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전시·경제위기 외 보기 드문 규모로 ‘국가 직접 투자’ 가속화

트럼프 정부, 전례 없는 ‘정부 주주화’ 행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전시(戰時)나 대공황·금융위기 같은 거대한 충격 상황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민간 기업의 지분을 직접 확보하며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적 색채를 짙게 하고 있다.

2025년 7월 26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자유시장(capitalism)을 옹호해 온 공화당 정권이 ‘국가 안보를 위한 전략 산업’이라는 명목 아래 철강·희토류·소셜미디어 등 핵심 분야에서 직접 투자 또는 거부권(golden share) 보유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골든 셰어(golden share)”란 무엇인가?

골든 셰어는 정부나 특정 개인·기관이 극소수 지분만으로도 거부권·결정권을 독점할 수 있도록 설계된 특수주를 의미한다. 국유화와 유사하지만 국가가 자본을 대량 투입하는 일반적 국유화와 달리, ‘소액 투자로 경영권 통제’라는 특징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 U.S.스틸 ‘거부권’ 손에 쥐다

일본 닛폰스틸(Nippon Steel)은 미국 U.S.스틸과의 합병 계약 조건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골든 셰어 1주를 부여했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3대 철강사 중 하나인 U.S.스틸의 핵심 의사 결정에 대해 단독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You know who has the golden share? I do.” — 도널드 트럼프, 7월 15일 피츠버그 AI·에너지 서밋

국제관계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Atlantic Council)사라 바우얼리 단즈먼 연구원은 “국유화에 준하는 조치이지만 정부 투입 자본이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무상(無償) 통제’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국방부, 희토류 기업 MP 머티리얼스 최대주주로

이달 초 미 국방부(DoD)4억 달러(약 5,300억 원)에 달하는 지분 인수를 단행해, 희토류(rare-earth) 광산·자석 기업 MP 머티리얼스최대 주주에 올랐다. 희토류는 전기차, 반도체, 방산 장비에 필수적인 17개 금속 원소를 통칭한다.

MP Materials CEO 인터뷰 장면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그레이슬린 바스카란 박사는 “미국 광업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공-민간 합작”이라며 “국방부가 광산 기업 지분을 직접 사들인 것은 전례가 없다”고 분석했다.

“이번 모델은 중국식 머천틸리즘(mercantilism)에 맞서는 ‘공공-민간 협력의 새 길’” — 제임스 리티스키, MP 머티리얼스 CEO

여기서 머천틸리즘은 국가 주도로 특정 산업을 보호·지원해 수출 경쟁력을 키우는 중상주의 정책을 뜻한다.


“트럼프의 정치적 위상, 공화당 내 시장주의 문턱 낮춰”

단즈먼 연구원은 “동일 조치를 민주당 대통령이 시도했다면 ‘사회주의’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라며 “트럼프는 국가 개입 범위를 미국 정치에서 새 단계로 확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은 관련 질의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국가 주주’ 투자, 다음 타깃은?

향후 더 많은 개입이 예고된다.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은 4월 “대(對)중국 경쟁을 맡은 미국 핵심 광물 기업마다 정부 지분 투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MP 머티리얼스 사례가 향후 모델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데이브 맥코믹 상원의원 인터뷰 장면

공화당 데이브 맥코믹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5월 CNBC 인터뷰에서 “U.S.스틸 골든 셰어 모델이 경제 성장과 안보를 동시에 충족할 대외투자 지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고든해스킷돈 빌슨 애널리스트는 “U.S.스틸과 MP 머티리얼스에 이어 다음 투자처가 어디가 될지 주목된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틱톡(TikTok)에 대해 미국 정부가 50% 지분을 보유하는 합작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중국 바이트댄스(ByteDance)가 9월 17일까지 지분을 매각하지 않으면 앱이 미국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있다.


역사 속 ‘정부 개입’과 이번 사례 비교

노스캐롤라이나대(UNC) 마크 윌슨 교수는 “미국은 □ 세계대전, □ 대공황, □ 2008 금융위기 등 ‘시스템 붕괴’ 국면에서 일시적으로 산업 국유화·구제금융을 시행해 왔다”고 설명한다.

대표적 사례로 2008년 GM 구제(정부 지분 다수 확보 후 손실 매각), 1970년대 록히드·크라이슬러 구제금융, 1차 세계대전 철도 국유화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대부분 위기 종식 후 민간 반환이 이뤄졌다.

이번 트럼프 정부의 사례는 경제 위기나 전쟁 중이 아님에도 출범했다는 점에서 과거와 구별된다.


배경: 중국과의 ‘공급망 패권’ 경쟁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드러난 공급망 혼란미·중·러 대국 경쟁 재점화가 미국의 경제적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단즈먼 연구원은 “중국은 과잉 생산능력으로 글로벌 시장 가격을 왜곡해 경쟁국 기업의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4월 중국이 대(對)미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자 불과 몇 주 만에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생산 중단” 가능성을 경고했고, 결국 미국은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고 바스카란 박사는 설명했다.

시장과 자유무역만으로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20세기적 가정이 재평가받고 있다.” — 마크 윌슨 교수

단즈먼 연구원은 “정부가 한 시장 실패를 교정하려다 새로운 실패를 초래할 위험도 상존한다”며 시장 왜곡의 ‘연쇄 반응’ 가능성을 경고했다.


전망과 쟁점

경제·안보 라인을 중심으로 ‘선택적 산업개입’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정부 지분 참여가 세금 부담·시장 경쟁·국제 통상 규범에 미칠 장기적 파장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전문가들은 “투명한 투자 기준명확한 철수(exit) 전략이 동반되지 않으면, 시장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