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국제 데이터·음성 통화의 95% 이상이 해저 통신 케이블을 통해 흐른다는 사실은 디지털 경제의 실제 뼈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총 연장 약 100만 마일에 이르는 이 네트워크는 정부 통신, 금융거래, 이메일, 영상통화, 스트리밍까지 일상과 산업 전반을 지탱하는 필수 인프라다. 해저 케이블은 단순한 통신 설비가 아니라,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시대의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기능하며 디지털 생산성과 국가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5년 11월 8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연산 집약적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간 초고속 연결 수요를 앞세워 해저 케이블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통적으로 통신사 중심이던 해저 케이블 시장은 지난 10년간 웹스케일(webscale) 플레이어인 메타, 구글, 아마존 등으로 중심축이 이동했고, 이들의 주도 아래 신규 노선 길이와 용량이 빠르게 확대되는 중이다.
해저 통신의 상업적 역사는 1850년 영국 도버와 프랑스 칼레 사이 영불해협에 설치된 최초의 전신용 해저 케이블에서 시작됐다. 이후 기술은 동축 케이블을 거쳐 오늘날 광섬유 기반으로 진화했다. 광섬유는 빛 신호로 데이터를 전송해 장거리에서도 대용량·저지연을 구현하며 현대 인터넷의 실질적 수송망 역할을 담당한다.
업계 1위 제조·설치사로 꼽히는 알카텔 서브마린 네트웍스(Alcatel Submarine Networks)의 영업총괄 폴 가블라(Paul Gabla)는 “약 10년 전부터 메타, 구글, 아마존과 같은 웹스케일 기업들이 등장해 이제 전체 시장의 약 5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지위는 업계 전문 매체인 Submarine Telecoms Forum의 평가로도 확인된다. 대륙 간 데이터 폭증과 AI 트래픽 확대로 신규 노선 수요와 업그레이드 수요가 동시에 불어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투자 사이클 가속 — 2025~2027년 130억 달러 전망
통신 데이터 제공업체 텔리지오그래피(TeleGeography)에 따르면, 2025~2027년 신규 해저 케이블 프로젝트 투자액은 약 130억 달러로 추정되며, 이는 2022~2024년 대비 거의 두 배에 달한다. AI 학습·추론에 요구되는 막대한 데이터 이동량과, 대륙·해역별 데이터센터 집적의 확산이 동시에 투자 확대를 자극하고 있다.
BIG TECH, BIG CABLES
메타의 네트워크 투자 담당 부사장 알렉스 에임(Alex Aime)은 “AI는 해저 인프라 수요를 증가시킨다”며 “사람들은 AI를 떠올릴 때 데이터센터나 컴퓨트, 데이터만 생각하지만,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연결성(connectivity) 없이는 그저 값비싼 창고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메타는 2월에 프로젝트 워터워스(Project Waterworth)를 공개했다. 총 길이 5만km(31,000마일)에 이르는 이 케이블은 5개 대륙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 해저 케이블 프로젝트다. 메타가 단독 소유하며, 수년간에 걸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로 추진된다.
아마존도 첫 단독 소유 해저 케이블 패스트넷(Fastnet)을 발표했다. 이 노선은 미국 메릴랜드 동부 해안과 아일랜드 코크 주를 연결하며, 용량은 320Tbps(terabits per second)를 상회한다. 이는 동시에 HD 영화 1,250만 편을 스트리밍할 수 있는 규모라고 아마존은 설명했다. AWS 코어 네트워킹 부문 부사장 매트 레더(Matt Rehder)는 “
해저는 AWS를 포함해 대양을 가로지르는 모든 국제 연결의 핵심이다. 위성은 작동할 수 있지만 지연시간(latency)과 비용이 높고, 고객과 인터넷이 요구하는 용량·처리량을 제공하기 어렵다.
”고 말했다.
구글 역시 30개 이상의 해저 케이블에 투자해온 주요 플레이어다. 최근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솔(Sol)은 미국, 버뮤다, 아조레스, 스페인을 연결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관련 인프라에 투자해 왔다. 사이버보안 기업 레코디드 퓨처(Recorded Future)의 글로벌 이슈 디렉터 매튜 무니(Matthew Mooney)는 “지난 20년간 해저 케이블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이는 데이터에 대한 포식적 수요가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절단과 장애 — 단일 케이블 지역의 취약성
인터넷 연결 수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 케이블 손상은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선임연구원 에린 머피(Erin Murphy)는 “
해저 케이블이 절단되면 복수의 국가가 인터넷 접근에서 배제될 수 있으며, 이는 금융거래·은행업·전자상거래·기초 통신에 광범위한 차질을 야기한다
”고 말했다. 실제로 2022년 호주 동쪽의 섬나라 통가에서는 해저 화산 분화 잔해로 인해 유일한 해저 통신 케이블이 절단되며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끊겼다.
2025년 9월에는 홍해에서 발생한 해저 케이블 절단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Azure) 클라우드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트래픽을 우회했지만, 아시아와 중동 사용자들은 지연시간 증가와 성능 저하를 겪었다. 전문가들은 대다수 케이블 손상이 어로 활동이나 투묘(닻 투하) 사고 등 우발적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보지만, 최근에는 의도적 파손에 대한 의심도 커지고 있다.
