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 PLC가 알버트 매니폴드(Albert Manifold) 전 CRH 최고경영자(CEO)를 차기 이사회 의장으로 지명하며, 2025년 10월 1일부로 헬게 룬드(Helge Lund) 현 의장을 공식적으로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2025년 7월 2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매니폴드는 9월 1일 BP 이사회에 비상임(non-executive) 이사이자 의장 내정자(chair-elect) 자격으로 합류하며, 한 달 뒤 헬게 룬드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곧바로 의장직을 승계하게 된다.
리더십 교체의 배경
BP는 최근 몇 년간 탈(脫)탄소 전략을 축소하고 석유·가스 부문으로의 회귀를 모색해 왔다. 이는 룬드 의장과 전임 CEO 버나드 루니(Bernard Looney)가 추진했던 대담한 친환경 전환 로드맵과는 결이 다른 방향이다. 주요 투자자들과 행동주의 펀드의 거센 요구가 지속되자, BP는 재무 성과 개선을 위해 전통 에너지 자산을 다시 강화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실제로 룬드는 2024년 4월 주주총회에서 “2026년 경에 사임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으나, 예상보다 빠르게 주주들의 반대가 거세지며 퇴진 시점이 1년 이상 앞당겨졌다. 당시 그는 재선임 안건에서 낮은 찬성률을 기록했으며,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를 비롯한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BP가 “가치 실현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매니폴드가 CRH에서 증명한 주주 가치 창출 실적은 BP의 다음 장(章)을 감독할 최적의 자격을 보여 준다.” — BP 선임 사외이사 아만다 블랑(Amanda Blanc)
주가와 시장 반응
발표 직후 런던 증시에서 BP 주가는 장초반 0.2% 상승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리더십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점과 함께, 매니폴드의 합리적인 비용 관리 경험이 배당 및 자사주 매입 여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했다.
매니폴드의 경력과 전문성
매니폴드는 2014년부터 2024년까지 건축자재 그룹 CRH를 이끌며,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재편과 2024년 뉴욕 증권거래소(NYSE) 1차 상장 전환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CRH의 시가총액은 약 2배 이상 증가했고, 미국 기반 인프라 붐을 선제적으로 포착해 실적을 끌어올렸다.
비상임 이사(Non-executive Director)는 회사의 일상 경영에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경영진을 감독·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의장 내정자(Chair-elect)는 정식 취임 전 이사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사업 전략을 파악하며 원활한 승계를 준비한다.
인수·합병(M&A) 루머 및 규제 환경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쉘(Shell)이 BP 인수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복수의 익명 소식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쉘은 “제안한 사실이 없으며 적극적으로 거래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영국 공정인수규정(UK Takeover Code)에 따라, 이렇게 공식 부인(statement of no intention)이 이뤄지면 향후 6개월간 재차 인수 제안을 할 수 없다.
영국의 공정인수규정은 “6개월 룰”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피인수 기업이 주주 가치를 극대화할 시간을 확보하고, 잠재적 인수자가 주가 교란을 방지하도록 하는 장치다.
기자 해설: BP의 전략적 분기점
필자는 이번 인사에서 세 가지 함의를 주목한다. 첫째, BP가 원가 경쟁력이 높은 석유·가스 자산에 다시 투자함으로써 현금흐름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반영됐다. 둘째, 매니폴드가 CRH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역량은 BP의 저수익 자산 매각 및 고부가 프로젝트 선별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주주 행동주의 시각에서 보면 BP 지분가치 할인(valuation discount)이 좁혀질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다.
다만, 에너지 전환에 대한 투자 축소는 장기적으로 규제·평판 리스크를 낳을 수 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정부는 2040~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고수하고 있다. 매니폴드 의장이 단기 현금흐름과 장기 탈탄소 압력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이다.
관련 용어 해설
Non-executive Director: 경영 일선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전략적 가이드라인과 감독 기능을 수행하는 이사.
Chair-elect: 이미 선임되었으나 취임 전 준비 단계에 있는 차기 의장. 조직 이해도를 높이고, 후임 리더십과 협업 체계를 구축한다.
UK Takeover Code: 영국 기업 인수·합병 절차를 규정하는 법적·자율 규정 체계로, 주주 보호와 시장 공정성을 목표로 한다.
결론
BP의 이번 리더십 교체는 단순한 자리 이동이 아니라 에너지 메이저의 중장기 전략을 재정의하는 결정적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투자자들은 매니폴드가 배당 성향 강화와 사업 구조 최적화를 병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탄소중립 압박이 지속되는 한, BP가 언제 다시 녹색 투자 기조를 확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균형 감각 또한 요구된다. 헬게 룬드 체제에서 시도된 친환경 전환의 교훈이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BP가 직면한 중장기 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