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호주 중앙은행인 호주준비은행(Reserve Bank of Australia·RBA)이 투자자·시장과의 소통 방식에 변화를 주면서 통화정책 전망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거시환경 자체가 변동성 높은 상황에서 정책 가이던스까지 약화되자 자금 시장에서는 상당한 손실 사례가 속출했다.
2025년 8월 1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혼란은 4월 단행된 거버넌스 개편이 직접적인 배경이다. RBA는 기존 이사회(PB)와 별도로 9인 체제의 통화정책위원회(Monetary Policy Board·MPB)를 신설해 기준금리 결정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했다.
● 새 위원회, 두 번째 회의에서 이미 이례적 결정을 단행
MPB는 5월 두 번째 정례회의에서 현금금리를 0.25%p 인하해 3.85%로 조정했다. 당시 일부 위원은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을 이유로 50bp 완화까지 검토했을 정도로 ‘비둘기파적(dovish)’ 기조를 보였다. 시장 컨센서스가 25bp 동결이었던 터라, 회의 결과는 첫 번째 ‘충격’이었다.
이어 발표된 경기 지표가 둔화 흐름을 보이자 채권 트레이더들은 7월 추가 인하에 베팅했다. 37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 로이터 설문에서 31곳이 7월 금리 인하를 점쳤고, 파생상품 시장에서도 동일 방향의 포지션이 급증했다.
“과거 같으면 RBA가 이런 과도한 기대를 사전에 ‘구두 개입’으로 제어했겠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시그널을 주지 않았다.” – 시장 참여자 코멘트
그러나 7월 회의에서 MPB는 6대 3의 근소한 차이로 금리를 동결해 두 번째 ‘충격’을 선사했다. 포지션을 과도하게 잡았던 투자자들은 일제히 손실을 기록했다.
● ‘사전 가이던스 금지’… 소통 방식 변화
회의 직후 미셸 불록(Michele Bullock) RBA 총재는 “이제 결정 권한이 전적으로 MPB에 있으므로 중앙은행이 앞서 시사(示唆)적 발언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뒤늦게 RBA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바뀌었음을 깨달은 셈이다.
루시 엘리스(Luci Ellis) 웨스트팩 수석이코노미스트(전 RBA 부총재)는 “미국 연준(Fed)처럼 ‘시장 놀라게 하지 않기’ 원칙을 중시하던 과거 관행이 사라졌으며, 앞으로 서프라이즈가 잦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 MPB 구성 – RBA 인원은 ‘소수파’
현재 MPB는 RBA 내부위원 2명, 연방 재무부(호주 재무성) 대표 1명, 외부 민간·학계 전문가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외부위원 선임 권한은 현직 재무장관이 갖는다.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도입된 체제지만, 정작 개별 위원의 금리관(觀)은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공식 일정상 ‘연 1회’ 정도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이에 따라 투표결과가 무기명으로 발표되면 ‘중앙은행 의견이 과반수에서 패배했는지’ 여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수년간 RBA에서 금융시장국장을 역임한 조너선 컨스(Jonathan Kearns) 챌린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총재가 외부위원에게 숫자로 밀릴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RBA 정책 제안이 더 정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중앙은행과 대비되는 ‘아웃라이어’ 구조
미국 연준(FOMC)이나 유럽중앙은행(ECB)은 전원 내부 중앙은행가로 구성된다. 영란은행(BOE)은 9명 중 4명을 외부 전문가로 두되, 개별 투표내역을 공개한다. 이와 달리 RBA 모델은 내부위원이 절대적 소수이며 투표도 ‘블라인드’다. 이러한 조합은 국제적으로 드물다.
경제학 용어 ‘비둘기파(dovish)’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지하는 성향을, ‘매파(hawkish)’는 긴축적 정책을 지향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RBA 내 의견 스펙트럼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두 용어 모두 예측력을 갖기 힘들어졌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 8월 12일 회의 전망 – 세 번째 ‘충격’?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보다 완만하게 발표되자 파생상품 시장은 8월 12일 3.60% 인하 가능성을 100% 가까이 반영하고 있다. ‘두 달 연속 충격은 설마 없을 것’이라는 심리도 베팅을 부추긴다.
하지만 앤드루 하우저(Andrew Hauser) RBA 부총재는 최근 한 포럼에서 “7월 결정을 시장이 예측하기 어려웠음을 인정한다”면서도 “예측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책 변동성이 평상시보다 높아진 것은 맞지만, 때때로 쇼크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아직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를 ‘시험운용’ 중이다. 불가피한 학습 곡선이 있을 것이다.” – 앤드루 하우저 RBA 부총재
시장 참가자들은 세 번째 충격이 현실화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MPB가 또다시 컨센서스를 거스른다면, 글로벌 자금이탈 및 호주채 금리 변동성이 한층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투자자 유의사항 및 시사점
1) RBA는 더 이상 ‘점도표’나 내부 전망치를 통해 시장을 선행적으로 안내하지 않는다.
2) 외부위원 다수가 ‘실물경제 전문가’라는 점은 금융시장의 시각과 괴리를 키울 소지가 있다.
3) 무기명 투표 구조는 책임성(accountability)·투명성(transparency) 논란도 부를 수 있다.
4) 글로벌 중앙은행 간 통화정책 발언 파급력이 차별화되는 과정에서, 자금 흐름이 이동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RBA가 ‘깜짝 결정’을 통해 얻는 정책유연성과, 시장 예측오차가 초래하는 금융비용 간 손익분기점을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