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 연준 본부 리모델링 현장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손짓하며 서류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촬영 날짜는 2025년 7월 24일, 사진 제공은 Kent Nishimura | Reuters다.
2025년 8월 6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이사 아드리아나 쿠글러가 돌연 사임하면서 연준 이사진 한 자리가 공석이 됐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은행의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략적 인선 카드를 여러 개 확보하게 됐다.
쿠글러 이사는 전임자인 라엘 브레이너드가 백악관 경제수석으로 이동한 뒤 2023년에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녀는 브레이너드의 미임기 14년 중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사임했으며, 남은 임기는 약 6개월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임명할 차기 이사는 상원 인준 일정을 감안할 때 실제로는 3~4개월만 근무한 뒤 다시 인준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트럼프가 이 공백을 활용해 ‘섀도 섀어(Shadow Chair)’를 앉힐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섀도 의장은 공식 의장 권한은 없으나 의장 후보자 프리뷰 성격으로 이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파월 의장과 각을 세우는 견제 역할을 맡게 된다. 실제로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가 과거 이 구상을 공개 지지한 바 있다.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임시 방편(stop-gap)으로 쿠글러 잔여 임기 4개월을 채울 인사를 택하는 것, 다른 하나는 차기 의장으로 낙점한 인물을 지금 곧바로 임명해버리는 것이다.” — 에버코어 ISI 글로벌 정책·중앙은행 전략 총괄 크리슈나 구하, CNBC 인터뷰
구하는 트럼프가 NBC 리얼리티 쇼 ‘셀러브리티 어프렌티스’식 방식, 즉 경쟁과 오디션을 선호한다며 섀도 의장 시나리오에 끌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통령은 사람들을 시험대에 올려두고, 잘하면 다음 단계로 승격시키는 방식에 익숙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임시 의장직 수락은 모험이다. 브라이언 가드너 스티펠 수석 정책전략가는 “4개월짜리 섀도 의장은 발언 하나로 대통령 심기를 거스를 위험이 상존한다”며 “시간이 짧을수록 돌발 변수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이미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강력히 요구해 왔으며, 그 폭도 3%포인트 수준의 ‘대담한’ 인하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전 재무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시장을 공포에 몰아넣을 만한 요구”라고 평가했다.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 대한 참고 설명*
FOMC는 7명의 연준 이사 및 5명의 지역 연은 총재로 구성돼 금리를 결정한다. 이사회 단독 과반만으로는 통화정책을 바꾸지 못해, 의장 교체만으로도 즉각적 정책 전환은 제한적이다.
섀도 의장을 피하고 곧바로 차기 정식 의장을 선임할 경우, 새로운 이사는 동료 이사들과 14년 임기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어 내부 마찰 위험이 줄어든다. 가드너는 “파월 의장 임기가 2026년 5월 종료되므로, 미리 후임을 포석해 두려는 ‘보험’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CNBC에 따르면 트럼프는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국장 등 4인 최종 후보를 검토 중이다. 이 외에 크리스토퍼 월러 현 이사와 데이비드 맬패스 전 세계은행 총재, 주디 셸턴 전 연준 이사 지명자 등의 이름이 회자된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스스로 후보에서 사퇴한 상태다.
베팅시장(예측시장)에서는 워시와 해싯이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가 많다. 셸턴도 일정 지분을 차지한다. 파월 의장 임기 이후 파월이 이사회에서 물러난다면, 트럼프는 7인 이사회에서 본인 임명 이사 4인을 확보해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FOMC에서는 지역 연은 총재 5인의 회전 의석이 있어 정책 결정 과반은 확보되지 않는다.
연준의 독립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옐런 전 의장은 관계당국의 압박이 노골화될수록 정책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드너는 “1990년대 초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앨런 그린스펀 당시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압박했던 전례가 있다”면서도 “현재로선 제도적 안전장치가 작동하고 있지만 상황은 유동적”이라고 분석했다.
*용어 설명 : ‘섀도 의장’은 공식 직함이 아닌 통칭으로, 차기 의장 후보가 이사로 입성해 의장급 발언을 미리 테스트받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의사결정 구조상 전례가 드문 사례다.