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설│서울경제 칼럼니스트 김재훈
■ 서문: 왜 ‘장기금리’가 다시 핵심 변수가 됐는가
지난 9월 첫째 주, 3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장중 5%를 상회했다. 2007년 7월 서브프라임 위기 전고점 이후 18년 만의 사건이다. 동시에 일본 30년물은 사상 최고, 영국 30년물은 27년 만의 최고 수준을 각각 기록했다. 겉으로는 ‘점진적 상승’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숫자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5%라는 상징적 수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간 지속돼 온 ‘제로(0)·실질음(陰)의 장기금리 체제’가 구조적으로 막을 내리는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1) 장기금리 급등의 배경, (2) 미 재정·통화정책 상호작용, (3) 주택·소비·기업투자 연쇄효과, (4) 주식·부동산 밸류에이션 재편, (5) 금융안정성, (6) 달러·자본흐름, (7) 투자전략이라는 일곱 가지 경로를 따라 향후 1년~10년의 구조적 변화를 심층 분석한다.
1. 장기금리 급등의 배경: ‘느리게 움직이는 악순환’
1)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쇼크
• 미국 연방정부의 2025 회계연도 적자는 1조9,000억 달러(잠정)로 GDP 대비 6.7%에 달할 전망이다.
• CBO(의회예산국)는 2025~2035년 누적 적자를 18.8조 달러로 추정, 연평균 순발행 규모가 팬데믹 직후 수준과 유사할 것으로 본다. “공급 쇼크”가 만성화되는 셈이다.
2) 연준의 양적긴축(QT)
• 2022년 6월~2025년 9월까지 연준은 총 1조2,000억 달러의 국채·MBS를 축소했다. 월 최대 950억 달러 ‘자동 감량’이 지속되면 2026년 초에는 팬데믹 때 늘렸던 국채 보유분 5.4조 달러 중 40%가 시장으로 재유입된다.
• 공급(재정) 증가 + 수요(연준) 감소라는 이중 압력이 장기수익률 상방경직성을 강화하고 있다.
3) 해외 중앙은행·기관투자가의 수요 분산
• 202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일본·OPEC 국가의 국채 순매수는 과거 10년 평균 대비 35% 축소됐다.
• 안전자산 선호 자체가 약화됐다기보다, 환헤지 비용 상승(특히 엔화, 유로화)과 자국 내 고금리 상품 출현으로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가속 중이다.
[표1] 2010~2025E 미국 국채 주요 보유자 구분별 순매수 추이 (단위: 억 달러)
연도 | 외국 중앙은행 | 미국 금융기관 | 연준 | 기타(가계·펀드) |
---|---|---|---|---|
2010-2015 | 9,820 | 2,430 | 4,290 | 1,800 |
2016-2020 | 5,640 | 3,750 | 3,100 | 2,970 |
2021-2025E | 3,650 | 4,980 | -1,200 | 5,610 |
2. 재정·통화정책 딜레마: ‘이자 부담의 자기증폭 루프’
1) 금리가 금리를 높인다
재무부 추산에 따르면 순이자 비용(Net Interest Outlays)은 2023년 8,800억 달러 → 2026년 1조2,000억 달러 → 2030년 1조8,000억 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국방·메디케어·사회보장연금에 이어 연방예산 4위 지출 항목으로 상승한다.
이자율 ↑ → 이자지출 ↑ → 재정적자 ↑ → 국채발행 ↑ → 수익률 ↑ … 자기증폭 루프
이 구조가 고착되면 연준이 단기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장기물은 ‘재정 프리미엄’에 의해 완화 폭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2) ‘통화·재정 연계론’ 재부상
일각에서는 ‘Fiscal Dominance’ 가능성을 제기한다. 즉, 인플레이션·성장보다 국채 조달비용 안정이 통화정책 최우선 목표가 되는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1940~50년대 세계2차대전 전후 국채 상한제(1942 Accord) 사례가 자주 인용된다.
3. 실물경제 경로: 주택·소비·기업투자
1) 주택시장—‘5%대 금리가 바닥’이라는 믿음의 종말?
• 30년 고정형 모기지 평균금리: 2025.09.05 기준 6.29%(전일 대비 -16bp) → 일시적 하락폭이지만 장기 추세선은 +200bp
• 450,000달러 주택·20% 다운페이 기준 월 상환액: 금리 5% 시 1,933달러 → 6.5% 시 2,275달러(평균 소득 대비 원리금부담비 32%)
금리는 단기 변동성보다 ‘총량 효과’가 크다. 신규 수요가 전고점 대비 30% 줄어든 반면, 건설업체 재고는 2021년 대비 2배로 늘었다. 이는 2026~2027년 주택 착공 선행지표로 작용, 건설·가전·가구 등 파급 산업의 저성장 리스크를 높인다.
2) 소비—‘고용 둔화 vs. 실질임금 반등’
고용보고서는 비록 +2.2만 명 충격을 줬지만, 시간당 평균임금은 전월비 +0.4%(연율 4.8%)로 가계의 실질 소득은 디스럽션을 견디고 있다. 문제는 저축률(3.5%)이 팬데믹 이전(7~8%) 절반 수준이란 점이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면 신용카드·자동차 할부 연체율 상승 → 소비심리 훼손 경로가 현실화될 수 있다.
