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CHIPS법(CHIPS and Science Act) 예산 가운데 최소 20억 달러를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s) 프로젝트로 재배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2025년 8월 2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구상은 이미 의회가 반도체 연구·공장 건설을 위해 책정해 둔 재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예산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움직임이다.
상무장관 하워드 루트닉(Howard Lutnick)의 영향력을 광물·자원 분야까지 확대하려는 의도도 함께 담겼다. 백악관은 지난달 미 국방부가 희토류 업체 MP Materials에 투자한 직후 일관성 없는 광물 전략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는데, 루트닉에게 예산 결정권을 집중시키면 이러한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CHIPS법이란?
2022년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이 서명해 발효된 이 법은 총 527억 달러 규모로, 미국 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연구개발 지원과 세제 감면, 공장 건설 보조가 핵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업에 대한 끔찍한 퍼주기”라고 비판하며 보조금 재협상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번 전용 계획은 반도체 공급망과 뗄 수 없는 소재인 게르마늄·갈륨 등 핵심 광물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법 취지에 부합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이러한 광물 가공·정제 시장에서 과점적 지위를 강화해 왔으며, 미국 내 가공시설은 극히 제한적이다.
“정부가 핵심 광물 부문에 대한 재정 지원 경로를 창의적으로 찾고 있다.” – 익명의 정부 관계자
실제 수혜 대상은 광산 개발 업체뿐 아니라 정제·재활용 기업까지 포함될 전망이다. 세계 최대 리튬 생산사 앨버말(Albemarle)의 켄트 마스터스 최고경영자는 지난달 로이터 인터뷰에서 “미국 리튬 정제공장 계획은 정부 지원 없이는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미 행정부는 이 20억 달러를 보조금(grant) 형태로 지급할지, 지분 투자(equity)로 전환할지를 놓고 검토 중이다. 루트닉 장관은 “가능한 한 빨리 자금을 시장에 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 내 권한 재조정
최근 국방부가 MP Materials에 대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하고 희토류 가격지지책까지 논의하자,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희토류 독점 우려”가 불거진 상황을 문제 삼았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루트닉에게 자원 전략 전반을 총괄케 하고, 국방부·에너지부 등을 조정(coordinate)하도록 했다.
루트닉은 월가 브로커리지 캔터 피츠제럴드(Cantor Fitzgerald)를 이끈 경험이 있으며, 해당 회사는 Critical Metals Corp의 주요 주주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도 미 수출입은행(Ex-Im)이 추진 중인 대출 대상 후보에 올라 있다.
한편, 행정부는 인텔(INTC) 등 반도체 기업에 대한 현금 보조금과 맞바꾸는 지분 인수 방안도 CHIPS법 예산으로 추진 중이다. 이는 정부가 반도체와 소재 공급망 모두에 재정적 관여를 강화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국내 광물 공급 확대 가속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심해 광물 채굴과 국내 광산 프로젝트 규제 완화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 19일에는 리오틴토(Rio Tinto)·BHP 최고경영진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유럽 정상들과의 협상 와중에도 “미국 광물 산업 육성” 메시지를 강조했다.
에너지부도 2021년 초당적 인프라법에 기반해 10억 달러 규모의 광물 프로젝트 지원안을 지난주 제안한 상태다. 부처 간 지원책이 동시에 가동되면서 예산 사용 우선순위와 관리 체계가 더욱 중요해졌다.
전문가 분석 및 전망
첫째, 공급망 리쇼어링 전략이 광물 부문까지 본격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CHIPS법의 반도체 예산을 소재 확보에 투입한다는 것은 ‘원자재 없이는 칩도 없다’는 인식을 정부가 공식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둘째, 루트닉 장관에게 예산 통제권을 집중시키면 단기 속도는 빨라질 수 있으나,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 논란이 잇따를 수 있다. 그가 과거 이끌던 캔터 피츠제럴드가 핵심 광물 기업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실제 환경 규제 면제 여부가 투자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희토류 프로젝트를 ‘경제성이 낮고 환경 부담이 크다’며 기피했던 것처럼, 현 정부 역시 동일한 난관을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의회 승인이 필요한 자금 배분이 남아 있어 정당 간 예산 공방이 장기화할 수도 있다.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국 우선주의와 재정건전성 논리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