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발(Reuters)—미국 하버드대학교가 22일(현지시간) 보스턴 연방지방법원에서 약 25억 달러(약 3조 4,000억 원) 규모의 연방 연구보조금 복원을 요구하는 가처분 심문에 나섰다.
2025년 7월 2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하버드는 트럼프 행정부가 취소한 연방 보조금의 집행 정지를 요청하며, 연구 프로젝트 700건 이상이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한다.
이번 심리를 담당하는 앨리슨 버로스 보스턴 연방판사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임명된 인물로, 지난 3월 국제학생 비자 제한 조치를 일시 중단시킨 전례가 있다. 하버드는
“트럼프 행정부가 4월 11일 제시한 요구사항을 거부한 이후 연방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보복에 나섰다”
고 주장한다.
행정부와 대학 간 갈등의 배경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후 미 대학가가 반유대주의·급진 좌파 이념에 잠식됐다고 비판하며, 연방 자금을 무기로 대학 구조 조정을 압박해 왔다. 하버드는 그 핵심 표적으로, 이사회 구조 개편·채용 및 입학 절차 개혁·특정 학과 폐지 등을 요구받았다.
특히 행정부는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 프로그램이 ‘사상 편향’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DEI는 ‘다양성·형평성·포용’을 뜻하는 대학 내 정책 기조로, 국내 독자들에겐 기업 ESG 경영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재정적 압박
하버드의 총 530억 달러 규모 기부금(엔다우먼트)은 미 대학 중 최대 수준이나, 연방 보조금은 연구 예산의 15%를 차지한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주도의 의회는 올해 연방 소비세율을 1.4%에서 8%로 대폭 올렸고, 이는 하버드 운용 수익의 40%를 차지하는 엔다우먼트 과세에도 적용된다.
앨런 가버 총장 대행은 지난주 성명에서 “각종 연방 제재로 연 10억 달러 규모 재원이 사라질 수 있다”며 “직원 감축·채용 동결 등 긴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법적 쟁점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자금은 정책 목표 달성에 부합하지 않을 때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는 보조금 계약 조항을 근거로 법원 관할권 부재를 주장한다. 반면 하버드는
“연방정부가 학문·인사 자율성을 침해해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학문 자유를 위배했다”
고 맞선다.
이번 소송은 연방 자금 집행과 대학 자율성의 경계, 나아가 사학의 이념적 중립성을 둘러싼 법적 선례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
이슈 용어 해설
Ivy League: 미국 북동부 8개 명문 사립대를 가리키는 스포츠 연맹 명칭으로, 한국에서는 ‘아이비리그’라 통칭한다. 학문·사회적 영향력이 커 정치권·산업계 리더 배출로 유명하다.
DEI: 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의 약자로, 조직 내 소수자 및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제도·문화 전반을 의미한다.
Federal grant: 미 연방정부가 대학·연구기관에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의학·공학 등 국가 연구 인프라를 뒷받침한다. 대학들은 보조금 집행 시 ‘정책 기여’를 만족해야 하며, 위반 시 집행 중단이 가능하다.
전망과 시사점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대학 연구 자율성의 가이드라인을 재정의할지 주목한다. 만약 하버드가 패소할 경우, 연방정부는 비슷한 논리를 적용해 다른 사립대와 국공립대에도 자금 칼날을 들이댈 수 있다. 반대로 하버드가 승소한다면, 대학 측은 재정·정책 리스크를 흡수하면서도 학문적 독립성을 강화하게 된다.
아울러 미국 정치권에서 ‘반유대주의 단속’과 ‘급진 좌파 견제’를 명분으로 한 고등교육 개혁 논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 대학에도 학내 정치·사상 다양성을 둘러싼 규범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결국 이번 분쟁은 단순한 재정 갈등을 넘어, 학문 자유·캠퍼스 민주주의·정부 정책 연계성이라는 복합적 의제가 교차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