가 남은 헬게 룬드 의장이 남은 기간 이사회 원로(non-executive director)로서 전환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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