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포르투갈)— 글로벌 테크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인공지능(AI) 섹터의 거품 형성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 다. 업계 내부에서도 과열된 밸류에이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다.
2025년 11월 14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몇 주간 시장은 AI 붐에 과도한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는 인식과 마주하고 있 다. 이는 실제 매출과 이익의 가시성을 흐리게 하며, 고평가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있 다.
그간 밸류에이션 과열 경고는 주로 금융권 투자자와 리더들로부터 나왔 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과 모건스탠리의 테드 픽은 일부 대형 기술주의 가치가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며 조정 가능성을 경고했 다. 여기에 영화 ‘빅쇼트’로 유명한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이번 주 AI 인프라·클라우드 제공업체(일명 ‘하이퍼스케일러’)1가 반도체(칩)의 감가상각비를 축소 계상하고 있다고 비판했 다. 버리는 오라클과 메타 등 기업의 이익이 크게 과대계상됐을 수 있다고 경고했고, 최근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에 대해 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2 보유 사실을 공개했 다.

이 같은 우려는 리스본에서 열린 웹 서밋(Web Summit)에서 AI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기업의 CEO들이 CNBC와 인터뷰를 통해 밝히며 더욱 구체화됐 다. 독일 AI 기업 딥엘(DeepL)의 CEO 야렉 쿠틸로프스키는 “곳곳에서 평가가 상당히 과장돼 있고, 수평선 너머에 거품의 신호가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는 매출 없이도 엄청난 밸류에이션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AI 기업을 많이 본 다. 이는 ‘우려’다.” — 호브한네스 아보얀, 픽스아트 CEO
픽스아트(Picsart)의 CEO 호브한네스 아보얀 역시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 다. 그는 매출이 미미함에도 ‘분위기’와 ‘이야기’만으로 투자금을 유치하는 소규모 스타트업들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를 “바이브 레베뉴(vibe revenue)”라 불렀 다.

‘바이브 레베뉴’와 ‘바이브 코딩’은 깊은 기술 역량 없이도 AI의 힘을 빌려 코드를 작성하거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나온 표현이 다. 즉, 실질적 매출·수익 모델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분위기(vibe)’와 서사(narrative)만으로 자금과 평가가 몰리는 현상을 꼬집는 말이 다.
장기 수요 기대와 당장의 과열 사이에서 업계의 시선은 엇갈리고 있 다. 차량 호출 플랫폼 리프트(Lyft)의 CEO 데이비드 리셔는 AI의 잠재력에 낙관할 이유가 분명하다면서도 위험을 인정했 다.
“명확히 하자. 우리는 분명히 금융적 거품 속에 있 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다. 왜냐하면 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변혁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뒤처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 데이비드 리셔, 리프트 CEO
리셔는 동시에 금융적 거품과 산업의 기초 체력은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 다.
“데이터센터와 모델 개발 같은 부분은 변혁적 특성 때문에 매우 긴 수명을 가질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삶을 더 쉽게, 더 좋게 만든 다. 반면 금융 측면은 지금 다소 위험하다.” — 데이비드 리셔
기업들의 2026년 AI 수요 전망에 대해 업계는 강한 관심과 수요가 존재한다고 말한 다. 딥엘의 쿠틸로프스키는 “모두가 AI가 기업에 마법 같은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고, 효율성 면에서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운영할 수 있음을 안다”고 했 다. 다만 그는 “기업들이 AI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모든 조직이 해법을 완전히 정립했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라고 덧붙였 다.
엔터프라이즈 AI에 집중하는 코히어(Cohere)의 최고재무책임자(CFO) 프랑수아 샤드윅도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편 딥엘은 핵심 제품인 AI 번역 도구에 더해, 최근 직원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범용 ‘에이전트’를 출시했 다. 여기서 말하는 에이전트(agentic)는 사용자를 대신해 자동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유형의 AI 도구를 뜻한 다.
4조 달러 자본지출(Capex) 시나리오 또한 시장의 초점을 끌고 있 다. 액셀(Accel)이 이번 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신규 AI 데이터센터 용량 증설은 117GW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 다. 이는 향후 5년간 약 4조 달러 규모의 자본지출로 환산된 다. 해당 투자금을 상환하려면 약 3.1조 달러의 매출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추산했 다.

