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호주 증권투자위원회(ASIC)가 국내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호주식 퇴직연금 제도 산업의 부동산 투자를 늘리기 위해 비용 공시 규제를 간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2025년 8월 13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ASIC은 A$4조 (미화 2조6,1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호주 연기금 업계가 상업·주거용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에 더 적극적으로 자금을 배분할 수 있도록 규제 가이드(RG 97) 전반을 재검토하고 있다.
■ 현행 공시 규정의 쟁점
현행 규정은 연기금이 운용 보고서를 작성할 때 모든 거래 및 운영 비용—브로커리지·바이-셀 스프레드·결제 및 보관 수수료·청산 비용·인지세(Stamp Duty) 등을—세부 항목별로 기재하도록 요구한다. 이 정보는 연기금의 성과를 평가하는 퍼포먼스 테스트에 직접 반영되어 호주 금융감독원(APRA)에 제출된다.
문제는 동일한 세금이라도 상장 자산과 비상장 자산 간에 서로 다른 방법으로 비용 처리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비상장 신규 아파트를 취득할 때 발생한 인지세는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으로 분류되지만, 상장 부동산 투자신탁(REIT)을 매수할 때 부과되는 인지세는 ‘투자 수수료(investment fee)’에 포함된다. 연기금 업계는 이 같은 이중 기준이 비상장 부동산 투자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검토를 통해 수수료 조정 후 수익률 산정 방식을 개선해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경제 전반에 대한 투자 확대를 유도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조 롱고 ASIC 의장
롱고 의장은 아울러 “수정안이 통과되면 외부 운용사 대신 내부운용(in-house management)을 늘릴 수 있어 연금 가입자의 비용 부담을 낮추고, 기업 대출 시장에도 안정적 신용 공급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슈퍼애뉴에이션 산업의 전략적 의미
호주 슈퍼애뉴에이션 자산은 국내총생산(GDP)의 1.5배 규모에 달한다. 글로벌 투자기관들은 해당 자금이 ▲인프라스트럭처 ▲친환경 에너지 ▲상업용 오피스 빌딩 등 실물자산에 꾸준히 유입될 경우, 호주 자본시장이 한층 성숙해질 것으로 본다.
Buy-sell spread매수·매도 가격 차이는 투자자가 펀드를 들고날 때 발생하는 은행·브로커 비용을 반영한 지표다. 국내 투자자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호주에서는 감독규정 상 반드시 공시해야 하는 중요 데이터다.
현재 연기금은 구조화 채권·파생상품·해외 주식 등 전통적 자산에 비해 부동산 투자 비중이 낮다. 업계에서는 규제 손질이 완료될 경우, 2026년까지 약 10~15%p의 포트폴리오 이동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부동산 개발 및 인프라 융자 시장에 최대 6,000억 호주달러 추가 유동성을 공급할 잠재력이 있다.
■ 남은 과제와 전망
규정 개정은 공개 협의 절차와 의회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로비 단체인 호주연금투자협회(AIST)는 “실물자산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일부 소비자단체는 “비용 공개 범위가 축소될 경우, 연금 가입자가 실제 수익률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비용 공시의 질(quality)을 높이면서도 불필요한 행정 부담을 줄이는 균형이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ASIC은 조만간 2단계 컨설테이션 페이퍼를 발간해 세부 방안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향후 개정안이 시행되면 국내 건설·부동산 개발사뿐 아니라 글로벌 사모펀드, 인프라 펀드 역시 호주 프로젝트에 참여할 유인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안전 자산으로 평가되는 호주 달러 표시 부동산이 국제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1 = 1.5326 호주달러, 2025년 8월 13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