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록(Groq)이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기업가치를 단숨에 두 배 이상 끌어올리며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2025년 9월 1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기반 AI 반도체 스타트업 그록은 최근 7억5,000만 달러(약 1조 원)를 신규로 조달해 기업가치 69억 달러(약 9조5,000억 원)를 인정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는 불과 1년 전 28억 달러였던 이전 밸류에이션의 두 배 이상으로, 월가가 AI 하드웨어 시장에 거는 기대를 방증한다.
이번 라운드는 디스럽티브(Disruptive)가 주도했다. 디스럽티브는 팰런티어와 스포티파이 등 성장 기업에 잇달아 투자해온 달라스 소재 벤처캐피털이다. 그록은 “디스럽티브가 약 3억5,000만 달러를 단독으로 넣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블랙록, 뉴버거버먼, 도이체텔레콤 캐피털 파트너스,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미국 서부 해안 대형 뮤추얼펀드도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다. 여기에 삼성전자, 시스코, D1 캐피털, 알티미터, 1789 캐피털, 인피니텀 등이 참여하며 투자자 풀을 다변화했다.
그록의 전신은 구글 모회사 알파벳 출신 엔지니어 조너선 로스(Jonathan Ross) 최고경영자(CEO)가 2016년 설립한 AI 칩 기업이다. 로스 CEO는 “
“인퍼런스가 AI 시대를 규정하고 있으며, 우리는 높은 속도와 저비용으로 이를 제공하는 미국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라고 강조했다.
AI 인퍼런스 칩이란?
‘인퍼런스(추론)’는 이미 학습(트레이닝)된 AI 모델이 실제 데이터를 입력받아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초기 AI 열풍이 ‘학습용 GPU’ 위주였다면, 이제는 전력 효율과 지연시간(latency)을 최적화한 인퍼런스 전용 칩이 시장의 화두다. 그록은 독자 아키텍처를 통해 초당 토큰 처리 속도를 높이고, 전력 대비 성능(PPWA)을 개선한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 지배적 1위 GPU 업체 엔비디아와 AMD 역시 최근 인퍼런스에 특화된 신제품 로드맵을 공개하며 추격에 나섰다. 하지만 그록은 ‘AI 특화형 어레이 프로세서’를 통해 범용 GPU 대비 연산 효율성과 레이턴시 모두를 개선했다고 주장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15억 달러 규모 선주문 계약
그록은 2024년 2월 사우디 국부펀드(PIF)로부터 15억 달러어치 칩 공급 약정을 체결했다. 회사 측은 “사우디 계약만으로 올해 5억 달러의 매출이 기대된다”고 투자자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8월 그록은 6억4,000만 달러를 조달하며 28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불과 13개월 만에 밸류에이션을 2.5배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AI 인프라 투자 수요가 얼마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해석된다.
전문가 시각
AI·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은 “트레이닝 시장은 이미 엔비디아가 장악했지만, 인퍼런스 시장은 아직 승자가 결정되지 않았다”며 “그록이 특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스택을 동시에 제공해 가격 대비 성능(P/Q) 지표를 끌어올린다면, 클라우드 사업자·국가기관·초대형 언어모델(LLM) 스타트업과의 협업이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네트워크 생태계, 개발 툴 체계, 장기적인 파운드리(위탁생산) 확보 여부를 향후 리스크로 지목한다. 이에 대해 그록은 “소프트웨어 호환성을 높이기 위해 텐서플로·파이토치 등 주요 프레임워크용 SDK를 이미 출시했고, TSMC 4nm 공정을 통해 대량생산 기반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투자 라운드는 AI 인퍼런스 칩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괄목할 만한 수준임을 재차 확인시켰다. 기업·국가·투자자 모두가 ‘고효율 AI 추론’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가운데, 그록이 앞으로 어느 정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