머피는 “
국제 수역에는 상업·어선 등 선박이 매우 많아 사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적대 행위자도 이를 알고 있다. 이른바 러시아 ‘고스트 플릿’이나 중국 어선이 케이블을 ‘우연히’ 끊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의도적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많은 경우 의도와 사고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 설명했다.
레코디드 퓨처의 무니와 연구팀은 이러한 의심 사례를 추적해 왔다. 무니는 “
의도적 손상으로 간주할 만한 사건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2024년과 2025년에 발트해와 대만 주변에서 두드러졌고, 100% 확신을 갖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사건에서 드러나는 사실 패턴은 모두를 ‘우발’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증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중국-대만 간 긴장 고조와 보조를 맞춘다고 지적했다.
보호 조치 — NATO ‘Baltic Sentry’와 감시 강화
구체적 증거가 제한적임에도 각국 정부는 해저 케이블을 중대 기반시설로 간주해 보호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1월에는 NATO가 발트해에서 연쇄 케이블 절단 사건 이후 ‘발틱 센트리(Baltic Sentry)’ 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은 드론·항공기·수중 및 수상함정을 동원해 해당 지역의 해저 인프라를 감시·보호하는 임무다. 무니는 “그 결과, 2025년 1월 말 이후 발트해에서 케이블 절단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중 긴장과 규제 — FCC의 심사 강화
미국에서는 해저 케이블 설치·운영 면허를 관장하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해외 기업의 인프라 구축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브렌던 카(Brendan Carr) FCC 위원장은 “
중국 공산당과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적대국을 직접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구축을 어렵게 하거나 사실상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또 “
장비 자체가 침해되지 않도록 화웨이, ZTE 등 의심스러운 ‘스파이 장비’를 해저 케이블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고 밝혔다.
7월에는 공화당 하원의원 3명이 메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CEO에게 중국(PC) 연계 케이블 유지보수 업체를 사용했는지 질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에 대해 메타의 에임은 “
우리는 공표한 시스템에서 중국 업체와 협력하지 않으며, 생태계 파트너 및 공급망 전반에 걸쳐 미국 정책·규정을 완전히 준수한다
”고 답했다. 아마존도 중국 기업들과 협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해당 서한에 대한 CNBC의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용어 풀이와 기술 맥락
• 해저 통신 케이블: 바다 밑바닥을 따라 매설되거나 해저 지형을 따라 포설되는 광섬유 케이블로, 대륙 간 데이터 전송의 대부분을 담당한다.
• 웹스케일(Webscale) 기업: 전 세계 다수 지역에 초대형 데이터센터·네트워크를 자체 구축·운영하며, 초대규모 트래픽을 자체적으로 처리·최적화하는 빅테크를 가리킨다.
• 지연시간(latency): 데이터 패킷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 실시간 서비스(영상회의·게임·거래)에 직결되는 품질 지표다.
• Tbps: 초당 테라비트 단위의 전송속도(Tbit·s-1). 320Tbps는 초당 320조 비트에 해당한다.
• 중대 기반시설(Critical Infrastructure): 사회·경제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시설·시스템으로, 파괴·장애 시 국가적 피해가 큰 자산을 뜻한다.
산업적 함의와 전망
이번 보도는 해저 케이블이 AI와 클라우드의 ‘가시화되지 않은 인프라’로서 얼마나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지연·대용량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대양 횡단 광섬유가 필수이며, 위성 통신은 보완재로서 의미가 있으나 핵심 백본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기업 측면에서는 용량 증설과 더불어 다중 경로 확보, 재해 복구(BC/DR), 지리적 다변화 등 회복탄력성 전략이 투자와 병행되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공해상 감시와 수중 감시 기술을 통한 보호, 표준·장비 공급망 검증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움직임은 규제 준수와 보안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며, 프로젝트 리드타임과 자본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빅테크의 직접 소유 모델 확대와 동맹 간 공동 투자 추세가 강화될 여지가 크다.
또한, 해저 케이블은 경제·금융 인프라의 연속성과 직결되므로, 사고 대비 예비 용량과 신속한 수리선 투입 같은 운영 역량이 중요하다. 시장 측면에서 케이블 제조·설치·유지보수 전주기 생태계의 수요가 확대되고, 설계 단계의 보안 내재화와 다층 모니터링이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은 해역(예: 발트해, 대만 주변, 홍해 등)에서는 감시 관제와 정책 공조가 투자 타당성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취재 노트
CNBC는 알카텔 서브마린 네트웍스의 프랑스 칼레와 영국 그리니치 생산 시설을 찾아 해저 케이블의 제조·포설 과정을 확인하고, 정부·빅테크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저 케이블이 어떻게 인터넷과 AI를 작동시키는 핵심 인프라인지, 그리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심층 취재했다. 전체 내용은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How a million miles of undersea cables power the internet — and now AI (CNBC Vide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