3) 설비·R&D 투자—‘AI·리쇼어링’ 버팀목
반도체·전력망·데이터센터 등 CAPEX 트렌드가 금리 상승에도 불구 정부 보조금(IRA·CHIPS Act)과 생성형 AI 붐으로 견조하다. 그러나 BBB- 등급 이하 하이일드 회사채의 재융자 규모(2025~2027년 만기도래분 1.3조 달러)는 기업투자 사이클의 ‘약한 고리’다. 스프레드가 600bp를 상회하기 시작하면 투자취소·연구개발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4. 자산시장: 밸류에이션·리스크프리미엄·자본가격 패러다임 변환
1) Equity Risk Premium(ERP)의 재계산
• 2010~2021평균: 10년물 2%, S&P500 EPS Yield 4% → ERP 2%p
• 2025.09 현재: 10년물 4.35%, EPS Yield 4.6% → ERP 0.25%p (2007년 10월 고점(0.30%p)보다 낮다!)
즉, 주식 투자로 획득하는 초과보상이 15년 만에 ‘제로’에 수렴했다. 향후 주가가 상승하려면 (i) 채권금리 재하락, (ii) EPS 대폭 상향, (iii) 구조적 멀티플 레벨시프트 중 하나가 필요하다. 세 요건 모두 단기간 충족되기 어렵다.
2) 부동산·PE·VC—할인율 상승의 2차 충격
캡레이트(cap rate)가 300bp 상승하면, 순운영수익(NOI) 고정 시 부동산 가치가 20~25% 하락한다. 이미 미 상업용 부동산 지수는 2022년 고점 대비 -18%다. 벤처·사모펀드도 할인율 8→12% 상향 시 내재가치가 25~30% 감소한다. ‘마크다운 3년차’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다.
5. 금융안정성: 은행·연금·MMF의 포지션 리스크
1) 은행채권 평가손 확대
SVB 사태 이후 연준 BTFP가 숨통을 틔웠지만, ‘미평가 손실(AOCI)’은 2023Q4 6,200억 달러 → 2024Q4 5,700억 달러 수준에서 고착됐다. 국채·MBS 듀레이션이 6.5년 내외인 지역은행은 장기금리 +100bp 상승 시 CET1 자본비율이 70bp 하락한다는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공개됐다.
2) MMF·레포시장—‘캐시 드라이버’의 정책 민감도
Fed RP Facility 이용잔액은 2022년 2.5조 달러 → 2025년 5,300억 달러로 급감했다. ‘돈마르지’ 현상으로 MMF가 국채 단기물·레포금리에 미치는 조정력이 약화될 경우, 유동성 스파이크 위험이 재부상한다.
6. 달러·국제자본 흐름: 미국 예외주의의 시험대
5% 장기금리는 달러 강세 논리(금리차 확대)를 뒷받침하지만, 동시에 재정불안·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해 지속가능성 논쟁을 촉발한다. IMF COFER 자료 기준, 2016년 4분기 65%였던 달러 준비자산 비중은 2025년 1분기 58.4%로 하락했다. 채권수익률이 높아져도 ‘안전자산 지위’를 상쇄할 만한 정치·재정 리스크가 부각될 경우, 국채 대체수요(유로·엔·위안·금·디지털자산)가 확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7. 투자 전략 및 포트폴리오 제언
① 듀레이션 바벨 전략
장기채 완전회피는 위험하다. 20~30년물이 5.5~6%대에 진입할 경우, 경기침체 헤지 관점에서 듀레이션 롱 포지션을 분할 구축할 여지가 생긴다. 단기(3개월) T-Bill과 장기 스트립스(STRIPS)를 병행해 볼록성(Convexity)을 확보하는 ‘바벨’이 유효하다.
② 실질배당 성장주·퀄리티 크레딧
ERP가 낮은 환경에서 경쟁적 잉여현금흐름(FCF)과 스스로 배당·자사주를 늘릴 수 있는 기업—대표적으로 브로드컴·마이크로소프트·코카콜라—는 강세장·약세장에서 모두 ‘완충기’ 역할을 한다.
③ 가격결정력 보유 리츠(데이터센터·통신타워)
기간계약(CPI 패스스루) 구조가 강한 리츠는 인플레이션·금리쌍으로부터 부분 보호를 받는다. 다만 배당수익률 스프레드가 200bp 이상 벌어질 때 분할매수 접근이 안전하다.
④ 전력·원자력 인프라 익스포저 확대
AI 전력수요, IRA 보조금, 공급망 리쇼어링에 따라 미국 내 전력설비 CAPEX는 2023~2030년 연 8% 성장이 예상된다. 금리 수혜주는 아니지만, 장기 PPA(전력구매계약) 덕에 실제 WACC 민감도가 낮다.
⑤ 통화 분산·디지털·실물 대안자산
5% 장기금리와 트윈 디폴릭스(재정+정첵) 우려를 양손 리스크로 볼 경우, 일정 비율의 금·비트코인·환헤지 유로채는 포트폴리오 변동성 제어에 기여한다.
맺음말: “저금리의 긴 여름이 끝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는 ‘금리는 항상 내려간다’는 규범 아래 부(富)와 부채를 키워 왔다. 지금 우리는 그 규범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장기금리가 4%에서 5%로, 5%에서 6%로 이동하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왜 올라갔는가, 얼마나 오래 머물 것인가”다. 본 칼럼이 제시한 일곱 갈래 경로는 결국 한 가지 현실을 가리킨다. 더 높은 할인율은 경제·시장 모든 변수의 ‘기본값’을 재설정한다.
투자자는 과거 15년의 습관을 내려놓고, 재정·통화·유동성 3요소가 뒤바뀐 세상에 맞는 새로운 리스크 프레임워크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5% 장기금리 시대’에 생존과 기회를 동시에 잡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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