이미 올해 들어 엔비디아와 오픈AI 등은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역량을 확충하기 위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잇달아 발표했 다. 액셀의 파트너 필리프 보테리는 이러한 매출을 견인할 세 가지 요인으로 ① 더 강력한 AI 모델의 학습에 필요한 용량, ② 새로운 AI 서비스 활용, ③ 엔터프라이즈에서의 ‘에이전트 혁명’을 꼽았 다.
다만 모든 이가 막대한 지출이 필수적이라고 보지는 않는 다. 노보 캐피탈(Novo Capital)의 매니징 파트너 벤 하버그는 대형 테크 기업이 논의하는 향후 투자 수치가 과장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얼마나 많은 칩이 필요하다는지에 대한 충격적인 헤드라인 숫자를 듣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제품 프런트보다 오히려 데이터센터 측면에서 거품이 더 빚어지고 있다고 본 다.” — 벤 하버그, 노보 캐피탈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과도한 열광이 있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 다. 샘(앨트먼) 역시 사적으로는,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칩도 적게, 자본도 적게, 에너지도 적게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라고 본 다.” — 벤 하버그
핵심 인물·기관 발언 정리
• 야렉 쿠틸로프스키(딥엘 CEO): “과장된 평가”와 “거품 신호”를 언급하며 도입 난이도도 지적했 다.
• 호브한네스 아보얀(픽스아트 CEO): ‘바이브 레베뉴’라는 표현으로 매출 부재에도 높아진 밸류에이션을 우려했 다.
• 데이비드 리셔(리프트 CEO): 금융적 거품과 산업적 지속성을 구분해 설명했 다.
• 프랑수아 샤드윅(코히어 CFO): “수요는 분명히 있다”고 확인했 다.
• 마이클 버리(투자자): 감가상각 축소 계상 의혹 제기, 오라클·메타의 이익 과대계상 가능성 경고, 엔비디아·팔란티어 풋옵션 보유 공개.
• 필리프 보테리(액셀 파트너): 모델 고도화·신규 서비스·에이전트 혁명을 매출 동력으로 제시.
• 벤 하버그(노보 캐피탈): 데이터센터 투자에 대한 과열 가능성 지적.
용어 설명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s)1: 클라우드·AI 인프라를 대규모로 운영하는 초대형 사업자(예: 대형 클라우드 플랫폼 제공사)를 의미한 다. 방대한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자원을 통해 대규모 연산과 AI 모델 학습을 지원한 다.
풋옵션(put options)2: 특정 자산을 미래에 일정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로, 일반적으로 가격 하락에 베팅할 때 사용한 다.
감가상각(depreciation): 반도체 장비·서버 등 설비 자산의 가치가 시간 경과와 사용으로 줄어드는 것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회계 처리다. 감가상각비를 과소 계상하면 장부상 이익이 과대 계산될 수 있다.
에이전트(Agentic AI): 사용자를 대신해 복합 과업을 자동 수행하는 AI 도구·시스템을 지칭한 다. 예를 들어 문서 요약, 일정 조율, 보고서 초안 작성 등 업무 자동화에 활용될 수 있다.
바이브 레베뉴(vibe revenue)·바이브 코딩(vibe coding): 실제 매출·수익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아도 기술 트렌드나 투자심리 등 ‘분위기’에 힘입어 주목과 투자를 얻는 현상을 풍자적으로 지칭한 다. 바이브 코딩은 깊은 코딩 지식 없이 AI의 도움으로 개발하는 흐름을 말한다.
정리하면, 업계는 장기 수요와 산업 구조의 변화에는 낙관하면서도, 당장의 밸류에이션 과열과 데이터센터 투자에 대한 현실 점검을 요구하고 있 다. 117GW 증설과 4조 달러에 이르는 자본지출 전망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내포한다. 기업 고객의 도입 난관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수익모델이 불분명한 ‘바이브 레베뉴’에 대한 경계심이 테크 CEO·투자자 모두에게서 확인되고 있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