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발(Reuters) – 호주 정부 소유 통신망 운영사 NBN(국가브로드밴드네트워크·NBN Co)이 엘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대신 아마존(NASDAQ: AMZN)의 저궤도 위성(LEO)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쿠이퍼(Project Kuiper)’를 통해 지상망으로 연결되지 않는 외딴 지역까지 초고속 인터넷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 8월 5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번 계약으로 아마존은 정식 상용화 경험이 없는 초기 단계의 위성군을 활용해 호주 전역 약 30만 가구·사업장에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NBN과 아마존은 공동 성명을 통해 “2026년부터 아마존 저궤도 위성이 가동되면 2032년 퇴역 예정인 호주 정부 소유 위성 두 기를 차례로 대체하게 된다”고 밝혔다.
저궤도(高度 2,000km 이하) 위성은 지표면과의 거리가 지구 정지궤도(35,786km) 대비 현격히 짧아 지연(latency)이 작고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더 넓은 영역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수천 기 이상의 위성군을 띄워야 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용과 운용 난도가 높다. 프로젝트 쿠이퍼는 각 위성을 광(光)링크로 상호 연결해 지구 전역 어디서든 접속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계약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NBN은 이번 파트너십이 지상망 미도달 지역 30만 곳에 광대역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호주 전체 가구·기업의 약 3% 규모다. NBN 관계자는 “새 서비스 도입으로 농어촌·지방·광산·관광지 등 인터넷 사각지대의 경제 활동과 교육·의료 접근성이 대폭 향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타링크의 기회 상실
이번 결정은 스타링크(Starlink) 입장에서 상당한 기회를 놓친 셈이다. 시장조사기관 텔시그마에 따르면 스타링크는 이미 호주에서 25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했으며, 텔스트라·옵터스 등 호주 양대 이동통신사가 스타링크 가정용 안테나를 판매 중이다. 호주 선거관리위원회(Australian Electoral Commission) 등 정부 기관 일부도 스타링크와 별도 계약을 맺어 사용하고 있다.
스타링크는 2019년 첫 발사를 시작한 이후 8,000기에 달하는 위성을 보유하며 전 세계 최대 규모 LEO 사업자로 자리 잡았다. 반면 아마존 프로젝트 쿠이퍼는 올해 4월 첫 시험 발사 이후 78기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NBN과 아마존은 “최종적으로 3,200기 이상을 배치, 글로벌 커버리지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NBN는 “엄격한 공개 경쟁 입찰 절차를 거친 결과”라며 구체적 선정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가빈 윌리엄스(Gavin Williams) NBN 지역·원격서비스 최고개발책임자(CDO)는 인터뷰에서 “쿠이퍼가 호주와 전 세계에서 아직 상용 서비스를 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이나, 아마존이 15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 투자를 단행 중인 만큼 실행력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CDO는 또 “우리는 규제 및 법적 의무가 부과된 국가 핵심 인프라를 공급하고 있으며, 기술·운영·상업적 필수 요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언급했다. ‘머스크 소유 스타링크’ 여부가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는 “입찰 평가 과정에서 관련 쟁점들이 충분히 논의되고 검증됐다”는 원론적 답만 내놓았다.
“쿠이퍼가 약속한 성능과 일정, 그리고 투자 규모를 고려할 때 NBN은 파트너로서 전적인 신뢰를 보낸다.” – 가빈 윌리엄스, NBN
전문가 시각과 전망
통신·우주 산업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계약이 LEO 위성 시장의 경쟁 구도를 가속화할 것으로 본다. 아마존은 그동안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로부터 주파수 면허를 확보했지만, 실질적 고객 사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호주 정부망이라는 대형 레퍼런스를 선점함으로써 국가 단위 B2G(Business-to-Government) 분야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됐다.
반면 스타링크는 대규모 위성군과 운용 경험을 무기로 삼아왔으나, 정부 조달 시장에서 ‘고립된 의사 결정’에 취약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부 관측통은 “머스크 개인 리스크, 즉 트위터 인수 이후 정치·외교적 논란이 스타링크의 국가 계약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이는 필자의 산업 분석 관점이며, 재무 정보에 기반한 투자 조언은 아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1) 아마존이 예고한 대로 2026년 상반기에 초기 서비스 개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2) 스타링크가 호주 정부 및 공공기관 대상 후속 계약을 사수하기 위해 어떤 가격·기술 경쟁 전략을 펼칠지, 3) 영국 ‘원웹(OneWeb)’ 등 후발주자의 참여로 시장 판도가 얼마나 다변화될지 여부다.
결국 호주 원격지 주민·사업자는 글로벌 빅테크 간 경쟁 덕분에 더 나은 서비스 품질과 가격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위성 발사 지연, 우주 파편(데브리) 문제, 지상국 구축 난관 등 리스크도 병존하므로 정부와 사업자 모두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성을 검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