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지원을 받는 주택저당증권(GSE)인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의 민영화(privatization)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규제당국이 두 기관에 대한 컨서버터십(공적 관리) 종료를 시사했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정부 보증’이 당분간 유지되는 가운데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2025년 9월 15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Bof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컨서버터십을 아무런 추가 조치 없이 끝낼 경우, 2천540억 달러(약 337조 원)의 미국 재무부 명시적(back explicit) 자금 지원은 그대로 유지된다”며 “이는 GSE 개혁을 위한 가장 무리 없는 ‘명목상 전진(optical step forward)’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서 BofA는 재무부가 올해 10월까지 공모 자문사 선정을 추진하고, 모기지 스프레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는 점을 핵심 변수로 꼽았다. 또한 재무부는 가을에 ‘주택 비상사태(housing emergency)’를 선포할 수 있다는 점도 암시했다.
주요 배경: GSE, 컨서버터십 그리고 정부 보증
컨서버터십(conservatorship)은 금융기관이 자본잠식 등으로 정상적인 경영을 수행하기 어려울 때 감독당국이 임시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부실 모기지 확대로 인해 재정난에 빠졌고, 연방주택금융청(FHFA) 관리하에 들어가 15년 넘게 공적 관리 상태를 유지해 왔다.
GSE(Government-Sponsored Enterprises)는 정부 후원 기관을 뜻하며, 패니메이·프레디맥은 주택담보대출을 사들여 주택저당증권(MBS) 형태로 재패키징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발행한 MBS를 투자자가 안심하고 매입할 수 있도록 미 재무부는 우선주 매입계약(PSPA)을 통해 2천540억 달러 규모의 자금라인을 보장해 왔다.
BofA 전망: “대규모 변화는 단계적, 정부 보증은 지속”
BofA는 “컨서버터십 종료 또는 이후 공모(IPO)가 추진되더라도 명시적(explicit) 혹은 암묵적(implicit) 정부 보증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재무부 지원이 유지되는 한, 모기지 및 무담보 회사채 스프레드는 안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FHFA가 자기자본 요건(capital requirements)을 완화할 경우 민간 투자자 수요가 늘어날 수 있지만, 의회의 입법 심사라는 장벽에 직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BofA는 “공적 자본 완화가 이뤄지면 주택금융시장에 활력을 줄 수 있으나, 정치적 합의 없이는 실현이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민간 자본 유치와 정치적 난제
“공모를 통해 민간 자본을 유치하면 지분과 이익이 민간 주주에게 돌아가지만, 정부 보증 체계를 재편하려면 반드시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 BofA 보고서
보고서는 추가 입법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새로 진입하는 주주들은 FHFA 감독 정책 변화에 취약할 수 있어 주가가 제약받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콘서버터십 종료 후 IPO까지의 절차는 다년(多年)에 걸친 단계적 로드맵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포트폴리오 확대 가능성 미미
BofA는 패니메이·프레디맥이 일시적으로 자산 규모를 늘릴 여지가 있더라도, “대규모 포트폴리오 확장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두 GSE는 기존 보유 포트폴리오(모기지·홀론)를 대부분 무담보채(unsecured debt)로 조달하는 구조인데, 대규모 확장은 금리 환경과 규제 부담을 동시에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2000년대 중반 있었던 공격적 포트폴리오 확대로 금융위기의 단초가 제공됐다는 역사적 교훈을 감안할 때, 현재 규제당국이 대량 자산 증식을 허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의회 역할의 중요성
BofA는 결국 “의회가 GSE 개혁의 향방을 결정지을 핵심 플레이어”라고 강조했다. GSE를 보다 민간 친화적 구조로 매각하려면 ‘주택담보보험(private mortgage insurance)’ 시스템을 강화·편입하는 등 추가적인 법적 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상원 60석 이상(필리버스터 방지선)을 확보하기 어려운 정치 지형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다. “2008년 이후 줄곧 GSE 개혁이 지연된 주된 이유도 초당적(supermajority)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BofA의 추가 관전 포인트 및 기자 해설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재선될 경우 주택금융 정책 기조가 급변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현 행정부가 비교적 적극적인 개혁 시그널을 내고 있지만, 대선 후 정책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개혁 속도는 다시 둔화될 수 있다.
기자 해설: 실제 시장에서는 ‘정부 보증이 있는 한 패니·프레디 채권은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 다만 IPO가 추진되면 기관·개인 투자자의 관심이 커질 수 있으며, 배당 재개·주가 재평가 등 주주 환원 이슈가 부각될 전망이다. 그러나 의회·규제 리스크가 상존해 모멘텀 투자의 변동성도 클 수 있다.
용어 설명 및 실무적 시사점
컨서버터십(Conservatorship): 금융당국이 부실 금융기관을 인수해 자본 확충·리스크 관리 등을 직접 수행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공적관리(공적자금)’와 유사하다.
우선주 매입계약(PSPA): 재무부가 GSE 우선주를 매입해 일정 금액 한도 내에서 자본을 공급하는 장치다. 이를 통해 두 기관은 파산 위험 없이 시장에 유동성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모기지 스프레드: MBS 수익률과 동일 만기 국채 수익률 차이를 뜻한다. 스프레드가 좁을수록 채권 투자자는 비교적 낮은 추가 보상을 받고, 반대로 스프레드 확대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반영한다.
실무적 시사점: 국내 연기금·보험사 등 해외 MBS를 담는 투자자라면 미국 GSE 개혁 일정과 정부 보증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정부 보증이 약화될 경우 신용리스크 프리미엄 확대로 채권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