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루이파마(Hengrui Pharma)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최대 12개 혁신 의약품 공동 개발에 나서며 글로벌 제약 시장의 지형 변화를 예고했다. 이번 협력은 호흡기·면역염증(RI&I), 종양학 분야에서 각각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또는 ‘베스트-인-클래스(best-in-class)’ 후보물질을 확보하려는 양사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정으로 평가된다.
2025년 7월 28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헝루이파마는 선급금 5억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GSK와 일련의 전략적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에는 중국 본토·홍콩·마카오·대만을 제외한 전 세계에 대한 독점 판권이 포함된다. 특히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보조 유지 요법제로 개발 중인 ‘HRS-9821’은 이번 딜의 핵심 축으로, 글로벌 호흡기 치료제 포트폴리오 강화가 시급한 GSK의 전략적 니즈와 직결된다.
헝루이파마와 GSK는 HRS-9821 외에도 11개 추가 프로그램을 포함한 ‘스케일드(collaborative)형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각 후보물질은 독립된 재무·운영 구조 아래 임상 1상 완료 시점까지 헝루이가 초기 개발을 주도하고, 이후 GSK가 글로벌 개발·상업화를 전담하는 방식”
으로 운영된다. 계약서에는 프로그램 교체(substitution) 조항도 삽입돼 있어 연구 성과에 따라 유연하게 후보물질을 바꿀 수 있다.
HRS-9821은 PDE3·PDE4 이중 억제제로, 기도 평활근 이완(기관지 확장)과 항염 효과를 동시에 노린다. 건강 정보에 익숙지 않은 독자를 위해 부연하면, PDE는 ‘포스포디에스터레이스(Phosphodiesterase)’ 효소를 뜻하며, 호흡기 염증 신호 전달 경로를 차단해 증상 완화에 기여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해당 물질은 건조 분말 흡입(DPI) 제형으로도 개발돼 환자 편의성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특성은 흡입 코르티코스테로이드(ICS)나 바이오의약품 투여가 어려운 COPD 환자군까지 포괄하려는 GSK 전략과 정합적이다. 실제로 GSK는 기존 엘립타(Ellipta) 플랫폼을 중심으로 DPI 라인업을 확대해 왔으며, HRS-9821이 추가될 경우 ‘경증에서 중증까지’ 단계별 맞춤 요법을 제시할 수 있다.
양사 이해득실 분석
헝루이파마 입장에서는 이번 계약이 ‘글로벌 진출 가속화’라는 전략적 목표 달성에 직결된다. 중국 로컬 제약사라는 이미지를 넘어 세계 주요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특히 5억 달러 선급금은 임상·제조 시설 확충, 추가 인수·합병(M&A) 자금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GSK는 2031년 이후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호흡기·면역계 파이프라인을 다변화할 수 있는 카드를 쥐게 됐다.
“COPD 환자 중 상당수는 ICS 또는 생물학적 제제를 사용할 수 없거나 효과가 미흡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HRS-9821 같은 구강·흡입 병용 옵션은 매출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낮추는 전략적 해법으로 평가된다.
다만, 임상 시험 불확실성과 시장 경쟁 구도는 실질적 장애 요인이다. 글로벌 제네릭사와 바이오 벤처가 PDE4 계열 차세대 저분자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어, 선점 효과(first-mover advantage)를 확보하려면 임상 진행 속도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용어·배경 설명
PDE3·PDE4 억제제란? : 인체 내 cAMP 분해 효소를 차단해 기관지 확장과 염증 완화를 돕는 약물군이다. 기존 PDE4 억제제(예: 로플루밀라스트)는 위장관 부작용이 문제였는데, HRS-9821은 PDE3 동시 억제를 통해 효능을 높이면서도 부작용 발생 빈도를 줄이는 전략적 설계를 차용했다.
스케일드 협업 모델 : 여러 후보물질을 ‘모듈’ 단위로 묶어, 개발 단계별 리스크·수익을 선택적 옵션 형태로 분할 관리하는 형태다. 이 방식은 빅파마가 초기 위험을 회피하면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국내 바이오 전문가들은 이번 파트너십을 ‘중국 혁신신약의 서구권 진출 레퍼런스 케이스’로 평가한다. 실제로 치루이(恒瑞)·베이진(百济神州)·잔파마(再鼎) 등 중국계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최근 글로벌 빅파마와의 기술이전(L/O) 및 동반 임상 전략을 통해 미국·유럽 시장 장벽을 허물고 있다.
기자 관점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GSK 포트폴리오와의 시너지’가 실제 매출 성장으로 연결되려면, HRS-9821의 임상 3상 성공과 규제기관 승인 속도가 중요하다. 둘째, 11개 추가 프로그램 가운데 RI&I·종양 영역에서 블록버스터(Billion-Dollar) 잠재력이 있는 후보물질이 나올 경우, 헝루이파마는 단순 로열티 수취를 넘어 글로벌 상업화 주체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AI 기반 신약 발굴, 플랫폼 기술 공유 등 추가 협력으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 양사가 상호 보완적 역량을 바탕으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생태계를 구축할 경우, 후기 파이프라인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기업가치(Valuation) 상향 가능성도 언급된다.
결론
헝루이파마와 GSK 간 전략적 제휴는 COPD를 비롯한 호흡기 질환, 면역·종양 영역에서 미 충족 의학적 수요를 겨냥한 ‘롱텀 베팅’으로 요약된다. 선급금 5억 달러, 최대 12개 프로그램, 독점 판권 구도라는 세부 조건은 양사 간 위험·수익 공유 메커니즘을 명확히 반영한다. 향후 임상 데이터와 규제 당국 피드백이 가시화되면, 글로벌 제약업계 내 중국 바이오텍 위상과 헝루이파마의 기업가치 변동성이 한층 부각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