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발(Investing.com) – 미국 기술주가 올해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온 끝에 취약성을 노출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테마에 편승해 급등했던 종목들이 일제히 흔들리면서,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포트폴리오 위험 축소(de-risk) 및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5년 8월 2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주 잭슨홀(Jackson Hole)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열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연설을 앞두고 경계감을 키우고 있다.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모습이다.
투자 자문사 트루이스트(Truist)에서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o-CIO)를 맡고 있는 키스 러너(Keith Lerner)는 “
수익률이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지고 포지션이 한쪽으로 과밀하게 몰리면 작은 충격만으로도 주가가 빠르게 되돌림을 보일 수 있다
”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주는 모두가 연준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에 앞서 포지션을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덧붙였다.
S&P 500 지수 내 IT 섹터는 수요일까지 이틀 연속 큰 폭으로 하락해 주간 기준 약 2.5% 빠졌다. 기술주 비중이 높은 나스닥 종합지수도 같은 기간 2%가량 밀렸다. 특히 AI 반도체 대표 종목인 엔비디아(Nvidia)와 데이터 분석 플랫폼 팔란티어(Palantir) 등 이른바 ‘고공행진’ 종목들이 두드러진 조정을 겪었다.
이번 후퇴는 4월 연중 저점 대비 IT 섹터가 50% 이상 급등한 직후 나타났다. 같은 기간 S&P 500 전체 상승률이 29%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술주 랠리가 시장을 주도하며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린 셈이다.
AI 광풍이 주요 동력이었다. 올 들어 엔비디아 주가는 약 30% 올랐고, 팔란티어는 연초 대비 주가가 두 배가량 뛰었다. 이에 따라 IT 섹터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최근 30배 수준으로,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섹터 시가총액 비중 역시 2000년 닷컴버블 이후 최대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경고 신호도 잇따랐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은 최근 “조직의 95%가 AI 투자에서 실질적인 수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한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Sam Altman)은 기술 전문 매체 The Verge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AI에 과도하게 흥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지난주 이후 AI 관련 종목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엔비디아는 약 5%, 팔란티어는 16%가량 주가가 빠졌다. 유럽 시장에서도 ‘AI 도입 수혜주’로 불리던 소프트웨어 종목들이 새로운 AI 모델의 잠재적 파괴력에 대한 우려로 압박받았다.
그럼에도 XYPN(재무설계 네트워크)의 투자 책임자 앤드루 알메이다(Andrew Almeida)는 “
이번 움직임은 가격 조정(price correction)일 뿐, AI 열기가 식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순 없다
”며 “장기적으로 AI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잭슨홀 변수 — 금리 기대와 계절적 약세
주식시장이 통계적으로 부진한 것으로 알려진 8, 9월에 진입하면서 위험 노출을 줄이려는 수요도 커졌다. 『스톡 트레이더스 알마낙(Stock Trader’s Almanac)』에 따르면 지난 35년간 S&P 500은 8월과 9월 평균 수익률이 가장 낮았다.
베이커애비뉴 웰스 매니지먼트의 수석 전략가 킹 립(King Lip)은 “밸류에이션이 과도하게 팽창한 데다, 주요 기술주가 숨 돌릴 새도 없이 달려왔다. 여기에 계절적 역풍까지 불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소비재, 헬스케어, 금융 등 다른 섹터들은 이번 주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동일가중 S&P 500의 상대적 강세가 포착되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랠리가 메가테크 중심에서 점차 저변 확대 단계로 접어드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현재 금리선물(페드펀드 선물) 시장은 9월 16~17일 FOMC 회의에서 연준의 첫 금리 인하 가능성을 84%로 반영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파월 의장이 잭슨홀 연설에서 완화적 메시지를 줄지, 혹은 시장의 기대를 제어하려 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주는 고밸류 종목이 많아 예상보다 높은 금리에 특히 취약하다.
호라이즌 인베스트먼트 서비스(Horizon Investment Services)의 최고경영자(CEO) 척 칼슨(Chuck Carlson)은 “
많은 투자자가 기술주 비중을 과체중(overweight)해 좋은 성과를 달성했지만, 만약 연준이 9월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비중을 약간 줄이는 분위기
”라고 전했다.
용어 해설 및 시장 의미
•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미국 캔자스시티 연은이 매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개최하는 국제 콘퍼런스다.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학자·투자자가 참석해 주요 통화정책 방향을 논의하며, 파월 의장의 연설은 시장의 가장 중요한 매크로 이벤트 중 하나로 간주된다.
• AI 트레이드(AI Trade): 반도체·클라우드·소프트웨어 등 AI 관련 밸류체인에 속한 종목으로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투자자들은 머신러닝 모델 학습에 필요한 연산 수요 폭증이 장기 성장동력이라고 본다.
• PER(주가수익비율): 기업 시가총액을 연간 순이익으로 나눈 지표다. 30배는, 투자자가 향후 1년 예상 이익의 30배 가격을 지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숫자가 높을수록 미래 성장 기대가 크지만, 그만큼 금리·실적 변수에 민감하다.
전문가 관전포인트
기자는 현 시점에서 ‘AI 버블’ 논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본다.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고점 영역에 진입한 만큼, 잭슨홀 이후 — 특히 연준이 인하 시기를 늦추는 시그널을 보낼 경우 — 차익 실현성 매도가 한층 거세질 공산이 있다. 다만 실제 기술혁신이 지속되는 한 중장기 성장 논리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AI 인프라,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서비스 등 실질적 현금흐름이 뒷받침되는 세부 업종과, 단순 테마성 종목 간 옥석 가리기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판단된다.
투자자들은 파월 의장의 발언과 향후 경제 지표(특히 고용·인플레이션)를 예의주시하면서, 금리 민감도가 높은 성장주 비중을 유연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방어적 섹터 및 동일가중 전략으로 분산을 확대하면 변동성 국면에서 포트폴리오 완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종합하면, AI 테마의 장기 성장성은 유효하나 단기 과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시장 컨센서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