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샌프란시스코=로이터통신—미국 암호화폐 업계가 수년간의 관망세를 끝내고 기업공개(IPO)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가 내세운 친(親)암호화폐 정책과 맞물려 전 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이 사상 최고치인 4조2,00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이 결정적 배경으로 꼽힌다.
2025년 8월 14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억만장자 피터 틸이 후원하는 거래소 운영사 불리시(Bullish)는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통해 11억 달러 이상을 조달했다. 불리시는 최근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토큰 거래량을 급격히 확대하며 기관투자자의 주목을 받아 왔다.
시장 지형을 바꾸는 두 축은 ▲광범위한 대중 수용 확대 ▲대기업·벤처캐피털의 두터운 자금력이다. IPO 전문 리서치·상장지수펀드(ETF) 제공사 르네상스캐피털의 매트 케네디 전략가는 “무엇보다 써클(Circle)의 상장 후 주가 흐름이 업계 전체의 녹색 신호등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산업의 ‘벨웨더’로 떠오른 써클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써클은 6월 NYSE 입성 첫날 공모가(주당 31달러) 대비 두 배를 훌쩍 넘기는 ‘따상’으로 시가총액 180억 달러를 기록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같은 법정화폐에 1:1로 고정된 암호화폐로,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해 결제 및 송금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긍정적 주가 흐름과 우호적 규제 환경은 막강한 조합이다.” — 매트 케네디, 르네상스캐피털
미 상원은 써클 상장 직후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통과시켜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명확한 틀을 마련했다. 법안 효과로 써클 주가는 지난 13일(현지시간) 153.16달러로 마감, 시가총액은 350억 달러 수준(LSEG 집계)에 달한다.
‘크립토 윈터’에서 ‘크립토 서머’로
2022년 거래소 FTX 붕괴로 냉각됐던 시장은 혹독한 크립토 윈터를 겪은 뒤, 2024년 하반기부터 반등 모멘텀을 확보했다. 잇단 손상차손(Write-down)과 구조조정 후유증을 털어낸 기업들은 주식시장 문을 다시 두드리고 있다.
IPOX의 카트 류 부사장은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가 오랫동안 묶어 둔 지분에 유동성을 원하고 있다”며 “이제 이들은 순수 투기 대상이 아니라 실질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지니어스법·써클의 흥행을 기점으로 비트고(BitGo), 그레이스케일(Grayscale), 제미니(Gemini) 등도 비공개 예비심사서류(confidential filing)를 제출하며 상장 채비를 마쳤다. 업계는 크라켄(Kraken) 역시 잠재적 후보로 주목한다.
SPAC 통한 우회 상장 바람
일부 기업은 전통 IPO가 아닌 스팩(SPAC) 합병을 택해 규제 문턱을 낮추고 있다. SPAC은 ‘백지수표 기업’이라 불리는 상장 특수목적법인으로, 투자자금만 갖춘 채 상장해 사후에 비상장사를 흡수 합병한다.
마이클 세일러가 개척한 ‘크립토 보유회사’ 전략을 모방한 스타트업들은 자산대차대조표에 비트코인·이더리움을 대거 담아 간접투자 창구 역할을 자처한다. B. 라일리 증권의 조 너디니 IB(투자은행) 총괄은 “프리미엄이 유지되는 한, 이런 재무 전략은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가상자산 가격 전망
스탠다드차타드는 세계 최대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연말 20만 달러, 이더(ETH)가 2025년 말 7,5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13일 종가는 각각 120,181.98달러, 4,619.73달러다.
미 IPO 시장의 회복세
트럼프 행정부의 광범위한 관세 정책으로 4월 잠시 주춤했던 미국 IPO 시장은 올해 들어 216건의 신규 상장(딜로직 집계)으로 2021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누적 공모액은 398억3,000만 달러다.
가을 상장 창구도 두터워질 전망이다. BNPL(선구매 후지불) 업체 클라르나(Klarna)와 소프트웨어 기업 지네시스(Genesys)가 대기 중이며,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차임·피그마의 ‘따상’ 사례가 시장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유로 등 실물 화폐에 1:1로 연동돼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암호화폐다. 송금·결제에 유리해 디지털 달러로도 불리지만, 법적·회계적 처리 기준이 불명확해 규제 논의가 활발하다.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은 비상장사가 우회적으로 증시에 입성할 때 활용되는 수단이다. 상장 심사 대신 합병 절차를 거치므로 상대적으로 심사 기준이 완화되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 시각
분석—현재 흐름은 ‘정책·가격·유동성’이라는 세 축이 맞물려 형성된 순환적 호황 국면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암호화폐 가격 변동성과 정치 불확실성이 여전히 상장 시장에 급격한 조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기업의 수익창출 모델·규제 리스크·재무 건전성을 면밀히 따질 필요가 있다.
또한 ①스테이블코인 규제가 명문화됐다고 해도 ②다른 가상자산 범주에 대한 감독 체계는 초기 단계다. 향후 SEC·CFTC의 권한 분배와 국제 회계 기준 정립 과정이 IPO 시장의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 본 기사는 로이터 원문을 기반으로 작성됐으며, 시장 상황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