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엔비디아·AMD 중국 매출 15% 공유 합의…글로벌 반도체 전략의 중대 기로

[글로벌 반도체·AI 시장 핵심 이슈] 미국 반도체 2대 기업인 엔비디아(Nvidia)AMD(Advanced Micro Devices)가 중국 판매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와 공유하기로 합의한 사실이 복수의 외신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이번 합의는 자국 안보와 첨단 기술 패권을 동시에 노리는 워싱턴의 새 전략이자, 양사에게는 중국 시장 재진입을 위한 ‘통행세’ 성격을 띠는 것으로 해석된다.

2025년 8월 11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두 회사가 중국에 수출하는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엔비디아 ‘H20’AMD ‘MI308’에 대해 1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납부하는 조건으로 수출 면허를 발급하기로 했다. 이는 기존 수출 규제 하에서 사실상 ‘금수품’이었던 고성능 AI 칩이 다시 중국으로 흘러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동시에, 미국 정부가 직접 수익을 공유하는 전례 없는 조치다.

엔비디아 H20 칩


주요 합의 내용과 배경

엔비디아는 성명에서 “우리는 전 세계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설정한 규칙을 준수한다. H20를 수개월간 중국에 출하하지 않았지만, 이번 규정이 미국이 중국 및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AMD와 백악관은 논평 요청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

시장조사기관 퀼터 체비엇(Quilter Cheviot)의 글로벌 기술 애널리스트 벤 배링어는 CNBC 인터뷰에서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85%의 매출이 0%보다 낫다”라며 “화웨이 등 중국 현지 기업에 시장을 통째로 내주는 것보다 가격 인상으로 부담의 일부를 전가하더라도 판매 자체가 가능한 편이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이번 합의는 전형적인 ‘딜 메이커(Deal-maker)’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이 반영된, 다소 이례적이지만 실용적인 조치” ― 벤 배링어 퀼터 체비엇 애널리스트

수출 면허와 ‘백도어’ 논란

H20와 MI308은 기존 수출 규제 강도를 맞추기 위해 성능이 다소 제한된 ‘커스텀 칩’이지만, 여전히 중국 내 AI 연구·개발에 필수적인 연산 능력을 제공한다. 중국 규제당국은 최근 엔비디아 칩의 ‘백도어(Backdoor)가 존재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보안 조사를 진행했고, 엔비디아는 이를 강력 부인했다. ‘백도어’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에 몰래 숨겨진 접근 통로로, 제3자가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보 리스크로 간주된다.

이번 매출 공유 합의가 체결되자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원래 내세운 안보 논리를 경제적 지렛대로 대체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중국 민간 기업들은 AI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해당 칩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복합적 이해관계를 드러냈다.


투자·시장 영향

합의 소식이 전해진 11일 프리마켓에서 엔비디아와 AMD 주가는 소폭 하락에 그쳤다. 시장은 15% ‘로열티’에도 불구하고 중국 판매 재개가 매출 확대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정부가 더 높은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 혹은 추가 규제 리스크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닐 샤 파트너는 “이번 조치는 사실상 ‘원천에서 부과되는 간접 관세’”라며 “중국 입장에선 AI 야망 달성을 위해 칩이 필요하지만, 미국 정부가 실질적 비용을 높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AMD MI308 칩

‘독점 기술’로서 반도체의 위상

반도체는 AI, 스마트폰, 국방 시스템 등 광범위한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전략 자산이다. 이에 미국은 다른 어떤 제품보다 강력한 수출 통제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서비스 분야로까지 비슷한 매출 공유 모델이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니크 페이션스 퓨처럼그룹 AI 담당 파트너는 “칩은 공급 허가 여부가 매출에 직결되기 때문에 ‘페이 투 플레이(pay-to-play)’ 방식이 통하지만, 애플·메타 같은 플랫폼 기업에는 적용이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진단 및 전망

글로벌 공급망 관점에서 보면, 이번 합의는 미국·중국·빅테크 기업 3자 간 역학을 다시 그리는 ‘파일럿 모델’이 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직접 현금 흐름을 확보하면서도 자국 기업의 글로벌 입지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은 제한된 형태로나마 최신 칩에 접근하게 돼 상호 의존성이 강화된다.

그러나 아시아그룹조지 천 파트너는 “단기적으로는 수출 불확실성이 완화됐지만,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정부 몫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남는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15%’ 비율이 향후 협상 카드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번 조치는 양사에 ‘85%의 자유’를 제공하는 동시에, 미·중 기술전쟁이 ‘세율 경쟁’ 단계로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향후 화웨이·중국 토종 파운드리의 기술 자립 속도, 미국의 추가 규제 여부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 용어 설명
수출 통제(Export Control) : 국가 안보·외교 목적을 위해 특정 기술·제품의 해외 이전을 제한하는 제도.
로열티(Royalty) : 지식재산권 사용 또는 특정 권리 행사를 위해 지불하는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