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발 로이터 통신 –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S.p.A.)의 지배주주인 페라가모 가문이 20일(현지시간) 자사를 둘러싸고 확산된 인수·합병(M&A) 가능성을 일축했다. 가문 측은 “회사와 관련된 어떠한 비상경영 거래(extraordinary transactions)에도 관심이 없다”라고 공개 성명을 통해 강조했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 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주가가 저평가 국면에 진입하면서 시장에서 합병·인수설이 급부상했으며, 이에 따라 페라가모 주가는 일시적으로 반등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가문은 수차례 “우리는 회사를 팔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고, 이번에도 동일한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Extraordinary Transactions’란 무엇인가
통상 비상경영 거래는 일회성·대규모 구조조정, 자산 매각, 합병(Merger), 인수(Acquisition) 또는 지분 교환 등 기업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적 결정을 통칭한다. 이탈리아 상법에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요구하고, 재무·세무·노동 시장에 파급력이 큰 사안으로 분류된다.* 페라가모 가문이 사용한 ‘extraordinary’라는 표현은 이러한 법적·경영적 함의를 전제로 한다.
배경: 주가 하락과 시장의 추측
최근 몇 분기 동안 페라가모의 주가는 ▲글로벌 명품 수요 둔화 ▲유로화 강세 ▲재고 조정비용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일부 트레이더들은 “밸류에이션이 저렴해진 만큼 경쟁사가 공격적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해 왔다. 이런 추측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케어링(Kering) 등 거대 프랑스 럭셔리 그룹들의 과거 M&A 행보를 떠올리게 하며, 시장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러나
“가문은 이미 2023년 4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장기 독립 경영’을 천명했으며, 이번에도 그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다”
는 점을 재확인했다. 해당 성명은 로이터 통신 밀라노 지국을 통해 배포됐고, 동시에 이탈리아 금융감독원(CONSoB) 공시망에도 게시됐다.
페라가모의 지배구조와 재무 현황
페라가모 가문은 지주회사 페라그린 파밀리아(Ferragamo Finanziaria S.p.A.)를 통해 약 54%의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지분은 기관투자가(32%)와 소액주주(14%)가 나눠 가진다. 2024 회계연도 회사는 2023년 대비 3.8% 감소한 11억6,000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순이익은 1억2,700만 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12% 줄었다.*잠정치
재무 전문가들은 “수익성 압박이 있지만, 브랜드 자산가치와 가문의 장기 경영 의지는 단기 변동성을 상쇄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위치한 자사 공장을 통한 수직 통합 생산 체계와, 100년에 가까운 장인 기술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명품 업계 M&A 트렌드와 차별점
최근 10년간 럭셔리 업계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 메가딜을 연달아 성사시켜 왔다. 2019년에는 LVMH가 티파니를 162억 달러에, 2022년 케어링이 휴고 보스 지분을 전략적 매입하는 등 공격적 포트폴리오 확대에 나섰다. 그럼에도 페라가모 가문은 “독자적 정체성과 가족 경영 전통이 브랜드 DNA의 핵심”이라는 이유로, 대형 컨소시엄과의 결합을 지속적으로 거부해 왔다.
시장 관계자들은 “가문기업 특유의 장점—의사결정이 신속하고 장기 비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단기 실적 압박보다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라고 분석한다. 반면 일부 주주들은 “자본력 열세로 마케팅·디지털 전환 투자가 뒤처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내놓고 있다.※
기자의 시각: 유동성보다 정체성을 택한 선택
페라가모 가문이 되풀이해 온 ‘노(No) 딜’ 전략은 전통 명품 하우스가 처한 딜레마를 보여 준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절감과 글로벌 마케팅 효율은 대기업 집단 편입 시 얻을 수 있는 즉각적 혜택이다. 그러나 브랜드 스토리텔링, 장인 정신, 지역 사회와의 유대 등 무형의 가치는 외부 자본과의 타협에서 잠재적으로 훼손될 수 있다. 필자는 페라가모 가문이 ‘실적 악재에도 불구,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통해 단기 주가 부양보다 장기 정체성 강화에 방점을 찍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주가 측면에서 볼 때, M&A 불발은 단기적으로 프리미엄 기대감을 제거해 차익 실현 매물이 출회될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펀더멘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지배구조 불확실성 해소’라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향후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제품 다각화·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할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로 떠오른다.
전망과 과제
현재 페라가모 본사 경영진은 2026년까지 온라인 매출 비중 30% 달성을 목표로, 옴니채널 투자와 밀레니얼·Z세대 고객층 확보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이는 경쟁사의 성장 전략과 유사하지만, 가문 독립 체제하에서 보다 선택과 집중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단기 실적은 글로벌 경기·환율 환경에 영향을 받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브랜드 고급화·희소성 전략이 주가 모멘텀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실제 매출 및 이익 개선이 지체될 경우, 시장에서는 다시금 ‘전략적 파트너십 필요성’이 제기될 소지가 남아 있다.
정리
이번 발표로 가문은 회사의 독립 경영을 재확인했으며, M&A 루머로 과열됐던 시장 심리를 진정시켰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집중과 확장’ 두 축이 공존하는 가운데, 페라가모가 선택한 ‘집중’ 전략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