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은행그룹(ANZ Group Holdings Ltd, 이하 ANZ)이 채권거래 규제 위반 및 리테일 고객 서비스 실패 사실을 인정하고, 호주 증권투자위원회(ASIC)에 총 A$2억4천만(미화 약 1억6천만) 과태료를 납부하기로 합의했다.
2025년 9월 15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ASIC이 ANZ의 호주 마켓 사업부(Australian Markets)와 리테일 사업부(Retail)를 대상으로 진행한 5건의 별도 조사를 일괄 종결하는 내용이다. 특히 2023년 4월 진행된 140억 호주달러 규모의 호주 10년물 국채 발행 과정에서 발생한 의혹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ASIC은 ANZ가 해당 국채 발행 가격 결정 직전 대량의 10년물 호주국채선물을 매도해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은행 측은 이로 인해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호주 정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다. 또한 ANZ는 약 2년간 정부에 제출하는 월별 채권 거래량 데이터를 부정확하게 보고해 공공 정보의 신뢰성을 훼손했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고객 서비스 부문에서도 다수의 과오가 드러났다. 2013년부터 2024년까지 신규 계좌 보유자 상당수에게 약정된 보너스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고, 2019년부터 2023년 사이에는 사망 고객 수천 명에게 수수료를 계속 부과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 A$2억4천만 과태료는 ASIC이 단일 기업에 부과한 제재 중 최상위권 규모다. 2016년 이후 ANZ는 적어도 11건의 민사 제재를 받아왔으며, 이번 합의로 그 총액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는 고객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라고 폴 오설리번(Paul O’Sullivan) ANZ 회장은 성명에서 밝혔다.
구조조정 압박도 가중되고 있다. 호주 4위 은행인 ANZ는 최근 신임 CEO 누노 마토스(Nuno Matos) 주도로 전사적 재편을 진행 중이다. 마토스 CEO는 “이번 조사 결과는 변화의 필요성을 재확인해 준다”며 “고객 보호를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구축하기 위해 측정 가능한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주 은행은 약 3,500개 일자리 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경영진은 디지털 전환 가속화, 내부 통제 강화, 비용 절감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용어 설명 및 배경
10년물 호주국채선물은 호주 정부가 발행하는 10년 만기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으로, 기관투자자가 금리 전망에 따라 헤지(위험 회피)나 투자를 목적으로 활용한다. 가격 결정이 국채 현물 시장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대량 매도는 발행 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보너스 이자는 특정 조건(예: 월별 자동이체, 일정 기간 출금 제한)을 충족한 예금 고객에게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제도다. 호주에서 리테일 은행 간 경쟁이 심화되며 자주 활용되지만, 시스템 오류나 내부 관리 미흡으로 미지급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다.
전문가 관점
금융 규제 전문가들은 ASIC이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집행 강도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과태료는 ‘거시건전성 및 소비자 보호’라는 두 축을 모두 건드린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호주 금융권이 ‘벌금 비용을 사업 경영의 일부’로 인식하던 종전 관행에 경종을 울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ANZ가 선물시장에서 시장 조성(market making)과 자산-부채 관리(ALM)를 병행하면서 통제에 실패한 점은 다른 대형 은행에도 교훈이 된다는 평가다.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내부 보고 체계, 리스크 문화 등 비가격 경쟁력 요소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질 전망이다.
리테일 부문의 과오 역시 ‘고객 사망 후 수수료 부과’와 같이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이 포함돼 있어, 소비자 신뢰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령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호주 금융 시장에서 상속·사후 계좌 관리는 법적, 윤리적 책임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
시장 참여자들은 ANZ가 향후 12개월 내 내부 통제 개편 로드맵과 디지털 전환 투자 계획을 어떻게 구체화할지 주목하고 있다. 주주총회와 분기 실적 발표에서 제재 비용과 구조조정 효과가 상세히 공개될 경우,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SIC 역시 “반복적인 위반 행위에는 가중 제재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어, 호주 금융권 전반에 ‘규제 준수 문화’가 정착될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