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럽 제약사에 ‘미국 약가 인하’ 압박…주가 동반 하락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다국적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미국 내 처방약 가격을 해외 수준으로 낮추라는 공개 서한을 발송한 이후, 유럽 주요 제약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2025년 8월 1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머크(Merck KGaA)를 비롯한 17개 글로벌 제약사에 서한을 보내 미국 내 약가를 해외와 동일한 수준으로 조정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9월 29일까지 ‘구속력 있는 약속(binding commitments)’을 제출하지 않으면 정부 규제 등 강경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유럽 제약업종 지수는 4월 이후 최저치로 밀려났고, 아스트라제네카·GSK·머크 KGaA 등은 장 초반 1% 이상 하락했다. 특히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는 4% 넘게 빠지며 최근 하락세를 이어갔다. 노보 노디스크 주가는 7월 30일(현지시간) 이례적인 실적 경고와 CEO 교체 소식이 겹치며 하루 만에 시가총액 약 700억 달러(약 92조 원)가 증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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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서한을 받은 기업 명단에는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일라이 릴리(Eli Lilly), 화이자(Pfizer) 등 미국 대형 제약사도 포함됐다. 이 소식이 전해진 7월 31일 뉴욕증시에서 NYSE Arca Pharmaceutical 지수는 3% 급락했으며, 화이자·릴리·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 주가가 낙폭을 키웠다.

“우리는 미국 환자들의 부담을 경감할 방안을 정부와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 — 스위스 제약사 로슈(Roche) 대변인

로슈는 처방약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다수의 제약사가 실제로 가격 인하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고 익명의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전문가 해설: ‘바이든케어’ 아닌 ‘트럼프케어’ 부활 신호?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4년 재선 도전을 공식화한 뒤, 의료비 절감을 새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서한은 2020년 5월 그가 서명한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사실상 재가동한 셈이다. 당시 행정명령은 ‘가장 유리한 외국 가격(Most Favored Nation·MFN)’ 규칙을 명시해, 미국 정부가 지급하는 약가를 다른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NYSE Arca Pharmaceutical Index란? 이 지수는 뉴욕증권거래소(뉴욕 아카)에 상장된 40여 개 글로벌 제약·생명공학주로 구성되며, 업종 전반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대표적 벤치마크다.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코스피 의약품 지수’의 글로벌 버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은 의약품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1%로 G7 국가 중 가장 높다. 전문가들은 백신·치료제 성과로 힘을 키운 제약사에 공격적 규제를 가할 ‘정치적 명분’이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동시에 지나친 압박은 신약 개발 투자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 ‘약가 인하’와 ‘혁신 인센티브’의 균형이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기자 전망

만약 17개사가 제안을 거부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메디케어(65세 이상·장애인 대상 공공보험)의 약가 지출 상한 신설, FDA 승인 일정 지연 등 실질적 제재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행정부 권한 밖의 입법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한편, 투자자들은 규제 리스크를 반영해 제약주 비중을 줄이고, 제네릭·바이오시밀러(특허가 만료된 의약품 복제약) 및 의료기기 종목으로 분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AI 신약 설계·데이터 분석 기업에 대한 ‘피난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특징이다.

결국 트럼프의 약가 규제 드라이브가 진전될 경우, 제약·바이오 업종의 밸류에이션(평가가치) 조정이 불가피하다. 반대로 협상 타결이나 규제 완화 시에는 ‘정책 불확실성 해소’에 따른 반등 가능성도 열려 있어, 투자자들은 정책 뉴스 흐름을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